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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9. 2024

언니와 나의 하루

집에서 생일 파티

내가 받은 생일 선물.


(언니의 하루)


매일매일 날짜를 세고 있다. 언니가 온 날을. 언니 남은 날을. 별히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어찌 빨리 지나는지. 우리 언니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은 늦게까지 잔다. 꼭 그래야 한다. 우리 언니는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에 푹 못 자면 하루가 피곤한 사람이다. 아이의 도시락부지런한 우리 남편이 준비한다. 나와 남편과 언아침 뮤슬리와 과일은 언니가 일어나서 준비한다. 아이는 7시 반에 학교로 간다. 언니는 8시쯤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서 9같이 먹는다. 나는 침대에서, 언니는 내 거실방 테이블에서. 나는 절대로 아침에 언니가 일찍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데 요즘 언니의 기상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서 걱정이다. 언니는 희생을 하러 온 게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언니도 나도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언니가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 기분이 좋.


언니는 한국에서 먹고 있는 'PM 주스'라는 것을 가지고 왔다. 나도 미리 사놓았다. 언니와 나를 위해. 원래 독일 주스이기 때문이다. 언니가 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주스라고 해서 사놓고 한 번 먹었다가 그날밤 몸이 가려워서 더 이상 먹지는 않았는데 언니가 와서 아침마다 타 줘서 같이 마시니 괜찮았다. 명현현상이었다고 한다.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다니 기대 크다. 언니는 아침부터 작은 무쇠솥에 현미차를 끓여 에게 한다. 현미차는 처음인데 맛이 구수해서 질리지 않을 것 같. 매일 아이방과 복도와 부엌 바닥을 깨끗하게 닦는 것도 언니가 빼놓지 않는 일이다. 내 방은 그만 닦으라고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 매일 닦지는 않는다. 무릎도 안 아프나. 덕분에 집이 깔끔하고 반들반들하다. 나는 은근히 이런 언니의 부지런함이 좋다. 기분이 좋잖나. 깨끗한 집에서 사는 거. 니가 피곤할까 봐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그리고 점심 준비. 언니가 올 때 뮌헨에 사는 조카 엄마인 육촌 언니가 밑반찬을 많이 해줘서 맛있게 먹고 있다. 언니와 같이 먹으니 더 맛있다. 오후 2시쯤 아이가 집에 오면 언니는 조카의 점심을 차려준 후 부엌을 깔끔하게 정리 정돈하고 나를 위해 아삭한 사과를 깎는다. 얼마 전에 옛 직장동료 J가 먼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서 그곳 한인마트에서 사 온 사과인데 어찌나 맛있는지! 금까지 맛본 어떤 사과보다 맛있다. 오후에는 내가 복도를 걷을 차례. 오며 가며 부엌에 들러 언니와 얘기도 나누고, 언니가 내 방인 거실로 오면 거기서도 얘기를 나눈다. 특별한 주제 없다. 생각나는 대로 뭐든 얘기한다. 때로는 친구들 얘기도 한다. 친구인데 친구 같지  배울 게 너무 많은 친구. 이런 친구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되는 친구들 말이다. 그런 친구가 한둘이 아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정말로 좋아하나 보다. 우린 쌍둥이라 친구들도 같아서 편하다.


저녁은 일찍 먹는다. 주로 샐러드를 먹는다. 언니가 커다란 볼에 상추,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 등을 썰어놓으면 각자 원하는 만큼 덜어서 먹는다. 편하기도 하고 맛있고 소화도 잘 되어서 좋다. 거지를 마치고 집 어딘가를 또 쓸고 닦은 언니가 아이방에 자신의 이부자리를 펴고 세수를 하고 잠옷까지 갈아입고 내 방에 등장하는 시간은 저녁 8시쯤. 그때부터 또 도란도란 수다가 이어진다. 언니는 자정까지 내 발과 다리를 마사지한다. 내가 잠들 때까지 언니는 절대로 자러 가지 않다. 어떨 때 보면 언니가 내 발을 마사지하며 눈을 감고 졸고 있을 때여러 번이다. 럴 땐 생각하게 된다. 언니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를.




(나의 하루)


나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하다. 오전 8시에 진통제를 먹는다. 침대에서 책을 읽는다. 정오 12시에 다시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통증이 없기를 바라며. 통증이 없으면 그대로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통증이 있는 날은 화장실만 갔다가 다시 누워야 한다. 그대로 일어난 날은 살살 걷기를 시작한다. 실버용 스쿼트를 한 이후 근육통은 많이 사라졌다. 오후 5-6시까지 일어나 걷고 쉬고 한다.


오후 5시쯤 진통제를 먹는다. 6시쯤 침대로 돌아온다. 저녁 8시에 다시 진통제. 언니가 발과 다리 마사지를 시작하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밤 12시에 진통제. 새벽 4시에도 다시 진통제. 언니는 밤 12시에 내가 진통제를 먹는 걸 보고 자러 간다. 때부터 나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소변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밤 12시에 진통제를 먹고 나서 두 시간 후에 화장실. 새벽 4시 진통제를 먹고 난 후 두 시간 후에 또 화장실. 이러다 보면 거의 잠을 설친다


지난주에는 언니와 나의 생일 파티 있었다. 태어나서 같이 생일파티를 한 게 언제인가 싶을 만큼 오랜만이었다. 리는 둥이라서 생일이 같은데 가끔씩 그걸 잊어버린다. 남편과 아이가 경 써서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언니가 감동한 것 같았다. 나도 기뻤다. 편이 감동적인 카드를 써주었다. 아이는 자기처럼 생긴 토끼 인형을 선물했다. 생일에 대해선 무덤덤한 편인데 최근 들어 가장 감동적인 생일 파티였다. 언니와 같이여서 더 좋았다.


언니가 받은 선물(언니는 현금이 든 봉투를 같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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