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이 더 중요하다

편지 35

by 뮌헨의 마리


비록 넘어지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 좋다고, 사랑이 없는 삶은 생각도 못하겠다고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는 또 한 수 배웁니다.



그리운 샘!

얼마 만에 전하는 안부인가요. 뮌헨에 와서 이토록 바쁜 나날의 연속이라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실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지요. 작년 1년이 호수처럼 잔잔한 일상이었다면 2년 차인 올해는 폭풍 속을 걸어가는 날들 같아요. 몸과 마음은 정신없이 분주하지만 그 속에서 캐내는 기쁨이 있어 또한 괜찮습니다. 저는 바빠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인가 봐요. 샘처럼요. 고인 물은 썩잖아요. 그래서 저는 영원한 물병자리.


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독일은 유월의 이상 폭염을 훌쩍 벗어나 칠월을 선선한 날들로 채우고 있답니다. 한국은 마른장마라 폭염이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맛비가 그립네요. 올해도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샘, 오늘은 제가 브런치에 첫 글을 쓴 지 1주년이랍니다. 돌아보면 길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온 것 같기도 해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상상이 안 되네요.


지난 1년간 글을 쓰며 제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답니다. 제 자신과 더 자주 민낯으로 만났고요. 제가 무엇을 잘 견디고 무엇을 못 견디는지, 제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때로는 괜찮은 사람인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어지럽게 오르내리기도 여러 번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인연들의 고마움, 제게 주어진 이 순간의 소중함을 가감 없이 느낀 시간이었어요. 시간이야말로 오십에 받은 선물이라 생각해요. 갱년기라는 현란한 포장지와 함께요.


이태리에서 바바라가 사 온 선물(위) 그녀가 방문한 도시 놀리 Noli


사람은 변합니다. 긍정적인 의미로요. 독일에 와서 저의 사랑하는 시누이 바바라를 보며 느낀 거랍니다. 바바라는 지난 6월 이태리 휴가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왓쯔앱을 보냈어요. '무슨 선물을 사 갈까?' 이렇게 듣기 좋은 질문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보내주었어요. 요즘 알리시아는 주말이면 고모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한답니다. 둘이 얼마나 잘 노는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할 지경이에요. 아이들에겐 이모와 고모 중 하나만 있어도 행운인데 한국의 이모와 독일의 고모까지 다 가진 알리시아는 정말 복이 많은 아이예요.


더 놀라운 소식도 있답니다. 레겐스부르크의 새어머니께서 이번 저희 한국행 티켓값을 주셨다는 얘기를 클레멘스에게 나중에 전해들었어요. 요즘 독일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이 훈풍은 대체 뭐지요. 나이 오십에 넘치는 시부모님들의 사랑을 받다니요. 쑥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뒤늦게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니 아니다, 그런 인사는 안 해도 괜찮다, 잘 다녀오너라, 하시더군요. 올여름 한국에서 지낼 한 달이 독일의 세 부모님들께 너무 긴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길 바라요.


샘! 어젯밤 알리시아가 무슨 말을 한 줄 아세요? 욕실에서 갑자기 엄마를 꽉 껴안길래 무심결에 제가 이렇게 말했거든요. '안지 마! 넘어지겠어! 이런 데서 넘어지면 큰일 나!' 엄마라는 사람이 참. 그랬더니 안은 팔을 풀지도 않고 알리시아가 말하더군요. '그래도 사랑이 더 중요해!' 비록 넘어지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 좋다고, 사랑이 없는 삶은 생각도 못하겠다고 아이는 말하는 듯합니다. 엄마는 또 한 수 배웁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새로운 브런치 1년의 첫발을 조용히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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