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이 왔다, 뮌헨에!

뮌헨 공연 첫째 날(2023. 11. 15)

by 뮌헨의 마리
임윤찬 뮌헨 첫날 공연.



뮌헨에 임윤찬이 왔다. 뮌헨에도 반드시 올 거라 믿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공연은 이틀. 당연히 이틀 다 표를 구해놨다. 첫날은 우리 딸의 한글학교 친구인 수민이랑 수민이 엄마랑 넷이 갔다. 수민이는 악기를 다섯 개나 다룰 정도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다. 해는 뮌헨시 오페라 단원으로 뽑혀서 연말에 연주회도 한다. 연주할 악기는 비올라. 수민이 가족은 한독 가정으로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 사촌들까지 3대가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 가족이다. 한국 사람인 수민이 엄마와 독일 사람인 수민이 아빠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뮌헨의 음악학교와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수민이네랑 일찍 만나 이른 저녁을 먹고 공연장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저녁은 우리 집 앞 라 소피아에서 먹었다. 원래는 우리 동네 맛집으로 알려진 산타 마리아를 갈까 하다가 그곳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금 피곤해서 바꾸었다. 오후 5시인데도 벌써 날이 어두워서 이태리 식당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수민이는 피자를, 수민이 엄마는 Fettuccine 라고 불리는 면이 굵은 연어 파스타를, 나와 아이는 새우 샐러드를 먹었다. 나도 수민이 엄마가 주문한 파스타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건만 마음뿐이지 먹었다. 샐러드가 건강식이어서가 아니라 배가 안 고파서. 아이가 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새로 개설된 라틴어 보충 수업을 듣고 오후 2시 반에 집에 와서 점심을 너무 늦게 먹었기 때문이다. 먹었길래? 무생채와 된장에 밥을 비벼먹었다. 이태리 파스타를 포기하고도 남을 맛이었다.



우리 집 앞 이태리 식당 라 소피아. 안 쪽 벽에 소피아 로렌을 그려놓았다. 그래서 이름이 라 소피아!



우리 집에서 뮌헨 필하모니는 멀지 않다. 이자르 강을 따라 걸어가면 30-40분. 바로 가는 교통편은 없지만 지하철 U반과 버스로 갈아타거나 혹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20분. 원래는 시내와 가까운 로젠하이머 플라츠의 가슈타이크 Gasteig에 있었는데 건물을 리노베이션을 한다고 코로나 때 이곳 이자르 강 근처로 이전했다. 뮌헨에 온 지 5년이나 됐는데 음악회에 가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끝난 올해부터다. 코로나 때 취소되었던 클래식 공연과 연주가 마구 쏟아져서 클알못인 나마저 이런 기회를 놓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클래식 음악에 입문한 건 윤찬 덕분이었다. 작년 2022년도 반 클라이븐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은 게 계기였다. 클래식 음악이 이런 거였어? 그런 기분.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지?으로도 모르고 살면 인생의 마지막에 억울할 것 같았다. 그것도 클래식 음악의 원산지이자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 살면서 말이다. 음악을 듣는데도 로드맵이 필요하다. 윤찬의 공연을 유튜브로 들어가며 작곡가와 연주곡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명하다는 피아니스트의 공연이 뮌헨에 오면 챙겨보려고 노력하고 . 언젠가 올 윤찬의 뮌헨 공연을 기대하며. 그런데 진짜로 왔다! 그것도 정명훈 지휘자와 세트로.



눈 앞에 윤찬이 있다니! 보고도 실감이 안 났다..



그날 윤찬의 연주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베토벤은 생전에 피아노 협주곡 5개를 남겼다고 한다. 그중 1번과 2번은 선배 격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느낌이 남아 있는데 비해 3번부터 5번까지는 베토벤만의 색채가 강했다고. 특히 4번은 청각을 잃어갈 무렵인 베토벤이 직접 초연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베토벤의 생전에 이 곡은 큰 호응을 못 얻었다고 한다. 4번의 특징은 피아노 솔로로 시작한다는 것. 사실 나는 그날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너무 흥분해서. 내 눈 앞에서 윤찬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윤찬의 얼굴만 보이고 윤찬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것. 내 참! 얼마나 기다린 공연인데 이런 기회를 흥분의 도가니로 놓치나. 그래도 내게는 다음날 공연 티켓을 구해 놓았다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마음껏 윤찬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역시 외모부터 내공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다이아몬드 같다고 할까. 한 군데도 허술함이 없었다. 허술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좋다 나쁘다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저 정도면 믿고 들을 수 있겠다 그런 인상이었다. 좋아하면 뭐든 좋아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윤찬의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이 좀 먼가. 아무리 열아홉 청춘이라 해도.


눈 깜짝할 사이 연주가 끝났다. 앙코르 연주도 딱 한 곡. 너무 아쉬웠다. 두세 곡은 해 주고 가지 그랬어, 윤찬아! 앙코르 곡은 유튜브에서 자주 듣던 곡 같았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 Liebestraume No. 3 이 아까 했는데 수민이 엄마에게 물으니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하나 같다고 했다. (다음날 다시 들어보니 완전히 달랐음!) 아, 그럼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 후 앙코르로 쳤다는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 일 가능성이 크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앙코르 연주로 저 두 곡을 쳤다고 하니 뮌헨의 공연 둘째 날에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칠 가능성도 있겠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비발디의 사계와 달리 1년 열두 달을 모두 곡으로 지었다. 각 달마다 러시아 시인들의 시와 제목에 맞도록. 놀랍지 않은가! 10월은 톨스토이의 시에 맞춰 작곡했다고 한다.*


"가을, 우리의 아련한 뜰은 초라해져 가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은 바람에 날려가네." (톨스토이)


"매일 나는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어딘가에 있을 포근한 보금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가을의 향기를 만끽한다.

떨어진 낙엽의 향, 고요함 그리고 가을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색채의 경치를 만끽한다." (차이코프스키)



비록 뮌헨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반 이상 떨어진 겨울의 입구에 서 있지만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정명훈 지휘자의 지휘는 말해 무엇하랴. 인터미션이 지나고 2부에서는 지휘자와 뮌헨 필하모니가 베토벤의 협주곡 5번 트로이카를 선보였다. 과 귀를 뗄 수 없을 정도로 압권이었다. 청중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런데 옥에 티 하나를 말하자면 지휘자의 복장이었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검은 코르덴 바지에 잠옷 같은 편안한 뒤태 라인을 보여준 상의는 카디건이었다. 베토벤의 곡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첫날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이다. 피아니스트인 수민 엄마도 공감한 부분이니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듯.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프로답지 않았다. 둘째 날 공연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복을 입고 등장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에스트로 정명훈 지휘자님.



*클래식 유튜브 채널 <배쌤에 미쳐>에서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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