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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2. 2024

지옥과 연옥에서의 사흘 그리고 천국에서의 하루

단테의 <신곡>

단테의 <신곡>(총 3권), 민음사


단테의 <신곡>을 읽는다. 어쩌다 보니 다리가 마비된 이제대로 된 첫 독서가 <신곡>이 되어버렸다. 이런 생각을 해 본 거지. 내가 이대로 죽으면 못 읽고 죽어서 아쉬울 책이 뭘까. 그랬더니 <신곡>이라는 답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나로서도 의외였다. 내용에서는 큰 재미를 못 느꼈지만 운문이라 읽어나가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실감 나게 와닿지 않았다. 내 상황이 상황크게 천둥처럼 와닿을 줄 알았 보다. <신곡>은 총 3권으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나뉜다.


1302년 쟁에 휘말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었 마지막 순간까지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한다. 1304년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 시작 1320년에 마무리한다. 첫 권 <지옥>편의 1곡 시작 부분은 반드시 한 번쯤 읽고 외워두어도 좋겠다. 단테가 이 글을 쓴 지 700년이 지났어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불멸의 구절이라서 그러하다. 주인공 단테는 지옥편에서 버지처럼 숭상했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호위 속에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다. 그런데 베르길리우스를 보낸 이가 바로 베아트리체였으니!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천국편에서 재회한다. 


단테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반평생을 보냈고, 그 후 평생의 반을 유랑으로 보냈다. 피렌체는 단테의 삶의 터전이자 단테가 고전과 인문주의 학문을 익히고 새로운 문학을 세워나가던 곳이었다. 또한 베아트리체라는 영원한 사랑을 만나고, 냉혹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이상을 실천하던 곳이었다. 비록 피렌체의 정의와 번영을 위해 목소리를 내다가 추방당한 후 일생 동안 명예로운 귀환을 요청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신곡>은 피렌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과 분노, 그리고 거기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지옥편(1곡)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고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다.




<신곡>의 원래 제목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La comedía di Dante Alighieri-Inferno/Purgatorio/Paradiso이다. '코메디아'는 '희극'을 의미하는데 이 '희극'이라는 단어가 단테 시절는 조금 다른 뜻을 지녔던 것 . 단테 '코메디아' 슬픈 시작에서 출발하여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단테의 <신곡>은 대중의 언어로 쓰였기에 그 효과가 더욱 컸데, 단테는 당시 라틴어에 비해 속어에 불과했던 피렌체어를 자신의 <신곡>에 사용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생생하게 한 판 잔치를 벌이는 기분을 맛보게 된다. 지옥에서는 그 끔찍한 형벌의 현장을 둘러보며 도덕적 긴장을 맛보고, 연옥이라는 기회의 땅에서는 도전 의식을 키우며, 천국을 둘러보며 희망을 갖는 동안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 세계들이 더 이상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니며, 이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단테는 1300년 부활절 주간에 죽음 이후의 세계로 순례를 떠난다. 의 순례는 금요일에 시작하여 지옥서 사흘, 연옥에서 사흘, 천국에서 하루를 머문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맞춰 단테 자신이 구원의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정확히 1300년 3월 25일 부활절 목요일 밤에 여행을 시작하여 4월 1일 목요일 아침에 마친다. (참고로 연옥은 지옥에 갈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으나 그리스도에게 귀의하지 못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연옥에 배치된 망령들은 마지막에 올 달콤한 구원의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연옥편(7곡)


"내 뼈는 옥타비아누스 황제에 의해 묻혔소.

그것은 하느님께 올라갈 자격을 지닌 영혼들이 산으로 인도되기 전의 일이었지요.


나는 베르길리우스요. 내가 천국에 가지 못한 이유는,

죄는 짓지 않았으나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오."

이것이 길잡이가 그 영혼에게 한 대답이었다.




유년시절에 어머니가 사망 단테는 자신의 인생에서 딱 두 번 베아트리체를 만는데, 만 9세 때 베아트리체 처음 만난 평생 그녀는 단테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한다. 단테그녀를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 해인 만 18세 때다. 단테의 문학은 베아트리체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의 주제는 단테 문학의 전부가 되고 베아트리체는 사랑의 화신으로 단테의 삶과 문학을 이끈다. 후 단테는 약혼녀 젬마 도나티와 결혼하여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둔다. 1290년 그의 나이 25세 때 베아트리체가 죽, 1321년 단테 눈을 감 후 라벤나에 묻혔다.


단테는 연옥의 정상에서 베아트리체를 새로운 길잡이로 삼고 베르길리우스를 떠나보낸다. 베아트리체는 레테 강과 에우노에 강에서 몸을 씻은 단테를 데리고 천국으로 날아오른다. 천국의 순수한 기쁨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단테는 오직 은총과 의지를 통해 천국의 여러 하늘들을 거쳐 최고의 하늘에 이른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구원받은 영혼들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완벽한 시민들이며 그들이 이룬 공동체 곧 천국이라 불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렇다면 천국행 티켓은 시나 압도적인 경쟁율을 자랑하겠다고 보이는데 <신곡>은 이러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작가 단테가 기억을 되살려 기록한 글이다.* (그러니 <신곡>은 단테의 사후 세계 즉 임사 체험기쯤 되겠다. 걸 맨정신으로 썼다는 게 대단하다. 보통은 뇌사 판정 정도는 받고 경험하는 거 아닌가.)


어떤가. 지옥에서의 사흘, 연옥에서의 사흘과 천국에서의 하루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 천국에서의 하루를 택하겠지. 나는? 모르겠다. 아마도 천국. '천국'이기도 해서고 '하루'이기도 해서. 지옥에서의 고통과 연옥에서의 한숨을 듣고 견디기 쉽지 않을 듯. 요즈음 나는 꽤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 친구 M이 5월에 일이  3주간 휴가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친구 Y가 월/수/금 와주고 있다. 그런 틈을 타서 나 역시 이번 기회에 다시 독서를 시작하로 했다. 능하면 세계문학을 읽으려고 한다. 지나고 보니 세계문학을 읽던 그 시간들이 내게는 천국에서의 하루나 마찬가지였는데.  독서가  돌아올 M에게 깜짝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각 잡고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친구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M의 도움이 컸기도 해서.


천국편(33곡)


내 날개는 거기에 오르기에는 너무 약했지만,

내 정신은 그 광휘로 깨어나

원했던 것을 마침내 이루었다.


여기서 나의 환상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내 소망과 의지는 이미, 일정하게

돌아가는 바퀴처럼,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이끌고 있었다.



*단테의 <신곡>, 민음사 작품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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