영화 『블랙 팬서』 속 와칸다는 첨단과 고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왕위 계승은 피와 땀으로 점철된 ‘결투’라는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에릭 킬몽거는 그 절차를 철저히 따라 티찰라와 대결했고, 비겁한 꾀나 부당한 편법 없이 정정당당하게 승리했다. 그리하여 전통의 이름 아래 왕위의 정당한 권리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와칸다의 시민들과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 승리를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익숙한 ‘왕’은 티찰라이며, 킬몽거의 거친 분노와 급진성은 우리가 안온하게 받아들여 온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비친다. 여기서 우리는 정의가 지닌 가장 냉엄한 진실과 마주한다. 과연 절차적으로 정당한 권위가 내 감정적 거부감 앞에서 쉽게 무시되어도 좋단 말인가? 정의는 개인의 호불호나 감정의 파도 위에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정의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원칙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만약 내가 지지하는 자의 승리만을 ‘공정함’이라 칭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닌 ‘나만의 권력’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공정을 외치지만, 그 ‘공정함’이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혐오하는 상대의 손을 들어줄 때에도 우리는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가? 정의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처럼 관대하고 따스한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우리 내면의 이중성을 시험대에 올린다.
와칸다 왕위 계승의 갈등은 바로 우리 내면 깊은 곳의 왜곡된 욕망과 맞닿아 있다. 감정이 원칙을 짓누르는 순간 정의는 갈피를 잃고 방황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한다면 ‘누가 이겼는가’보다 ‘그 과정이 정당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의란 때로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일지라도, 그것이 공정한 절차를 거쳤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위에 세워진다.
이 차갑고 때로는 가혹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법과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은 우리 삶의 태도로 체화된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어떠한 감정이나 편견도 초월하는 진정한 ‘정의’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