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3년 만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한 이유

25년 1학기, 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의 첫 학기를 끝내고

by 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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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눈이 많이 내린 날, 회사 연수원을 퇴소하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부터 내 인생의 목표는 평생 공부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들이 시켜서 공부를 했다면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자 결심했다. 그래서 정작 첫 번째 대학 생활 때는 학교 수업은 잘 안듣고 전시나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여행을 다니고, 비영리 단체와 관심있는 분야의 회사에서 자원 봉사를 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치열한 취업 준비 끝, 감사하게도 원하는 회사에 입사를 했지만 직장인이 된 스스로의 모습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입사 후의 나 자신은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하고 그저 고여있다고 느껴졌다.


원데이 클래스, 자격증 공부, 새로운 운동을 배웠지만 그래도 뭔가 뚜렷하게 내 편이 될만한 공부를 하나 하고 싶어서 제 2외국어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배워오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워낙 알파벳과 문장들을 자주 마주하니 그 외에 새로운 언어를 터득하고 싶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단 한 번도 중국어를 배워본 적 없었다.

하지만 제 2외국어를 공부할거라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를 배워보고 싶었다.


3년 정도 독학으로 중국어를 배우니 여행 온 관광객에게 길을 알려주고, 동화책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정규 과정 문법과 문장 구조에 대한 이해는 확실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심화 과정에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자꾸 헤메는 느낌이 들었다.


이 때, 딱 생각했다. 학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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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는 최종 학력에 따라 2학년 혹은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다.

나는 우선 빠르게 학위를 따고 싶어 3학년으로 편입을 했지만 생각보다 듣고 싶은 수업이 많아 자꾸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출석수업에서 만난 한 학우 분께서 본인은 졸업을 하고도 한 학기에 1~2개씩 수업을 들으며 중국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방송대학교는 졸업 후에도 원하는 수업을 신청해서 들을 수 있다.)


또, 다른 학우는 이른바 방송대 학위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워낙 배우고 싶은게 많으니 A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B학과에 입학 하고 졸업.. 이런 식으로 여러 전공의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바로 내가 원했던 평생 배움을 놓지 않는 삶이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대 바이럴 아님 주의)


방송대 등록금과 학비가 비싸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바로 복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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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 수강신청을 마치고, 주문한 교재가 집으로 도착하니 다시 학생이 된 게 실감났다.


듣고 싶은 수업이 많아 이 과목 저 과목을 신청했더니 16학점이라는, 전업 대학생일 때도 힘들었던 학점을 신청하게 됐다. 한 학기 끝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16학점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다음 학기는 딱 4과목, 12학점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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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기준, 방송대 1학기 등록자 중 2학기까지 등록한 학생의 비율은 60%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오프라인 대학의 재등록율이 몇 %인지 잘 모르겠지만, 60% 정도면 낮지않은 것 같다 생각했는데 내 기준이 너무 후한 걸까?)

절대 포기하지 않기라는 챕터에 해당 내용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방송대를 지원할 정도면 이미 마음 굳게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또 막상 현실을 살아가며 학업까지 챙기는게 그리 쉽지 않은가보다.


나 같은 경우에도 기말고사 즈음해서는 정말 인생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당히 수업 듣고, 적당한 성적을 받을 거라면 이렇게까지 힘들 것 같지 않은데 이왕 시작한거 All A+ 학점으로 졸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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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여운 학교 생활 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변에 학생임을 알리기


방송대 학생들은 연령과 하는 일, 생활 환경, 공부하는 이유가 다 가지각색이라 주변에 스스로를 학생이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보통 학교를 다닐 거라 유추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주변에 부지런히 본인을 학습자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마치, 다이어트를 할 때 주변에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해야 주변 사람들도 다이어트를 도와주고, 스스로도 내뱉은 말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아직까지 공부를 놓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에 열심히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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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한 수업 당 한 학기에 한 번씩 출석 수업이 있다.

(모든 수업이 다 출석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수업은 과제물 제출로 대체하기도 한다.)


나는 첫 번째 대학교를 다닐 때는 오히려 온라인 수업의 성적이 오프라인 수업 성적보다 낮게 나오곤 할 정도로 온라인 수업에 취약했다. 누군가 나를 강제로 모니터 앞에 앉혀두지 않기 때문에 수업 시청률이 높을 수가 없었다. 겨우 수업을 들은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괜히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과연 온라인 수업을 꾸준히 들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스스로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대 출석수업은 각 지역대학에서 듣거나 지방권의 경우 ZOOM 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나는 뚝섬역에 있는 서울지역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언제든지 내가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캠퍼스가 생겼다는 기분에 괜히 든든해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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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출석수업 날 아침,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 먹기.

이런 낭만.. 첫 번째 대학에서도 느껴본 적 없어.

(그 때는 밤새 술 마시고 1교시를 째거나, 급하게 해장하고 수업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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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또 다시 학교에 두 발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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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단점은 책상과 의자가 붙어있는 지옥의 책걸상에 갇혀야 한다는 것.

그 것 외에는 아주 즐겁고 알찼던 첫 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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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중국 칭다오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아직 학기 중간이니 수업의 효력이 발휘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괜히 득의양양했다.


무엇 하나 새로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에게 방송대는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이제 막 한 학기를 끝내고나니 틈만 나면 주변에 왜 방송대 안다녀? 닦달을 하게 된다.


자, 일상이 무료한 모두들 당장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