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어두운 이른 아침, 호텔에 준비된 공항 셔틀을 타고 10분 거리의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3 Rossipole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어제 도착했던 터미널 2로 이동하였다. 10시 45분 출발하는 핀란드 로바니에미행 에어프랑스 비행기수속을 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에서 계획했던 일정은 핀란드행 직항으로 헬싱키 도착 후 로바니에비로 갈 계획이었다. 항공사의 당일 비행취소통보로 어긋난 일정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을 체험하게 하였다.
파리를 잠시 머물다 떠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지 LADUREE 라뒤레 마카롱을 먹어보는 일이었다. 12종류 중에 마카롱 중에 각자 원하는 맛을 골랐다. 새롭고 낯선 맛이 많았다. 그중 익숙한 향이 나는 피스타치오가 가장 마카롱다웠지만 비누향이 나는 낯선 맛도 애써 음미하려 했다. 샤를드골 공항 까페라떼도 주문하였다. 목 넘김 후 남는 진한 우유향은 여행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잠시 들려 가야 하는 도시 파리를 먹고 마시며 마음에 담았다.
핀란드 로바니에미행 비행기는 A320-200이었다. 크지 않은 비행기로 에어버스에서 만든 비행기이다. 등받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안내지를 꼼꼼히 보게 되었다. 비행기번호에 대해 그동안 무심하였다. 무안사고 이후 불안한 마음은 안 보던 것을 보게 한다. A로 시작하면 Airbus로 유럽에서 만든 비행기이고. B로 시작하면 Boeing으로 미국 비행기다. 비행기는 예정시간에 뜨지 않았다. 기장이 안내방송으로 기름을 빼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20분 대기하라는 시간은 한 시간이 넘어갔다. 작은 비행기라 초조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여행은 모험이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대기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이 즐겨하는 게임이 클래시로열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샌드위치 간식. 흔들림이 함께 한 3시간의 비행이 끝났다. 모두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랜딩 후 여기저기에서 박수를 쳤다. 그 솔직함이 어색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여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으로 간 남미에서는 랜딩 할 때 손뼉 치는 일이 많다고 하였다. 랜딩 하면 얼른 핸드폰 켜고 빨리 나가려 짐 내리려 만반의 준비를 하는 나와 달랐다. 로바이에미행 승객들은 방한부츠와 패딩과 모자를 챙겨 입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입고 온 그대로인 우리에게 그들의 모습은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을 향해 가는 긴장감을 더했다.
비행기와 게이트가 연결이 안 되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기다리고 있는 환승 버스를 타고 공항 연결 부위로 가야 했다. 로바니에미 공항은 바깥의 냉기와 다르게 따뜻하고 포근하였다. 천정에 순록뿔로 만든 둥근 조명이 보였다. 드디어 산타클로스의 공식 거주지이자 북유럽 라플란드 지역의 중심도시 로바니에미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수속을 마치고 나와 공항 내에 있는 렌터카 안내데스크를 향했다. 다양한 렌터카부스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우리는 영국 렌터카 회사인 Green Motion 부스를 찾았다.
Discovercars.com 으로 예약한 차의 픽업을 확인했다. 바뀐 비행시간으로 예약시간 보다 늦게 도착해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가장 큰 손실은 로바니에미 도착 당일 Lapland Welcome 투어사에 예약한 5시간 소요 오로라 투어를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픈 채팅을 이용해 취소되는 투어를 만회해 보려 했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렌터카 키를 받아 공항 밖을 나가다 주춤했다. 공기 중에 흰 운무가 날리는 모습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눈보라이기도 하고 공기 중 습도가 얼어서인지 하얗게 안개가 낀 듯했다. 기온을 표시하는 전광판은 –27℃를 알렸다. 로바니에미의 오후 5시 모습은 꽁꽁 얼어붙은 한 밤이었다. 대기하고 있는 렌터카는 온통 얼어서 팽창하고 있는 듯 건드리면 깨질 것 같았다. 얼어있는 자동차 앞 유리 얼음을 녹이고 털어 우선 시야를 확보했다. 아들은 흰 눈으로 다져진 언 땅 위를 조심스럽게 출발하였다. 라플란드 여행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사리셀카에 있는 숙소이다. 북쪽 눈길을 244km 가야 하는 곳이다. 공항을 벗어나니 불빛이 없는 어두운 길이 이어졌다. 이 길에 대한 우려로 우리 모두 국제면허증을 준비하였고 24시간 출동하는 보험도 들었다. 흰 눈에 덮여 있는 조용한 숲을 깨우느라 상향등을 켰다 컸다를 반복하며 북쪽을 향해 나갔다. 주변에 마을이 가까워지면 노란빛의 환한 가로등이 나타났고 마을을 지나면 다시 암흑의 길이었다. 지나는 차도 많지 않았다. 길가로 이어지는 침엽수들은 눈을 얼마나 오랫동안 얹고 있는지 온통 두꺼운 흰 눈에 덮여있고 주변의 검은 어둠과 공존하여 흑과 백의 세계를 연출했다.
