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허기를 채울 밥은 남이 아니라 내가 지어야 해요

내 영혼의 따끈한 햇반

by 사막나비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다. 멘토 오은영 박사님이 매 회 출연하는 금쪽이 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주고 어루만져 주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올 때도 있다.

얼마 전에 싱글 맘이 초등학교 2학년인 남자아이가 유독 자신에게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며 출연한 적이 있다. 의뢰인 어머니와 아이의 일상을 관찰카메라로 살펴보았을 때 조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의 감정이 일관되지 못하고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이를 육아하면서도 초등학교 아이를 영유아 다루듯 과잉보호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마치 직장동료에게 대하듯 차갑고 냉정하게 말하였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오은영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아이들의 정서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행동은 아이의 정서를 허기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정서적인 허기,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나는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사실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에 왕따라기 보단 은따에 가까웠다. 학업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늘 학교와 집 그리고 성당을 오고 가며 바른생활만을 고집하는 내가 아이들의 눈에는 재미없고 약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공부하는 법에 대해 물으러 오는 아이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고등학교 일 학년 반장이 된 후였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데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어떻게 실장으로 선출되긴 했는데 반 아이들을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일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반 아이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펑펑 울며 하소연한 일이 있었다.

“엄마, 반장 노릇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이 나에게 너무 못되게 굴어서 마음이 아파요.”

“그러게 왜 반장을 한다고 했니? 네가 선택한 일이니 책임도 네가 져야 한다.”

순간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내가 원한 것은 단 한마디였다.

“우리 딸 힘들었구나.”

아니 그 말도 필요 없었다. 그냥 포근히 안아주기만 했어도 충분히 배가 불렀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계속 나는 배고프고 외로운 상태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참 많은 세월을 방황하며 보냈던 것 같다.

이 문제는 비단 나만 겪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정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번에 채워져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릴 때는 부모의 사랑에서 허기를 채우고, 조금 커서는 또래 친구에게서 성인이 되어서는 연인이나 종교에서 이 끝나지 않은 허기짐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애달프고 수동적이다. 누군가가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이기에 어떤 인연을 만나냐에 따라 따뜻한 밥을 먹으며 든든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또 팔자? 가 드센 사람은 평생 찬밥이나 구걸하듯 먹으며 허기지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쉼 없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생존해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결국 나의 정서적 허기짐을 채울 밥은 내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때 누가 채워주지 않아도 내 마음은 배부르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선 살면서 받은 트라우마를 씻어내야 한다. 그리고 제삼자의 눈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나를 지켜낸 자아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언컨대 스스로에게 갓지어낸 따끈한 밥을 지어줄 수 있는 법을 빨리 익히면 익힐수록 꿈을 실현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마음에 허기를 채워 줄 밥은 자기가 지어야 한다. 햅쌀로 갓 지은 따끈한 쌀밥을 매일 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환경이 어떠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상관없이 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된다. 시절 인연이 주는 애정은 간식일 뿐이기에 감사히 받지만 절대 의존적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