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날에도, 비 내리는 날에도, 늦은 벚꽃을 구경할 수 있어 좋은 한국의 봄날. 이런 봄날과도 머지않아 작별을 고해야겠지. 오면 가고 만나면 헤어지는, 짧은 우리의 봄날.
공원에 뒤늦게 핀 왕겹벚나무 한 그루.
주말에 친구 M과 공원을 걸을 때였다. 꽃이 진 나무들 사이에서 진분홍 화관을 두른 벚꽃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왕겹벚꽃. 색이 짙고 꽃은 탐스러웠다. 왜 이 꽃만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후에 피어난 걸까. 겹겹으로 꽃잎을 피우기 위해 다른 꽃나무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걸까. 그들의 시절은 가고 없는데 뒤늦게 피어난 벚꽃나무 한 그루 앞에서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한때 우리의 시절이었던 시간도 저물었지만 친구도 나도 지금이 아닌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 벚꽃처럼 자신 있고 당당하게 자신이 필 때를 알고 있다면 어느 때 핀들 호시절이 아니겠냐마는.
날씨가 흐린 날은 초록도 꽃 색도 선명해진다. 비가 내린 후는 더더욱 맑아진다. 공원 한가운데 조경과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꽃들 역시 고요히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돌아보면 오래 버텨주었다. 퇴원을 한 지 2주 동안 매일 보던 꽃들이었다. 그들 속에도 몇몇 늦게 피는 꽃들이 있었다.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보였다. 그들의 뒤늦은 분발을 기록하고 기억해두려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까지 꽃잎을 붙잡아 두려 애쓰는 큰 꽃들 역시 조금도 추하지 않았다. 갓 피어난 꽃도 자신의 시절을 다한 꽃도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나처럼. 우리처럼.
늦게 핀 꽃과 한창인 꽃과 지기 직전의 꽃들. 저들이 모여 한 생애를 이룬다.
다시 봄비. 덕분에 걱정했던 황사는 심하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의 즐거움은 따로 있다. 공원을 통째로 접수하는 즐거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오전에는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산책로를 열 바퀴 돌았다. 우산을 쓴 사람도 많았지만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전에 하는 1시간의 산책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한다. 당연히 밥맛도 좋다. 점심을 먹고 <싱어게인>을 보는 사이 빗줄기가 굵어졌다. 세미 파이널까지 멈추지 않고 정주행 하는 바람에 이른 오후의 산책을 접었다. 남은 건 늦은 오후의 산책. 단호하게 일어나 집을 나서니 골목길에는 세찬 바람 불어오고.
강해진 건 빗줄기만이 아니었다. 바람도 공기도 찼다. 하지만 그 정도에 굴해서는 안 된다. 걷다 보면 땀도 나고 몸도 더워지니까.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폰을 쥐고 자주 멈춰서 사진을 찍는다. 공원은 비어 있다. 사람 대신 빗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운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물은 제 멋에 취한 채 밉지 않은 소리를 낸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나 혼자 누리는 봄날의 정취에 흐뭇해진다. 유튜브에서 건진 싱어게인 탑 3 정홍일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걷는다. 이건 반칙이다. 트로트를 누가 이렇게 부른단 말인가. 그의 노래 속에서 봄날은 품위 있고 격조 있게 서두를 것도 없이 돌아서 간다. 저런 만남과 이별이 있다. 예고도 없이 왔다가 마음만 흔들어 놓고 돌아서지만 결코 붙잡을 수는 없는.
다시 공원을 열 바퀴 돌았다.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봄비 내리는 늦은 오후의 공원을. 어둠은 내리고 비도 계속 내리고. 운동화에 빗물이 스며들 때. 집으로 가야 할 시간. 적당히 배는 고프고 공원 옆 카페에도 하나 둘 불이 켜지면. 돌아갈 곳이 있어 좋았다.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복잡한 생각 없이 <싱어게인> 이어 보기를 하며 웃고 즐길 수 있는. 볕 좋은 날에도, 비 내리는 날에도, 늦은 벚꽃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던 한국의 봄날. 이런 봄날과도 머지않아 작별을 고해야겠지. 오면 가고, 만나면 헤어지듯이. 내가 먼저 떠나든 봄이 뒤에 떠나든. 그렇다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독일에는 두 번째 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가족들과 함께 할 나의 따뜻한 봄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