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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여행 3일차

여행이야기

by 조이 영


핀란드여행 3일차. 2025/01/05


밤새 바삐 다니는 꿈을 꾸다 깨었다. 오로라와 첫 대면으로 들뜬 마음에 잠이 들어서일까. 눈을 뜨는 순간 여행 중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아들이 잠에서 깨어 식탁으로 오더니 군대 복귀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휴가를 마치고 생활관에 들어가고 있었다고. 사리셀카에 오기 위한 긴 여정이 참으로 긴장되는 일이었으리라. 아들의 심난한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였다. 며늘아기는 밝은 목소리로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하였다. 오전에 액티비티가 예약되어 있고 돌아와서 낮 시간은 집에서 사우나를 즐기며 쉬기로 했다. 저녁 8시에 시작되는 6시간 오로라 헌팅계획 때문이다.


핀란드에서 첫 아침 식사라 음식을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했다. 집에서 싸 온 비상식량들 중에 속을 든든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면서 골랐다. 준비해 온 음식 중에 비중 높은 국물 쌀 떡볶이와 개별포장된 오뚜기누룽지를 캐리어에서 꺼내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누룽지와 떡볶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집을 생각하게 하였다. 전날 삶아 놓은 계란과 봉지장조림. 베이비당근. 바나나까지 챙겨 먹고 설국의 거리로 나섰다.

따뜻한 누룽지와 국물떡볶이
베이비당근


외출 준비하면서 가지고 온 옷 중에 제일 두껍고 따뜻한 옷을 꺼내어 입었다. 하의는 히트텍 내복을 입고 편한 바지를 입은 후 그 위에 스키 바지를 입었다. 상의는 히트텍 위에 스웨터를 입고 패딩을 입었다. 양말도 두 켤레를 겹으로 신고 장갑은 밀착력 좋은 장갑 위에 스키 장갑을 준비했다. 발바닥에 붙이는 핫팩은 발등에 붙였다. 그래도 추워지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대용량 핫팩을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외투에 모자가 달려 있지만 귀를 보호할 타이트한 모자도 착용하였다.


우리가 입은 상의와 하의는 세 겹이었고 양말과 장갑은 두 겹이었다. 결코 과하지 않았다. 걷기에 둔하고 답답했지만 그 덕분에 라플란드의 강추위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특히 주머니에서 열을 내는 핫팩과 발등에 붙이는 손바닥 만한 핫팩이 유용하였다.

사리셀카 중심지 Holidaty Clus

오전에 있는 허스키 사파리 체험을 위해 우리를 픽업해 줄 약속장소로 갔다. 사리셀카 중심에 있는 Holiday Club 호텔 앞이었다. 숙소에서는 3분 거리다. 사리셀카 중심에 숙소를 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틀 동안 오전에 참여할 윈터 액티비티는 ‘Northern Lights Village’ 호텔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10시 10분 약속시간에 도착하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한국인 일행도 있었다. 시간 내 도착한 승합차를 타고 Northern Lights Village를 향했다. Village에는 직접 운영하는 숙소가 있어 그곳에 묵으며 액티비티를 참여하기도 한다.

노던라이츠 빌리지

액티비티를 준비하는 대기 장소에 도착하니 특별한 방한복을 나누어 주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입고 온 옷 위해 상하가 붙어 있는 파란색 빨간색 최강의 방한복을 입었다. 장갑은 우리가 끼고 있는 손가락이 있는 스키 장갑보다 업체에서 주는 벙어리장갑이 더 따뜻할 거라고 추천하여 가죽 벙어리장갑을 사용하였다.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처럼 천천히 걸으며 개들이 짖고 있는 숲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입구에는 길 양 쪽으로 개들과 썰매가 줄지어 있었다. 허스키 썰매는 2인 1조로 한 사람은 앞에 앉고 한 사람은 뒤에 서서 달린다. 핀란드여행을 상상하며 두려웠던 일 중에 하나이다. 개들이 내달리는 숲 속에서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개들에게 가까이 가기 전에 체험 가이드는 10km 이동하는 허스키 썰매의 운전방법과 주의사항을 전했다. 달리는 썰매를 정지시키는 방법과 5Km 정도 달린 후 운전자를 바꾸는 시간을 준다는 것과 썰매 밖으로 손을 내밀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출발 지시와 함께 양 쪽으로 대기하고 있는 썰매로 걸어가는 동안 달리고 싶어 하는 허스키들의 짖는 소리가 우렁찼다. 간혹 허스키가 아닌 사냥개 종류의 개들도 보였다.

