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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여행 4일차

여행 이야기

by 조이 영

핀란드 여행 4일차 2025/01/06


늦은 아침에 눈을 떴다. 조용히 다시 눈을 감고 어젯밤 만난 오로라가 있는 곳을 그려보았다. 사리셀카 도착 후 이틀 동안 나타난 오로라의 환대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오전 액티비티를 하고 짐을 챙겨 사리셀카에서 다음 숙소가 있는 이나리(Inari)로 가야 한다. 어젯밤 오로라 헌팅을 하며 구름 없는 북쪽으로 달리고 달려 도착했던 곳이 이나리였다. 핀란드 북쪽에 있는 도시라 오로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그곳에서 오로라의 세 번째 환영을 기대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식사 준비로 캐리어에 있는 최강의 한국음식을 다 꺼내었다. 김치찌개와 햇반이 나왔고 짜짱과 카레가 뒤를 이었다. 오늘이 한국 음식 먹을 마지막 코스이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삶은 계란까지 푸짐하게 식사를 챙겨 먹었다. 어제 허스키사파리를 탄 노던 라이츠 빌리지에서 다시 추위를 뚫고 순록 썰매를 타기 위해서이다.

핀란드 라플란드 한가운데에서 얼큰한 한국 음식을 먹는 호사를 누리며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했다. 만찬 후 2박 3일 동안 머문 숙소 여기저기를 정리하느라 손길이 바빴다. 사용한 식기들을 제자리에 넣는 일, 냉장고와 방마다 두고 가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였다. 캐리어를 챙기고 나서 짐 들고 밖으로 나간 아이들이 안 보여 문이 열린 집 밖을 나가보았다.


아들은 얼어있는 차를 녹이며 짐을 옮기고 있었고 며늘아기는 보이지 않았다. 온통 흰 눈으로 덮인 주변을 살피다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설마 했는데 가까이 다가오니 며늘아기였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 다녀오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에어비앤비 주인의 주의사항을 읽고 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아마 공용쓰레기장에 버려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멀리 있으면 같이 가지 하며 얼른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사리셀카의 흰 눈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지만 낯선 곳을 혼자 갔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잘 다녀와 다행이라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교차했다. 요즘은 남자아이들이 집안일을 하는 만큼 여자아이들은 더 씩씩해진 걸까.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어 기뻤는데 며늘아기의 쿨한 모습은 더 인상적이었다. 서둘러 숙소 정리를 마치고 나니 처음 도착 했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숙소에 있는 소박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찍으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짐을 실은 차는 11시 반에 출발해 Northern light village에 도착했다. Reindeer Express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순록 썰매를 탈 때는 전날과 같은 방한복을 따로 주지 않았다. 가이드는 일행을 확인한 후 순록이 있는 구역으로 안내했다. 나무 문으로 들어가니 대기하고 있는 순록을 만날 수 있었다. 핀란드 가이드는 썰매 앞에서 주의사항을 안내하였다. 썰매를 끄는 순록은 여름동안 자연에 방생하여 일 년 중 반은 자연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순록을 잡아서 썰매에 활용하고 있어 야생성이 절반 남아 있다고 한다. 큰소리를 내거나 순록을 손으로 만지는 행동은 놀라게 할 수 있으니 삼가야 한다고 했다.


기억 속 산타할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순록썰매의 그림이 기억의 전부였기 때문일까. 썰매에 자리를 잡고 출발하였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느렸다. 썰매 대열 맨 앞에서 가이드가 결어가면서 순록을 리드하고 있었다. 그러니 걸어가는 정도의 속도라 할 수 있다. 천천히 지나가는 눈 덮인 침엽수림의 생생한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티브이 여행 프로그램에 나오는 장면 가운데에 있다는 현실감에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뒤에 있는 썰매를 끄는 순록이 우리 자리 옆으로 얼굴을 내밀고 걸어왔다. 팔에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걸음에 맞춰 뿔이 여기저기 흔들리기도 했다. 긴장이 되었지만 팔옆으로 보이는 순록의 순한 눈망울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썰매를 끄는 레인디어는 수컷이다. 이 시기에 암컷은 임신 중이라 수컷이 썰매를 끈다고 했다. 레이디어의 걸음은 레가토 같았다. 음과 음 사이가 끊이지 않게 매끄럽게 연주하는 음악처럼 편안하고 목가적이었다. 전날 허스키들이 보여 준 핀란드의 활기찬 겨울 풍경과 대조적이었다. 순백의 소나무와 가문비나무 겨울 숲의 모습을 순록의 발걸음에 맞추어 음미하였다.


액티비티를 마치고 사리셀카 시내를 들렸다. 희다 못해 푸른 눈이 가득한 마을에 세워진 가로등이 사랑스러웠다. 회전교차로 중앙에 쌓여 있는 눈 속에서 불빛이 빛나고 있다. 낮에도 어둠이 깔려있는 핀란드 상점 역시 노란빛으로 주변을 밝혀준다. 불빛은 보는 것 만으로 온기를 느꼈다.

