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불면증을 극복했나
잠 못 드는 괴로움
병원에서 3주 동안 지속됐던 불면증은 퇴원 후 사흘 만에 사라졌다. 하루 네 차례 꾸준한 산책과 밤낮으로 해주던 친언니의 발마사지. 선희 언니의 늙은 호박즙으로.
벚꽃 지면 찾아올 철쭉의 시대!
간단하다. 집에 오니 잠이 왔다? 그건 아니고. 병원에서는 매일 밤 잠들지 못했다. 내가 격리된 곳은 음압병실이었다. 거대한 음압 기기가 내는 소음은 24시간 이어졌다. 음압병실은 병실 내부 기압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병실 내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병실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특수한 곳으로 코로나 환자나 자가 격리자 환자가 머무는 곳이다. 소음은 환자의 몫이었다. 일반 6인실 병실보다 큰 곳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고립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불을 켜면 잠이 안 오고 불을 끄면 무서웠다. 핸드폰으로 외부와 소통하면서 지냈다. 주기적으로 소독을 해주던 다정한 여의사 샘과 친절한 간호사들도 위로가 되던 시절이었다.
일반 병실로 오자 6인실의 분주함과 TV의 소란스러움이 음압 기기를 대신했다. 그래도 좋았다. 내 침대는 해가 잘 드는 창가였고, 병실 공기가 탁하다 싶으면 언제든 환기를 시킬 수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침대를 둘러 쳐진 커튼이었다. 언제라도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물론 거기서도 잠을 이루진 못했다. 출입문이 열려 있어 밤새 복도의 불빛이 비쳤다. 밤 8시면 취침 모드. 밤 10시쯤 TV도 꺼졌다. 자정과 새벽 2시에 두 번 화장실을 다녀오고, 새벽 4시면 항생제를 맞고, 5시에는 체온과 혈압을 재러 왔다.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드물게 깜빡 잠드는 날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주로 언니와 놀았다.
수술을 받고 사흘이 지나 병원 복도를 걸을 때는 불면증 때문에 정신이 몽롱할 때가 많았다. 매일 아침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퇴원하기 전 열흘 동안 하루 만 보씩 걸을 때는 더더욱 집중이 필요했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끝장이었다. 스텝이 꼬여서도 안 되고, 병원 복도에 둔 적치물에 부딪혀서도 안되고, 링거대나 보조기를 밀고 지나는 나이 드신 환자들과 접촉 사고를 내서도 안 되었다. 그런 날은 신중하고 느리게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다. 걸으며 심호흡을 했다. 발뒤꿈치에서 발바닥과 발가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기. 똑바로 걷기. 보폭은 적당히. 허리와 상체를 펴고 어깨의 힘 빼기. 뒤쪽 다리를 쭉쭉 펴고 햄스트링을 늘려 부종 때문에 허벅지 바깥쪽의 저릿하고 찌릿한 증상을 완화시키려 노력했다. 오른쪽 다리는 금세 좋아졌고, 왼쪽 다리는 80% 좋아진 후 퇴원했다. 나머지 20%는 현재 언니와 공원을 걸으며 만회하는 중이다.
퇴원 후 언니 집으로 와서도 금방 잠을 잤던 건 아니다. 첫날엔 병원에서처럼 거의 못 잤다. 다른 점은 밤에 잠이 안 와도 병원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왜냐고?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여긴 내 집(언니 집)이고, 내 침대(언니 침대)고 언젠가는 푹 잘 날도 오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으니까. 밤에 잠을 못 잔다고 낮의 산책이 힘들지는 않았다. 언니가 옆에 있으니까. 온갖 소음과 답답한 공기와 혼잡한 병실 복도와 봄바람 불어오는 동네 공원도 비교 자체가 안 되었으니까. 시원한 공기. 상쾌한 바람. 벚꽃이 꽃비처럼 내리기라도 하면 내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행복은 불면증을 이겼다. 둘째 날은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던 때처럼 서너 시간 쪽잠을 잤다. 다른 점은 수면제 없이도 그만큼 잤다는 것. 그 정도로도 다음날 아침은 충분히 개운했다.
사흘째부터 잘 잤다. 밤 사이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한 번으로 줄었다. 처음엔 꿈도 꾸었으나 나흘째부터는 꿈도 없이 숙면을 취했다. 꾸준히 걸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오전과 오후 두 번.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서도 반드시 두 차례 걸었다. 소화를 잘해야 엄마의 집밥을 무리 없이 먹을 테니까. 하루에 총 네 번을 걸었다. 특히 저녁 식사 후 걷는 효과가 컸다. 배가 불러 나른해진 몸으로 걷고 나면 뱃속이 개운하다. 반면 다리는 풀리고 전신에 피로가 몰려온다. 씻고 침대에 누우면 언니의 발마사지와 함께 절로 잠이 든다. 덕분에 변비도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화장실 잘 가면 게임 끝 아닌가. 모르긴 해도 내 체중도 55킬로대로 회복되었을 것 같다. 다리에 힘도 생기고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키니까. 53킬로가 뭔가. 이 나이에. 리즈 시절도 아니고. 몸에 중심이 잡히려면 체중이 너무 빠져도 안 된다. 너무 과해도 안 되지만.
불면증이 처음은 아니었다. 3년 년 독일로 오자마자 갱년기와 함께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멋도 모르고 막 시작한 브런치에 밤낮으로 글을 쓰느라 불면증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작년 12월 독일에서 암수술을 받고 2주간 입원했을 때부터 잠을 못 잤다. 퇴원하자 다시 잠을 잤고. 이번에도 병원에서 3주간 못 잤지만 집에 오자 잠을 잘 수 있었다. 예민한 편이라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 자는 편이긴 하다. 그래도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성격 좋은 우리 선희 언니도 병원에서는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위로가 되었다. 안 좋은 내 성격 탓만은 아닌 것 같아서. 선희 언니의 담백한 호박즙도 큰 몫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호박즙을 마시면 부종도 좋아지고 잠도 잘 올 거라는 언니의 말이 내겐 부적과도 같았다. 믿음의 힘은 세다. 언니가 시골집에서 끓여 보내준다는 호박죽.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박죽을 먹으면 새순이 돋듯 내 몸에도 힘과 파릇파릇한 의지가 생겨날 것 같다. 물론 불면증 퇴치의 일등 공신은 친언니의 발마사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