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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6. 2024

퇴원 후 첫 산책을 나갔다

 집에서는 쉬운 노약자 스쿼트

자세히 보면 잔디 위로 보랏빛 봄꽃들이 올라와 있다.


퇴원 후 6일 만에 첫 산책을 나갔다. 언니가 오고 다음날이었다. 해도 나왔다. 언니가 오기 전까지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매일 복도를 걷다가 용기를 내어 뒤뜰을 다녀온 적 있지만 거긴 병원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하는 산책이라 나 혼자서도 해 볼 만했다. 집에 돌아오니 다 좋은데 산책만은 가기가 겁이 났다. 만일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예를 들 갑작스러운 통증이 생긴다든지 그런 . 진통제와 물은 챙겨 가겠지만 통증을 어디서 어떻게 견딜 있을지는 상상이 되 않았다. 


언니가 온 다음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독일의 2월 일기예보엔 매일 흐리고 비가 오거나 그 사이사이 며칠만 잠깐 해가 고개를 삐죽 내밀 가능성이 다고 했는데 그게 언니가 온 다음날이었다. 해는 나온 김에 오후 내내 머물러 주었고 햇살은 온화하고 기온은 따스했다. 이런 2월 날씨를 봤나! 기특하고 고마웠다. 점심을 먹고 언니와 집을 나다. 보조기나 보행기 혹은 스틱도 없이 언니와 나란히 걸었다. 언니와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지도 않고 오롯이 혼자 걸다. 곁에 언니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첫 산책을 반겨준 건 햇살이 아니었다. 무리 지어 핀 봄꽃들도 있었다. 잔디를 뚫고 올라온 구근 뿌리꽃들. 대표적인 건 흰색의 '눈꽃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인데, 그 외에도 보랏빛 꽃들 대표 주자에 포함된다. 멀리서 보면 은은한 보랏빛 잔물결이 그리 예쁠 수가 없다. 당연히 가까이서 봐도 예쁘. 봄꽃이 없다면 봄은 봄이 아닐 것이다. 3월이면 개나리도 피고, 4월이면 벚꽃도 피겠지. 그때쯤이면 나도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날 우리는 이자르 강변 공원을 두 바퀴를 돌고 돌아왔다.


보랏빛 봄꽃!


그날 집에서는 언니가 가르쳐 주는 아주 쉬운 노약자 스쿼트를 했다. 언니가 실버들을 위한 힐링센터에서 수년간 연세 드신 분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면서 맨 마지막에 그분들의 근력 강화를 위해 훈련시키고 있는 노년을 위한 스쿼트다. 일단 쉬워야 하고 매일 할 수 있는 동작이라야 한다는 고심 끝에 만들어진 거라 나 같은 환자도 따라 할 수 있었다(나안전하게 의자를 잡고 하고, 언니 요가 수업 나이 드신 분들은 벽을 잡고 하신다고). 그때 언니가 참고한 책은 일의 의사 바야시 히로유키가 쓴 <죽기 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였다. 생 건강하게 걷기 위한 하루 5분 실천 프로그으로, '허벅지가 가늘수록 누워사는 노년도 길어진다'라고 책의 표지에도 써져 있을 만큼 노년에 포커스를 맞춘 책이었다. 스쿼트가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니 내겐 신세계였다


우리 집은 복도가 길다. 독일에서 100년이 넘은 오래된 집이라서 그렇다. 독일인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한 눈에도 옛날 스타일이다. 그게 내겐 도움이 되었다. 병원 복도를 걷듯 매일 집에서도 복도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복도를  번 걷고 와서 의자를 잡고 스쿼트를 몇 번 하는 식으로 동작을 반복했다. 두 다리를 벌리고 양발은 11자가 아니라 발끝을 살짝 바깥으로 돌리고 척추를 포함 상체는 힘을 빼고 편안하게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무릎이 발끝 바깥으로 나오는가 여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내려갔다 올라올 때 허벅지 안쪽에 자극을 느끼도록 경을 썼고, 의자를 잡고 호흡과 함께 천천히 하니 힘들지 않았다.


그날 저녁 꿀잠을 잤다. 언니의 예상 대로 근육이 피로하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간과 퇴원 이후까지 잠을  잔 기억이 지 않기에 더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무리 쉬운 스쿼트라 해도 운동이라 려움은 있었다. 그날 이후 틀 동안 통증과는 별개로 양쪽 허벅지와 엉덩이에 근육통이 와서 끙끙 않았다고 할까. 당연히 스쿼트고 뭐고 면서 살살 걷기만 하 근육을 풀었다. 원 직후와 달리 즘은 증과도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퇴원 후 진통제를 먹을 때 통증 주기를 몰라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밤중에 혹은 아침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 침대에 앉았는데 그 상태로 통증이 와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얼음이 되어 한두 시간을 꼼짝없이 견뎌야 했던 시간들 있었다.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언니가 오고 나서까지 그랬다.


요즘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진통제 약을 먹고 언제가 가장 움직이기 좋은지 계산해 보 일어나는 시간을 정하니 대체로 맞았다. 약한 모르핀 약은 먹고 난 후 두 시간이 지났을 때가 가장 통증이 덜했다. 아침에는 강한 모르핀 약을 먹는데 아침 8시에 먹고 4시간 후인 12시쯤 일어나는 루틴을 반복하고 있다. 아침은 침대에서 먹고, 오전도 침대에 며 책을 읽는다. 12시쯤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점심을 먹고, 복도를 걷는다. 그 사이에도 진통제를 규칙적으로 먹으며 침대로 돌아가는 오후 6시나 7시까지 몸을 움직인다. 낮에는 통증이 덜해서 괜찮다. 능한  외출은 하지 않조심하며 집에서만 지다. 근육통이 사라지면 언니의 지도 아래 다시 스쿼트도 계속해보려 한다. 내 경우 하체 힘을 기르는 건 아주 중요한 이라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생각이다. 이번주는 다시 항암도 한다. 항암은 2주에 한 번이고, 이번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출국 전 언니가 보낸 2차분 책들도 도착한 날이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스쿼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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