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독일에는 눈이 오고
한국은 꽃들의 전성시대
지금은 철쭉의 시대. 강렬한 색깔부터 존재감이 다르다. 생명력이 느껴진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월 내내 철쭉들과 함께 할 내 산책길.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꽃이 저렇게 정갈하고 단정할 수 있는가. 반칙 아닌가. (누가 저 꽃의 이름을 알려주시면 좋겠다!)
지난 일요일은 독일의 부활절이었다. 월요일은 부활절 공휴일. 부활절인 일요일 날씨는 한국만큼 화창했다. 내가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파파와 고모 바바라와 카타리나 어머니 댁을 방문한 모양이었다. 남편과 영상 통화를 했다. 우리로 치면 크리스마스와 함께 양대 명절에 해당하는 부활절 날에 안부라도 주고받자는 뜻으로. 다 함께 어머니의 정원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햇살은 환했고 정원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모두가 나의 회복을 기원해 주었다. 뜻밖의 심려를 끼쳤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밝은 모습으로 통화를 마쳤다. 오토 아버지는 뵙지 못했다. 낮잠을 주무시는 중이라고 했다.
월요일에는 독일에 눈이 왔다. 카타리나 어머니는 눈이 쌓인 정원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남편은 뮌헨에 우박이 쏟아졌다고 했다. 독일에 사는 아이의 한국 친구 레아마리 엄마도 소식을 전했다. 내가 브런치 작가명을 바꾸는 바람에 브런치에서 사라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며. 화요일인 그날 레아마리네 동네에는 함박눈이 내렸다고 했다. 부활절에 독일에서 소식을 전한 가족은 또 있다. 현경네. 별 일 없이 무탈하게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며.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친구도 있다. 뮌헨에 사는 S. 초등 딸 둘을 키우며 홀로 사회복지 관련 3년제 전문과정을 마친 친구. 사십 중반의 나이에 불굴의 의지로 무사히 논문까지 끝낸 친구.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우리 집 쪽으로 와서 한국 식당 유유미에서 테이크 아웃으로 오징어 덮밥을 사 주고 갔다.
독일의 날씨가 아무리 그렇다 쳐도 부활절 다음날 눈과 우박과 함박눈은 너무 심했다. 부활절이 어떤 날인가. 봄의 전령사. 검은 나무들조차 연둣빛 새순으로 물들이는 계절. 긴 겨울 지나고 사람들의 옷깃 속까지 봄바람 스며드는 시간. 내가 매일 걷는 언니네 동네 공원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지난 주말 세찬 봄비에 벚꽃들은 장렬하게 졌다. 예상한 일이라 아쉬움은 없었다. 봄비를 맞으며 벚꽃 아래를 걷는 운치 역시 비교할 바 없이 컸으므로. 마치 깜짝 선물처럼. 퇴원이 조금만 늦어졌더라도 어쩔 뻔했나. 사흘 동안 만개한 벚꽃을 원 없이 감상했고, 주말에는 비에 젖는 꽃잎들도 가슴속에 쓸어 담았다. 지금은 바야흐로 철쭉의 시대. 강렬한 색깔부터 존재감이 다르다. 생명력이 느껴진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월 내내 철쭉들과 함께 할 내 산책길.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지금은 철쭉의 시대. 겹철쭉의 화사함과 홑철쭉의 청순함.
매일의 컨디션이 좋지는 않다. 그럴 리가 있나. AI도 아니고. 더군다나 암환자이자 수술 후 회복기 환자인 내가. 하루는 좋았다가 하루는 안 좋았다가 한다. 걸어보면 안다. 좋을 땐 발걸음이 가볍다. 보폭이 넓다. 속도가 난다. 안 좋을 땐 반대다. 몸도 무겁고 발도 아프다. 보폭은 좁아지고 속도는 느려진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날 컨디션이 오르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횟수와 시간이 많든 적든 걸어야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하다. 예전의 나는 삘이 오면 한꺼번에 죽어라 덤비다가 시들해지면 접는 스타일이었다. 성실의 힘과 미덕을 모르고 까불던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소리 소문 없이 묵묵히 하루를 착실함으로 채우는 고수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온전히 그들 덕분이다.
수술 이후 나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복병은 복대였다. 수술 부위인 아랫배에 2개의 복대를 겹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진짜 세게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 복대가 뻣뻣한 것도 문제다. 가장자리의 단단한 이음새가 골반 살을 파고들고 골반뼈를 조일 때도 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아파서 잠을 못 잤다. 그럴 때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두 번째 복대를 느슨하게 풀기도 했다. 지금도 복대의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언니의 도움으로 매일 조율 중이다. 긴 옷 위에 복대를 하거나 끝부분을 접어 올려 직접적인 통증을 줄이기도 한다. 날씨가 덥지 않은 것도 천만다행이다. 병원에서는 들고 간 운동화가 없었다면 많이 걷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에 가기 전에 발과 무릎의 통증을 예방하고 줄여준다는 한국의 기능성 신발도 사서 신어보려고 한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발이 많이 아팠다. 전날 왔던 친구가 저녁에 꼭 족욕을 하고 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언니와 함께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둘이서 발을 담갔다. 뜨거운 물을 보충해가며. 시원하고 개운했다. 마사지 없이도 발의 피로가 풀려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친구가 준 팁은 또 있었다. 따로 시간을 내려하지 말고 밥 먹을 때마다 <싱어게인> 한 회씩을 보라는 것. 일상의 즐거움이 될 거라고. 친구 말대로 했더니 정말로 그랬다. 카페에서 나에게 사 준 오트밀 요거트도 집에서 똑같이 재현해서 아침마다 먹는다고. 레시피를 보낼 테니 우리도 그렇게 하란다. 친구의 말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알뜰살뜰한 친구는 보배와도 같구나. 조용히 피고 향기는 멀리 가는 라일락처럼.
희고 보랏빛의 라일락(위). 세찬 봄비에도 꽃잎을 지켜낸 마지막 벚나무와 뮌헨에 내린 사월의 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