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은 글쓰기 폐인으로 산 것 같아요. 패턴이고 루틴이고 다 무시하고 오늘의 글과 내일의 글만 생각하면서요. 제게는 글쓰기가 오십 인생을 통째로 리셋하는 과정이었나 봐요.
그리운 샘!
칠월의 마지막 금요일인 어제 아침엔 카페로 출근해서 샘께 편지를 쓸 생각이었답니다. 지난 1년은 글쓰기 폐인으로 산 것 같아요. 패턴이고 루틴이고 다 무시하고 오늘의 글과 내일의 글만 생각하면서요. 어떤 날엔 아침에, 어떤 땐 오후에, 때로는 한밤에 자다 쓰다를 반복할 때도 있었답니다. 글 쓰는 게 뭐라고 설거지가 산처럼 쌓인 적도 많았고요. 제게는 글쓰기가 오십 인생을 통째로 리셋하는 과정이었나 봐요.
어제는 카페로 출근하지 못했답니다. 무지 바빴거든요. 그날은 알리시아가 방학하는 날이었어요. 3학년 최종 성적표도 받구요. 부모들에겐 조금 긴장되는 날이지요. 4학년이 코 앞이니까요. 독일의 초등 담임은 2년제랍니다. 3학년 담임이 4학년도 맡지요. 담임샘과 케미가 맞지 않으면 좀 괴롭긴 할 거고요. 4학년이 되면 22주 동안 매주 시험을 친답니다. 제가 사는 바이에른은 한국의 국, 영, 수에 해당하는 독일어, 수학, 사회과학 세 과목이 인문계인 김나지움과 직업학교인 레알슐레를 판가름하거든요.
샘, 알리시아 성적표도 궁금하시죠? 알리시아는 그날 파파와 약속했던 5점대를 무사히 통과했답니다. 뮌헨의 김나지움 커트라인은 전국보다 총점이 조금 높은 7점인데, 알리시아는 수학 1+독일어 2+사회과학 2=5점을 받았어요. 안정적인 5점을 받기로 한 파파와의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파파 차례겠죠? 상은 무려 새 아이패드. 가격이 620 유로인데 통 크게 현금으로 찾아왔네요. 엄마는 어떻게 하면 액정 한쪽에 기스가 난 구 아이패드를 계속 쓰게 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답니다. 파파는 그 돈으로 아마존 주식을 사주고 싶어하네요.
샘!
방학 날 바빴던 이유 중 하나는 알리시아가 미션을 던져주고 갔기 때문이에요. 담임샘을 위해 꽃다발을 사 오래요. 그게 예의라나요. 그래서 아침부터 꽃을 사려고 꽃집 순례를 했답니다. 학교 근처 프라운 호퍼 슈트라세 Fraunhoferstraße 에는 꽃집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곳은 더위 때문인지 꽃이 많이 시들었더라고요. 어쩌나, 저 많은 꽃들을! 안타까웠지만 결국 못 샀어요. 다른 곳은 규모는 작은데 꽃들이 잘 관리되어 있더군요. 탐스런 장미가 한 송이에 3유로. 장미 다섯 송이와 분홍 잔꽃 몇 줄기, 초록 잎들을 추가하니 20유로. 꽃다발 임무는 훌륭하게 완수했답니다.
3학년 담임샘께 알리시아는 꽃다발을, 엄마는 감사의 말은 전했어요. 작년 여름방학 직전에 사이가 불편해진 우리 반 알바 엄마 이네스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다정하게 볼 키스까지 주고 받고요. 아이들도 기뻤을 거예요. 엄마들이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야 아이들도 안심하고 어울려 놀지요.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자존심 때문에 1년을 불편하게 지냈네요. 새 학기 전에 묵은 감정도 완전히 씻어냈으니 한국의 폭염 속으로 뛰어들 준비는 마친 거나 다름없겠죠?
샘.
한국의 폭염은 늦장마로 조금 주춤한가요? 샘은 어떠세요?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약해서 정남향인 샘 오피스텔이 무지 덥다는 소문이 있던데 저 더위에 약한 거 아시죠? 제가 가면 팍팍 틀어주셔야 해요! 독일은 자기 소유의 집이나 가게가 아닌 한 세입자나 자영업자들이 함부로 에어컨을 달기도 어렵다고 하네요. 유럽의 여름도 갈수록 무더워지니 걱정이에요. 어제 시어머니 댁 실내 온도는 27도. 차양막을 친 상태로요. 바깥보다는 5~10도 시원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무더웠던 적이 없었대요. 돈 벌어서 한국산 에어컨 하나 멋지게 달아드릴까 봐요! 샘, 한국에서 뵐게요..
아이와의 약속은 지킨다! A형 엔지니어 파파의 현금 봉투(위). 200유로짜리 지폐는 처음 구경함! 서랍 속 아이의 금고와 독일의 여름나기 소품들(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