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조앤은 스스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변호사 남편과 세 자녀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하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집안을 잘 건사한 덕분이라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바그다드에 사는 막내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다. 런던에 살던 그녀는 딸 병시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등학교 동창 블란치를 만난다. 블란치는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미모, 선망의 대상이었다. 복잡한 이성 관계를 갖던 블린치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늙은 블란치는 미모가 다 사라지고 고생의 흔적과 천박함만 남아있었다. 조앤의 눈엔.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블란치는 조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조앤의 남편과 막내딸에 대해. 그리고 폭우로 인해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연될 수 있다며 경고한다.
조앤은 불쾌한 마음을 애써 잊으려 하며 기차에 탔고 블란치의 경고대로 사막 한복판에서 기차는 멈춘다. 조앤은 아무 할 일 없이 멈춰있는 시간, 과거를 생각하며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가정에서 벌어진 이상한 단서들을 떠올린다.
남편이 젊고 예쁜 여자와 키스하던 장면, 옆집 여자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앞만 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감돌던 묘한 분위기.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큰딸과 큰 소리로 싸우던 날. 그 이후 싸늘한 큰딸의 태도. 서둘러 결혼해서 집을 떠난 막내딸. 조앤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애써 잊었다. 가족들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직 조앤을 제외하고
왜 모든 가족은 그토록 집을 떠나고 싶어 했을까? 그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을까? 조앤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자기 뜻만 가장 옳다고 믿었다. 신혼 초, 남편이 변호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농사지으며 살자고 했을 때, 조앤은 말했었다. 당신이 뭘 진짜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래.
내가 뭘 좋아할지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안다고? 남편이 되물었다. 조앤은 남편의 진심을 무시했었다. 그녀는 딸들도 그렇게 키웠다. 너희도 언젠간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거야. 그녀는 남들에게 보이는 삶이 너무 중요했다. 고상해 보이고, 윤택해 보이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가정은 무너지고 있었다.
오직 조앤만 행복했다.
사막에 홀로 남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 사방의 구멍에서 도마뱀이 쏙쏙 튀어나오듯이 막아두었던 그녀의 잠재된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깨달았다. 가족들의 불행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차는 다시 집을 향해 출발하고 그녀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변했음을 빨리 말하고 싶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큰 딸을 보니, 여전히 싸늘하다. 조앤은 생각했다. 언제 내가 변했다고 말하지? 그녀는 미룬다. 남편을 만났다.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변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예전과 전혀 다름없는 태도와 말투로 남편에게 훈계한다.
마침내 속으로 다시 결론을 내린다. “내가 너무 더워서 잠깐 정신이 이상해졌던 거지. 역시 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고, 가족들 모두 내 덕분에 행복해”
에필로그
남편은 중얼거린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나는 조앤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보며 그녀가 어리석고 집요한 거머리 같다고 생각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심리묘사의 달인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간 심리를 알지 못하면 추리 소설을 쓸 수 없음을 기억했다.
내가 만난 한 여인이 떠올랐다. 조앤과 너무 흡사했다. 내가 만난 그 여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대화는 불가능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28번을 시도했다. 그녀는 내가 지나가는 골목에 숨어 기다리기도 했다. 그녀는 언성을 높이는 법도 없었고 언제나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가면을 쓴 듯이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조앤과 같은 여자가 얼마나 숨이 막히는지 안다. 4시간을 대화해도 1분도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과거의 사건과 심리묘사가 약 3분의 2를 할애하는 소설의 결말이 도대체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다. 조앤이 자기 잘못을 깨닫는 순간, 아, 뻔한 결말로 가는가! 실망할 뻔했다.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순간적 감정의 동요는 잠시 깨달음의 상태로 인도할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본체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만으로 변하지 않는다.
감정이 사라지면 의지도 사라진다.
감정은 강력하지만 온전하지 않다. 감정과 이성이 함께 움직여야 의지가 지속된다. 분위기에 휩쓸려 내린 결정도 후회가 따라올 수 있다. 감정은 이성에 온기를 부여하고, 이성은 감정에 합당한 정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감정과 이성이 어우러져 서로를 추동할 때, 의지는 지속력을 갖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비겁하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