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을 보았다 윤찬을 들었다

뮌헨 공연 둘째 날(2023.11.16)

by 뮌헨의 마리
임윤찬의 뮌헨 공연 둘째날.



윤찬의 뮌헨 공연 둘째 날은 레아마리 엄마 아빠와 같이 갔다. 원래는 우리 남편과 넷이 가기 위해 일찌감치 표를 예매했는데 우리 남편이 갑자기 출장을 가는 바람에 한국슈퍼에서 함께 일하던 J언니께 여쭤보았다. 평일 늦은 시간인 데다 뮌헨 외곽에 사셔서 S반으로 움직여야 하고 공연날 귀가가 엄청 늦어질 것과 다음날 출근 등 여러 가지를 려해서 가시기 어려우실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단번에 오케이를 하셨다. 그날 밤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는데도 기온은 크게 낮지 않았다. 푸근한 봄날밤 같았다고 할까. 님 우리가 추위조차 못 느꼈던 걸까.


잘츠부르크와 가까운 곳에 사는 레아마리네는 차로 왔다. 뮌헨은 윤찬의 공연이 있던 이틀간 장거리 지상철인 S반이 파업을 했다. 뮌헨에서 떨어진 시외에서 오시는 한국 분들 중에서 이 파업 때문에 공연에 못 오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레아마리네는 우리 동네에 주차를 하고 우리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 라 소피아에서 나와 저녁을 먹었다. 아이는 배가 안 고프다며 안 따라왔다. 그날도 공연 첫날처럼 파스타를 먹지는 못했다. 레아마리 맘이 먹는 양이 적어서 샐러드와 브루스케타를 시켜 반반 나눠먹었다. 레아마리 아빠는 피자를 먹었다. 그 와중에 레아마리 맘이 소고기 장조림과 직접 만든 누룽지를 선물로 들고 와서 항암 때 힘내라고 저녁까지 사주었다. 그날은 꼭 내가 사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누룽지는 비주얼부터 얼마나 담백하고 고소해 보이는지 다음날터 죽로 먹 있다. J언니도 미리 부탁드렸던 현미 누룽지를 가게에서 사들고 오셨다. (이번 항암은 누룽지와 함께다!!!!)



(사진 3장 출처:2023.11.17일자 연합뉴스)



첫날 공연처럼 이튿날도 좌석은 만석이었다. 아닌 게 이상하지. 윤찬을 기다린 사람이 나와 레아마리 맘뿐이겠는가. 그날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윤찬의 음악에 집중하기로 했다. 좌석은 앞에서 두 번째 줄이었는데 피아노 뚜껑을 올린 삼각형의 공간 사이로 공연 내내 윤찬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흥분하지 말자고 계속 다짐도 해야 했다. 윤찬의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그날에야 로소 음악이 귀 들어왔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른 협주곡처럼 오케스트라가 먼저 포문을 여는 게 아니라 피아노 독주터 시작하는 협주곡. 이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의 파격이라고 한다. 피아노의 명징한 음이 귀를 쫑긋하게 만들고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 가슴을 울리고 다시 연주장을 울리던 고 또렷한 피아노 소리.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테크닉이 워낙 어려워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 자신이 이 협주곡 초연을 했을 때조차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 멘델스존이 이 협주곡 4번을 재발견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의 새 장을 여는 베토벤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1악장은 여리고 로맨틱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 대비를 이루는 여림이었다. 그러다 2악장부터 점점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다가 3악장에서 제대로 맞짱을 뜨는 느낌이랄까. 유튜브*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 협주곡의 가장 특별한 곳은 2악장. 오케스트라는 시작부터 포르테로 포효하는데 나 홀로 피아노는 피아니시모로 아주 여리고 작게 비를 이룬다. 19세기 비평가이자 음악 학자에 의하면 이 악장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오르페우스가 사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저승에 가서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간절히 부탁한 후 자신의 아내를 구해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그렇게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도 이 곡은 고대 비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고. 렇게 시작한 2악장은 간이 갈수록 케스트라는 조금씩 힘을 빼고 피아노는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곡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2악장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밀당하는 듯한 뚜렷한 악상 대비가 매력이자 관람 포인트.



임윤찬 뮌헨 공연 이틀째. 정명훈 지휘자의 캐주얼한 의상은 첫날과 똑같았으나 첫날만큼 눈에 거슬리진 않았다. 피아노 없이 진행된 2부에서 70세 노장의 카리스마가 압권이었다.



윤찬의 앙코르 곡은 첫날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에 이어 <11월 에로이카>를 연주했다. 11월이라고 11월을 선물하고 가네. 이런 센스쟁이. 에로이카는 세 필의 말 끄는 마차 겸 썰매를 가리킨다. 차이코프스키는 19세기 러시아의 11월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눈 덮인 거리와 들판을 오가던 트로이카를 지목했다. 11월 트로이카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의 앙코르 곡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12곡의 피아노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월부터 12월까지 각 계절의 특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참고로 12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 1월 화롯가에서

2. 2월 카니발

3. 3월 종달새의 노래

4. 4월 눈송이

5. 5월 백야

6. 6월 뱃노래

7. 7월 추수하는 사람의 노래

8. 8월 수확

9. 9월 사냥

10. 10월 가을의 노래

11. 11월 트로이카

12. 12월 크리스마스



둘째 날의 앙코르 곡명을 내가 어떻게 무슨 재주로 알아냈겠는가. 인터미션 때 우르르 밖으로 나가는 젊은 한국 여성들을 보고 무작정 질문을 날렸다. 오늘 앙코르 곡 제목이 뭔가요? 어떤 친절한 사람이 답했다. 아마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하나 같은데요, 아마 3월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문은 다음날 풀렸다. 한국 인터넷 기사(연합뉴스)에 뮌헨 둘째 날 공연 기사가 떴다. 앙코르 곡이 사계 중 11월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틀 동안 생각했다. 윤찬이 내 항암을 응원하기 위해 멀리 뮌헨까지 와서 연주를 들려주는구나. 오후 5시가 되기도 전에 캄캄하고 축축하고 바람 부는 뮌헨의 11월에 그가 뮌헨으로 와서 베토벤을 들려주다니. 그날 윤찬도 지휘자님도 얼굴이 전날보다 편안해 보여서 더욱 좋았다. 아무려나 행복한 뮌헨의 11월 밤이었다. 은 이들과 함께 들어서 더욱 좋았. 다음에는 윤찬이 뮌헨에 또 와서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주면 좋겠다.



(사진 출처:위키페디아)



*유튜브 <배쌤에 미쳐> 참조.

**네이버 블로그 <필하모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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