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봄비를 맞으며 걸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금은 가끔 들어와 제목도 안 읽고 라이킷만 누르고 내빼지만, 언젠가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을 날을 위해서.
꽃은 왜 떨어져도 아름다운가! 떨어져서 더 아름다운가.
토요일엔 비가 내렸다. 봄비 답지 않게 세차게 내렸다. 독일에서 내리는 비는 축축하고 서글픈 느낌이 많은데 기분 탓인지 한국의 봄비는 어딘가 말랑하고 로맨틱한 느낌이 든다. 비가 온다고 산책을 빼먹는 일은 있을 수 없지.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이런 적막한 공원을 본 건 처음이다. 좋았다. 고즈넉하고 정갈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 이는 내 옆의 언니 말고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 인적이 드문 구간에서는 마스크를 내려 촉촉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기도 했다. 공기 중에 가득한 미세 물방울들이 얼굴에 와 닿는 기분도 그만이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명상. 봄비가 세차게 내려주어 가슴속이 시원해진 토요일 오전이었다.
그날 삼촌이 오셨다. 부산에서 숙모와 함께. 숙모는 부산의 옛날 추어탕과 부산 어묵을 사들고 오셨다. 공원에서 산책 후 두 분을 만나 샤부샤부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코로나로 테이블은 따로 앉아야 했다. 엄마와 숙모가, 삼촌과 언니와 내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삼촌께 잘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었으니까. 한동안 고기는 먹지 않았다.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런데 언니가 주문한 한우 샤브가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암환자라는 것도 잊고 마음껏 먹었다. 육수에 넣은 신선한 야채도, 도라지를 얹은 샐러드. 잡채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언니가 두 테이블에 한우를 추가로 주문하고, 샐러드 바에서 부지런히 야채를 날라주었다.
오후에는 엄마 집의 작은 식탁과 소파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삼촌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했지만. 두 분과 함께 했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하다. 우리 삼촌은 정치 얘기도 자주 하신다. 언니와 내가 삼촌과 같은 성향이라 부딪힐 염려가 없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내가 퇴원하던 날, 삼촌 숙모 두 분이 고향의 아버지 산소와 고조부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신 것도 알았다. 아버지 묘소가 깨끗하고 해가 잘 들어서 평화로웠다고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셨다. 내가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은 삼촌 숙모의 정성과 보이지 않는 분들의 음덕까지 있었다는 걸 알자 마음이 숙연해졌다. 시골집을 개조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수하고 계시는 삼촌은 요즘 서쪽 돌담을 쌓고 계신다. 고향집 뒤뜰에 핀 복숭아꽃나무에 핀 고운 꽃도 사진으로 보내주셨다. 새벽마다 나를 위해 백팔배도 하신다. 아침 여덟 시 기차로 오셨던 두 분은 저녁 일곱 시 기차로 내려가셨다. 내 얼굴을 보시고 마음도 조금 놓으신 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릿하고 저릿하게 만드는 꽃잎들.
내 브런치 글의 구독자이기도 한 삼촌이 몇 번 말씀하셨다. 글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힘들지 않냐고. 나는 힘들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가 이루어질 출간이나 구독자 수 같은 걸 염두에 둔 게 아니다. 내 글은 내가 우리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금은 가끔 들어와 제목만 읽고 라이킷만 누르고 내빼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을 날을 위해서다. 그때 엄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엄마가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매 순간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이를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그 사랑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글은 산책과 비슷하다. 매일 걷지만 매일 다르다. 보이는 것도 다르고 보이지 않는 것도 다르다. 같은 꽃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벚꽃 지고 철쭉 오듯, 몸의 컨디션도 모르는 사이에 미묘하게 업그레이드된다. 글쓰기처럼 몸 역시 한 치도 속일 수 없다. 정직하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엄마의 소박한 성찬을 먹고, 배는 부르고 팔다리는 무거워 소파에 계속 드러눕고 싶을 때도 떨쳐 일어나 공원을 두어 바퀴 돌면 알게 된다. 위는 소화를 시작하고 장은 활발해지고 팔다리는 힘이 생긴다. 한 번 걸으면 두 번 걸을 탄성이 생긴다. 하루 쓰고 이틀 쓰면 습관이 된다. 힘들고 말고 할 게 없다. 고민 없이 걷는다. 생각 없이 쓴다. 그것이 걷기와 글쓰기의 힘이자 답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이와는 최근에 영상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물었다. 엄마가 이모야랑 같이 돌아가니 좋지? 아이의 대답은 엉뚱했다. 얼마나 있을 건데? 글쎄, 두 달? 세 달? 왜? 아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럼 할머니랑 이모부는 어떡해!!!!" 지금 이 마당에 할머니와 이모부를 걱정하게 생겼나. 문제는 엄만데. 할머니도 이모부도 자립적이고 스스로 끼니를 챙겨 먹는 일에 문제가 없다. 좀 적적하기야 하겠지만. 병원에서 통화할 때만 해도 달랐다. 이모야가 오면 쥐똥 청소를 이모야에게 떠넘기려 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는 나. 그때 우리는 설전을 벌였다. 절대 안 돼! 이모야가 니 쥐똥 치우러 오는 줄 알아? 이모야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너, 쥐는 니가 끝까지 책임져. 밥 주고 똥 치우는 것까지. 난 학교에 일찍 가고 늦게 온단 말이야. 그래도 니가 해!!! 이런 거래에 양보란 없다.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든 살든.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축복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