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내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를 구하기 위해서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언니와 팔순의 나이에도 무병하게 집밥을 차려주시는 엄마가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똑같은 산책길에서 매일 언니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꽃송이들.
한국을 떠난 지 4년 만에 돌아와 한국의 봄을 만끽하는 요즈음 나는 평안하다. 언제 봄을 이렇게 피부 세포 하나하나까지 만끽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매일 매 순간 봄을 느끼고 산다. 독일의 봄은 보통 사월 초에 맞는 부활절로 시작한다. 그때 꽃들은 피어나고, 연둣빛 새순들이 돋아나고, 봄바람도 누그러진다. 그래도 한국과의 차이가 있다면 봄바람. 이 무렵 독일의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진다면 요즘 내가 맞는 한국의 봄바람은 가슴속까지 청량하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외국에 살면 추위가 더하다. 여기는 내 나라여서, 외모도 말도 이질감이 없어서,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동네 공원에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고 산책길에 스며들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요즘은 매일 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쌍둥이 자매라서 얼굴만 보고도, 서로의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그런 사이다. 그게 항상 좋다는 뜻은 아니다. 둘이 마음을 모으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비슷한 성향이라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아무려나 50년 넘게 자주 싸웠어도 자매로서의 애정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사실 나보다는 언니가 나를 더 챙기는 스타일이다. 평소에는 귀찮을 지경이지만 이번에는 그 보살핌을 마음껏 받기로 했다. 언니는 당분간 일을 접었고 (요가 강사인 언니는 언제라도 요가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 회생에 집중하고 있다. 자기가 오라고 해놓고, 자기 집에 오자마자, 이런 엄청난 일을 겪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남편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독일에서 암 수술을 받았을 때 언니는 모든 것을 접고 독일로 오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그토록 언니를 거부하는지. 아마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언니를 알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더 아파하고 힘들어할 것을 예감하자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게 온 병을 담담하게 바라보았고, 언니는 오열하고 무너졌다. 언니는 내가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나와 몸만 분리되었지, 영혼은 하나인 샴쌍둥이 같았다. 그것이 나를 부담스럽고 힘들게 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모든 존재는 독립적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가족이니까 희생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그게 누구 건 언젠가 우리는 헤어지고, 이별을 받아들이고, 또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살거나 죽어서는 안 되지 않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암 환자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시기였다. 나 자신을 부정하고 혐오감을 겪는 과정이었다. 나의 또 다른 자아인 언니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번에는 언니도 함께 독일로 갈 것이다. 언니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시건방을 떨어도 언니의 한결같은 애정은 벽돌처럼 견고해서 끄떡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책길에서 언니가 주운 애기 솔방울들.
퇴원을 하고 언니 집으로 돌아온 첫날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병원에서 수면제 반 알로 사흘을 버티고 난 후였다. 너무 흥분했고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유는 모른다. 다행인 건 병원에서만큼 괴롭거나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집인데, 언젠가는 잠도 오겠지. 예상대로 이튿날은 잘 잤다. 수면제 처방 이후로 새벽 세 시에 깨던 습관은 새벽 다섯 시로 조정되었다. 내 침대 옆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는 언니를 깨우지 않으려고 옆방인 식탁 방으로 와서 독서등을 켜고 글을 쓴다.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나 그랬듯이 언니는 부지런을 떨 것이다. 나를 위해 상큼한 사과나 오렌지를 깎고, 건강 보조제를 챙기고, 바나나와 딸기를 믹서에 갈 것이다. 이틀 치 처방받은 항생제를 먹어야 하니 내가 좋아하는 호박죽도 데울 것이다. 10시에는 압박 스타킹을 신고 함께 산책을 나갈 것이다. 산책 중에 마실 선희 언니의 호박즙과 Y언니가 보내준 상황버섯차와 한살림의 야채즙도 천가방에 챙길 것이다. 다정한 자매들이 흔히 그러듯 서로 손깍지를 끼고 공원을 산책할 것이다. 30분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쉬는 동안에도 할 말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전 산책을 끝내면 공원 앞 친정 엄마 집으로 간다. 늘 그 나물에 그 밥이어도 맛있는 집밥. 점심에는 야채쌈을 주로 먹는다. 상추를 배불리 먹어서인지 식곤증으로 나른해질 때도 있다. 생선도 빠지지 않는다. 하루는 갈치. 하루는 작은 조기. 내 볼 살이 오르는 건 끼니마다 먹는 생선 덕분이라 믿는다. 퇴원하기 며칠 전부터 매일 1킬로씩 빠졌다. 퇴원하는 날 새벽의 몸무게는 53kg. 독일에서 올 때보다 4킬로나 빠졌다. 하루라도 빨리 퇴원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다. 엄마의 집밥을 먹고 열심히 걸어야 잃어버린 몸무게와 3주간의 입원으로 소실된 근육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점심 후 TV 채널을 돌리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가 다시 산책을 나간다. 소화를 돕기 위해서. 몸이 무거우니 천천히 걷고 자주 쉰다. 햇볕은 충분히 받는다. 비타민 D는 자외선보다 중요하니까. 점심 산책 후에는 언니 집에서 휴식한다. 말이 휴식이지, 진정한 휴식은 아니다. 나를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놓은 언니는 다시 마트로 향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참외. 설마 사월에 참외가 있을까마는, 참외가 먹고 싶다는 내 말에 바람처럼 달려 나가 갓 나온 참외를 공수해 왔다. 그날 나는 언니의 강권으로 참외를 무려 세 개나 먹어야 했고, 싱싱하다는 포도까지 한 사발을 끝내야 했다. 그날 오후 내 위는 휴식하지 못했다.
오후 다섯 시에 다시 산책을 나간다. 이 시간의 산책을 나는 좋아한다. 햇살은 강렬하지 않고 채도는 낮아진다. 오전과 낮에 보았던 나무와 꽃들도 속과 결이 달리 보인다. 차분하다. 몸도 마음도 공기도 바람도. 뱃속도 적당히 정돈되고 발걸음도 가볍다. 저녁 일곱 시에는 저녁을 먹을 시간. 산책이 입맛을 돕는다. 저녁은 구수한 된장 청국장. 생선도 빠질 리 없다. 양손으로 발라먹는 생선 구이의 맛! 엄마도 언니도 형부도 한 마리씩만 먹고 내게 양보한다. 한 끼에 작은 조기 다섯 마리쯤 먹는다. 저녁을 먹고 다시 채널 탐방. 채널이 너무 많아 정신이 산만할 때가 많지만. 언니는 나를 압박 스타킹에서 해방시키고 발을 만져준다. 엄마와 언니와 TV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 산책으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언니 집으로 오면 저녁 아홉 시 삼십 분. 열 시쯤 잠자리에 든다. 언니가 다시 발마사지를 해준다. 나에게는 내 일이라면 물불 가지리 않고 전쟁터라도 뛰어들 언니와 팔순의 나이에도 무병하게 집밥을 차려주시는 엄마가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아버지가 없고 남자 형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기억나지 않는다.
만개한 벚꽃. 이번 주말에 비가 오면 저 꽃들도 지겠지. 이번 봄에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꽃 같이 진다라는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