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좋지 않냐고 아이가 물었다

토요일에 한글학교를 가다가

by 뮌헨의 마리


아이와 한글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토요일은 날씨가 맑고 화창했다. 뜬금없이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엄마, 독일 좀 좋지 않아?"



토요일 아침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뮌헨인가, 여기가 진정 독일인가, 궁금할 만큼 몇 날 며칠 날씨가 좋았다. 이러면 곤란하다. 동영상 통화가 가능해지면서 명절이 아니라도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내가 독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날씨마저 이러면 좀 그렇지 않은가.


한국으로 출장을 간 남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이른 아침에 보낸 톡을 보고 잠이 깼다. 밀린 브런치 글도 읽으며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려던 참이었다. 주말 아침을 같이 먹을까 생각했던 조카는 예전에 같이 살던 친구가 집을 비우며 덩치 큰 강아지 밥 좀 챙겨달란다며 나가고, 아이의 주말 한글학교 등교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아이가 멀쩡한 목소리로 '책!'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작은 등 하나를 켜 두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깼나? '책은 왜',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더니 책 모서리에 부딪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이 머리맡 위쪽에 어젯밤 내가 놓아둔 집채 만한 <별자리> 책이 보였다. '난 또 책 읽어달라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다시 한번 '책!'을 외쳤다. 잠은 저만치 달아난 목소리였다. 내 말에 깼구나. 이런!


아이의 책장에서 내가 골라온 책은 까뮈의 어린이용 발췌본 <페스트>. 너, 페스트가 뭔지 모르지? 엄마가 설명을 좀 해주랴? 아이가 말했다. 나, 알아. 그거 병이지? 초등 3학년은 왜 모르는 게 없나. 바로 전날 사회 시간에 배웠단다. 뮌헨 시청사 앞에까지 나가서. 왜 시청사일까. 뮌헨 시청 건물 시계는 매일 정오 무렵에 시청의 종(Glockenspiel)을 울리며 이벤트를 보여주는데 그 장식 중 하나가 흑사병이라 불린 페스트와 관련이 있어서란다.



시청사 시계 아래 2단으로 구성된 인형들이 쉐플러 탄츠 Schäfflertanz라는 춤을 추는데 그중 아랫단인 파란 옷을 입은 인형들이 그들이다. 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예전에 페스트가 창궐할 때 언제 전염병이 물러갈지 몰라 사람들이 감히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때 그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를 듣고서야 안심하고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여름에는 오후에도 이벤트를 볼 수 있다. 이번 주에 학부모 단톡 방에 올라온 게 바로 그 사진이었구나! 그 댄스 단체가 아이 학교 운동장에 들러 깜짝 이벤트를 한 모양이다.


아이와 한글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토요일은 날씨가 화창했다. 나와 손을 맞잡고 걷던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엄마, 독일 좀 좋지 않아?"

"응? 독일이 왜 좋아? 어떤 게 좋은데?"

"그냥.. "


몇 번을 물어도 아이는 말해 주지 않았다. 독일이 뭐가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번개처럼 사라진 건지 내가 알 도리가 있나. 하지만 지금 살고 있고 아빠 나라이기도 한 독일이 아이 맘에도 든다니 엄마로서 안심이었다. 그날 아침 나도 아이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나 역시 그 답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고,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같으면 나도 좋다고 흔쾌히 대답하고 싶었다. 우람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가지를 힘껏 서 있는 모습. 간혹 그 검은 가지들 위로 녹지 않거나 혹은 얼음으로 남아 있는 순백의 눈을 바라볼 때라든가.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들이 점점이 뿌려져 있는 것을 볼 때. 오랜만에 들른 카페 디바에서 창 밖을 내다보니 햇살이 환해서 좋더라는 것. 차와 함께 나온 수수한 갈색의 설탕 조각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아름다움을 속으로 감춘 매력적인 보석조각을 입 속에 넣던 그 순간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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