사리셀카를 떠나기 전 기념품 가게에 들러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소품들을 살폈다. 기념품샵에서 만난 의외의 선물은 rotary candle holder이다. 가게 창틀 구석에 있는 반짝거리는 순록과 눈모형이 마음에 들어 찾았는데 같은 모양의 상품이 없었다. 계산대에 가서 제품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자신들이 조합해 놓은 거라고 했다. 두 상품의 소품을 섞어 장식한 모양이다. 그 제품을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점원은 망설이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 장식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가운데 촛불을 켜니 순록과 눈모양 장식이 불에서 올라오는 온기로 회전이 되었다. 즐거운 기념품을 가까이하게 되어 기뻤다.

사리셀카의 기념품을 챙겨 이나리에 있는 숙소를 향해 갔다. 북쪽으로 67.5km를 이동해야 했다. 이나리에 있는 숙소는 Hoiiday Village Inari이다. 방 안에서 오로라 보기 위해 유리 돔 숙소를 예약하였다. 침대에서 보이는 오로라를 기대하며 도전하기로 하였다. 눈 길을 고려해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였다. 다른 숙소에 비해 비싸 아이들이 여러 경로를 검색하였다고 한다. 최종 Holiday Village Inari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여 여행숙소 사이트보다 40% 할인된 가격으로 예약하였다고 한다. 이나리를 향해 가는 동안 하얗게 눈 덮인 호수 주변을 한참 달렸다. 자연호수가 1000개가 되는 나라 핀란드를 실감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이미 한밤중과 같은 어둠 속에 밝게 빛나고 있는 호텔 리셉션이 보였다. 창가로 보이는 별모양의 조명은 이케아에서 보았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보았을 때 종이로 만든 조명이 가벼워 보였는데 낯선 곳 춥고 어두움이 많은 그곳에서 본 같은 별조명은 따뜻했다. 어둠 속에 쌓여 있는 창 밖 흰 눈까지 멀리 비추는 노란빛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에서 나오는 불빛 같았다.


배정된 오로라캐빈으로 이동했다. 단독으로 된 숙소로 아담하고 상상했던 그 모습이었다. 숙소에 들어서 하늘을 향해 나 있는 창문과 그곳을 통해 보이는 별과 흰 호수를 보는 순간 상상은 현실이 되어 눈이 번쩍이게 하였다. 숙소에서 나는 나무 냄새가 더 즐겁게 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핀란드 집 구조처럼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 벽으로 된 작은 공간이 나온다. 그곳은 방한복을 정리해서 걸어두거나 신발을 보관하는 곳이다. 외부와 실내 공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중문을 열고 들어 서니 역시 나무 벽으로 되어 있었다. 화장실 내부 벽들까지도 나무로 되어 있어 샤워를 할 때 나무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유리돔에 눈이 쌓여 있었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창문에 눈을 녹이는 버튼을 발견하여 눌렀다. 벽에 붙어 있는 순록가죽이 보였다. 가죽을 쓰다듬으니 낮에 내 어깨에 얼굴을 비비던 순록의 촉감이 생각났다. 치밀한 털에서 한파를 견디는 힘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 레스토랑을 찾았다. 숙소와 좀 떨어져 있어 10분 정도 눈길을 걸어가야 했다. 레스토랑 오로라에서 우리가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었다. SAUTEED REINDEER(순록볶음)과 Lingonberry , LAKE Inari WHITE FISH(버터로 구운 이나리 흰살생선)이다.


양고기를 즐기지 않는 입맛이지만 순록 고기는 불고기와 비슷한 식감으로 향도 강하지 않고 먹을만했다. 핀란드에서 순록은 다양한 형태로 사람을 이롭게 하고 있었다. 순록 볶음과 같이 나온 새콤 달콤한 Lingonberry 잼이 맛을 잘 잡아 주었다. 링곤베리잼은 주황빛의 클라우드베리 쨈과 같이 핀란드에서 맛볼 수 있는 붉은빛의 베리쨈이다. 피자와 와인과 함께 한 핀란드식 저녁 식사는 북유럽의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버터로 구운 이나리 흰살 생선
순록볶음
핀란드 피자

식당 앞에도 노란 불빛을 밝히고 있는 마트와 기념품가게가 있었다. 식사 후 들러 산책 겸 물건들을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에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숙소 옆 사우나 건물에서 수영복만 입고 뛰어나와 쌓인 눈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몸에는 김이 나고 있고 웃으며 소리를 지르면서 눈으로 넘어졌다. 그 느낌 아니까 우리들도 즐거워졌다.

레스토랑 오로라 건너편 기념품가게

숙소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호수로 갔다. 이 넓은 호수의 하늘에서 오로라가 떠올라 주기를 바라며. 추위에 오래 서있지 못하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깨끗해진 창가를 보고 앉아 반짝이는 별을 보며 오로라가 다시 보이기를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다. 졸린 눈을 뜨고 있으려 했지만 오랜만에 마신 와인 때문이었을까. 기다리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밤이었다.

호수가 보이는 오로라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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