허스키썰매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 썰매는 눈 덮인 침염수 사이로 미끄러져갔다. 맨 앞 가이드가 리드하고 뒤 이어 일행이 줄지어 달려 안심이 되었다. 개들이 끄는 썰매 속도는 겁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지나가는 풍경을 보기에 딱 좋은 속도였다. 사진도 잘 찍을 수 있고 풍경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허스키들의 수고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쯤 개들은 달리면서 냄새도 맡고 응가도 누고 쉬도 하기도 했다. 달리면서 떨어지는 배설물이 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리지에서 나눠주는 빨갛고 파란색의 방한복을 입고 타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썰매 앞 쪽에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주행길 밖으로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손을 뻗어 곱고 두툼하게 쌓여있는 눈을 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주의 사항에 손을 내밀지 말라고 한 가이드의 말을 지키려 노력했다.


겨울 왕국


라이딩이 끝나고 나무로 만든 오두막에 들어서니 모닥불 주변에 베리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를 맞이하는 분은 끓고 있는 차에 대해 설명을 하며 컵에 차를 부어 하나씩 나눠 주셨다. 모닥불에 탄 검은 주전자에서 나온 차는 딸기향과 블루베리 향을 풍겼다. 따뜻하고 달콤한 차는 찬 몸을 녹일 뿐 아니라 마음까지 말랑하게 해 주었다.

오두막에 준비된 모닥불과 따뜻한 베리 차


단체로 참여하는 체험이지만 마음은 여유로웠다. 두꺼운 옷 위에 또 방한복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준비할 때도, 허스키썰매를 찾아 자리를 잡을 때도, 차를 마시고 나서도 오세요. 가세요 하는 지시가 없었다. 서두르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주어 스스로 편안하게 움직이도록 했다. 라플란드의 풍경을 즐기기 위해 온 여행객을 배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Northern Lights Village에서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리셀카에 있는 K마켓에 들렸다. 마켓에 있는 물건들 사이를 걸을 때는 기대감과 집중력이 최고조가 되는 듯하다. 특히 외국여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높은 집중력의 시간이 여행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핀란드의 다양한 자일리톨을 구경하고 점심에 먹을 라쟈냐. 저녁으로 먹을 삼겹살과 로메인 상추, 당근 등을 샀다.


추위에 빨개진 얼굴로 라자냐를 데우며 식사를 준비한 후 열심히 먹었다. 두껍게 추위에 중무장을 하고 다녀서인지 에너지가 많이 쓰였나 보다. 움직일 때마다 숨이 찰 정도였으니. 식사 후 집안에 있는 사우나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무로 만든 사우나 실 안에 있는 돌을 전기로 데우기 시작했다. 사우나 안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서 뜨거워진 돌에 물을 부어야 한다. 물이 돌에 닿으며 기화하는 습기가 퍼진다. 열기와 습기가 뜨겁게 품어 나올 때 은 기분 좋게 놀라고 곧이어 개운해졌다.

숙소 사우나실

아이들은 사우나 실에서 뜨거워진 몸을 하고 집 밖에 나가 눈 위에 눕기도 했다. 수영복을 입은 채 영하 20도가 넘는 집 밖으로 나가 물개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왔다 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아이들 같았다. 나도 사우나 후 더운 몸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눈 위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겨우 쌓인 눈을 손으로 떠 세수정도 만 할 수 있었다.