1시간 반 정도 눈길을 달렸을 때 운전석에서 아들이 "보인다 보인다"를 외쳤다.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에 운전석 앞 유리를 제외한 창문은 얼음이 잔뜩 껴 있어 밖이 잘 보이지 않았고 창문을 내릴 수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손톱으로 창문 얼음을 긁어보아도 꿈적하지 않았다. 앞자리로 얼굴을 내밀며 어디 어디 하니 아들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안경을 끼고 나가 까만 하늘을 살폈다. 별들이 뿌려진 밤하늘에 희뿌연 초록빛이 가늘고 길게 퍼져있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나는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초록 연기 같은 가는 빛은 자리를 이동하면서 물이 흐르듯 움직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한 빛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도 갑작스러운 오로라의 출현으로 수동카메라를 꺼내어 찍느라 부산했다. 잘 보려고 안경을 쓰면 마스크에서 올라오는 입김으로 시야가 뿌옇게 되어 벗었다가 아쉬워 다시 쓰고를 반복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모든 것이 얼어버리는 찬 공기에 사진 찍느라 모자와 장갑을 벗어 빨갛게 된 아이들의 손과 귀를 걱정을 하며 오로라와 첫 대면을 하였다.
너무 추워 차 밖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오로라를 두고 간다는 게 아까웠지만 차로 들어왔다. 자동차가 출발하여 이동하는데 다시 오로라가 따라오듯 하늘에 피어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로라를 만나는 행운에 그저 감사했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오로라를 보려는 여행에서 못 보고 가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보길 얼마나 바랐는지. 오로라를 보면 신의 존재를 더 가까이 느낄 것 같았다.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상상하였다. 그 순간 나의 느낌이 궁금했다.
숙소를 향해 가는 길은 두려움에서 자신감으로 바뀌어 우리들의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숲이 이어져 있는 도로를 달리다 마켓에 들렸다. 밤에 도착하는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2박 3일을 지내야 하기에 필요한 식료품이 필요했다. 핀란드 마켓은 S마켓과 K마켓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마트와 홈플러스 같은 마트라 할 수 있다. 처음으로 간 마켓은 S마켓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블루베리 주스와 클라우드베리 요플레를 샀다. 블루베리는 핀란드어로 Mustikka이다. 베리 종류가 많아 블루베리 그림으로 선택하다 다른 제품을 구입할 수가 있다. 꼭 Mustikka라 적혀 있는 것을 구입해야 한다. Bonne, Valio 제품이 맛있다고 한다. 친구집에서 로버츠베리에 야생빌베리 원액을 먹어보았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100% 원액을 찾았다. 한국에서 비싼 가격에 비해 저렴하게 구입한 100% 블루베리 주스는 신선하고 꾸덕한데 신맛이 좀 있다. 당분이 들어 있는 15% 주스를 사서 조금씩 섞어 마시면 쉽게 마실 수 있다. 구워 먹는 치즈와 핀란드 original 롱 드링크 진도 샀다. 사우나 후에 우리나라에서 바나나 우유를 먹듯이 친숙하게 마시는 음료로 진과 자몽맛이 나는 알코올음료이다. 삶아서 먹을 계란과 섬유질 보충을 위해 손가락처럼 길쭉한 베이비당근도 샀다. 달고 먹기 좋은 크기라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핀란드는 수돗물을 먹어도 된다고 한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습관 때문에 생수가 필요할 것 같아 물을 샀다. 물인지 알았던 그것은 탄산수였다. 페트병 밖 라벨을 살피고 샀는데도 불구하고. 일반물은 Lahdevesi이고 탄산수는 Kivennaisvesi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핀란드에서 물을 살 때 탄산수가 많기에 탄산수인지 향이 들어가 있는지까지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쇼핑을 한 후 다시 2시간 반 눈길 운전해 목적지 사리셀카 (Saariselka )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하였다.
에어비엔비 숙소는 사리셀카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조용한 단독주택으로 핀란드의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욕실 안에 사우나실도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 삶은 계란과 당근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 부근 kaunisp`a`a 언덕으로 갔다. 오로라 앱에서 붉은색으로 오로라 지수가 떴기 때문이다. 언덕이 스키장 부근에 있다는 말에 한국 스키장 언덕을 상상하였다. 가는 길이 위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며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또 한 번 여행은 모험이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상상한 오르막이 아니었고 거리도 가까웠다.
차를 주차하는데 이미 오로라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갓길에서 본 구름 같은 오로라와 다르게 글라데이션 되어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커튼처럼. 오로라는 극지방이 가까울수록 관측이 쉽기 때문에 극광이라고 한다. 핀란드 북쪽 라플란드 지역에서 보는 오로라는 북극광(Northern Lights)이라고 불린다. 노던 라이트를 조금이라도 잘 찍기 위해 이중으로 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핸드폰을 조작하게 된다. 맨손으로 한 두 장 찍고 나면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맨살을 공기 중에 내놓는 것은 위험했다.
오로라를 잘 보기 위해서는 불빛이 없는 곳 이어야 한다. 오로라 사진을 찍기 위해 야간모드로 하고 사진이 찍히는 2,3초 정도 움직임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20℃가 넘는 온도에서 스키 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조작할 수 있는 장갑 때로는 맨손으로 3초를 견디며 사진 찍기를 반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늘의 오로라와 땅의 피사체를 같이 보이도록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 버튼 누르기 2초 전 다른 사람이 플래시로 사람에게 빠르게 빛을 비추고 없애 준 후 셔터를 눌러야 한다.
사진은 아들이 찍어 주겠거니 하고 방심하다 뒤늦게 오로라 찍는 방법을 알게 된 후 부랴부랴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옆에 있는 차 후미에서 나오는 브레이크 등 때문에 붉은색이 비춰 오로라가 흐리게 보이는 거 같아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니 붉은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도 근사하다. 오로라 헌팅 투어를 놓쳤지만 로바니에미에서 첫날 오로라의 성대한 환대를 받게 되어 즐거웠다. 하늘에서 내리는 오로라를 바라보니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계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내려와 주기를 바라며 밤늦게 까지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