추위가 극심한 사리셀카의 집들은 방풍이 잘 되어있었다. 숙소도 그렇고 주변 기념품샵을 가보아도 실내에서는 라플란드의 찬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숲과 호수가 많은 나라 핀란드라 그런지 창틀도 나무로 되어있다. 이중 창문으로 되어 있다 해도 나무로 짠 창틀인데도 찬바람이 전혀 새어들지 않았다.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는 실내도 서늘한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유리에 손을 대어 보았지만 한기가 느껴지지 않아 신기했다. 유리의 두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두꺼운 것 같다.

단열 최고인 나무 창틀

사우나를 한바탕 한 후 노곤해진 몸으로 잠시 잠을 청하였다. 밤에 있을 오로라 헌팅 위해 저녁 식사는 기름지게 준비하였다. 마트에서 산 로메인 상추와 삼겹살을 구워 한국에서 가져온 쌈장, 햇반과 함께 먹었다. 외국에서 삼겹살을 먹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트에는 친숙한 모양의 고기 부위가 잘 진열되어 있어 놀라웠다. 맛있는 한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 후 외출 준비를 하였다. 이번 체험은 오로라를 찾을 때까지 떠나는 여행으로 미니밴을 타고 간다. 오전에 갔던 사리셀카 중심에 있는 Holiday Club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 보다 더 추위에 대비해야 된다는 며늘아이의 당부를 생각하며 단단히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저녁 8시 정각에 이탈리아인 헌터와 만났다. 우리 외에 4명의 일행이 더 있었다. 사리셀카에서 출발하여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가이드는 지인에게 전화도 하면서 오로라 지도를 보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곳은 내리막 길로 미끄럼을 타듯 내려가야 했다. 어둠 속 눈길을 따라 걸어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고요한 밤의 적막 속에 일행은 하늘을 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헌터의 지시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로 돌아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깜깜한 승합차 안에서 또다시 앞만 보고 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기 시작했다. 헌터는 트렁크에 있는 보온병에서 베리차와 하트모양의 진저비스킷을 나눠주며 구름이 없는 곳을 향해 더 북쪽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6시간 오로라 헌팅의 최종 목적지

출발 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난 11시쯤 이나리 호수 부근에 도착하였다. 그 장소는 호수 위라서 그 전의 장소들보다 시야가 넓었다. 오로라의 출현을 기대하며 모두 차에서 내려 하늘을 보며 기다렸다. 이제 적막한 밤하늘을 보며 낯선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익숙해진 듯했다. 잠깐의 고요의 시간이 지난 후, 멀리서 초록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연기는 길어지며 우리들 가까이로 오면서 높아졌다. 다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다시 떠오르고 흘러가기를 반복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때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넓은 하늘은 온 우주가 되어 흐르는 오로라의 황홀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가장 좋은 시간에 나타난 오로라는 태양의 바람과 지구의 자기장이 만나 연주하는 협주곡이었다.

아~ 오로라

오로라 부근에서 보이는 북두칠성이 환상이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별자리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내가 서있는 땅으로 가까이 내려와 있는 듯했다. 라플란드의 하늘은 우리와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예수님의 옷자락 같은 초록과 스펙트럼같이 펼쳐진 붉은빛의 오로라 아래에서 우리는 축제를 지내는 사람들처럼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오로라와 함께하는 우리들

가이드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즐거웠는지 연신 재미있냐고 물어보았다. 좋다고 대답하니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며 이탈리아 남자 특유의 진한 미소를 보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오로라가 멀리 흩어질 때까지 머물렀다. 차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일행도 있었지만 한시도 놓칠 수 없어 계속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시 별만 반짝이는 하늘이 되었을 때 가도 될까 하는 헌터의 물음에 차에 올랐다. 오로라를 본 만족감 때문이었을까. 어두운 밤길을 되돌아가는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일행과 처음 만난 곳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오로라 헌팅은 큰 몫을 잡고 만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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