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마리의 원더랜드

알리시아의 친구

by 뮌헨의 마리


레아마리를 만나고 왔다.


레아마리는 알리시아의 서울 독일학교 친구. 유치원부터 초등 1년까지 8년의 절반을 함께 한 사이. 레아마리가 독일로 온 것은 작년 7월 7일. 우리가 간 날이 꼭 1년째였다. 미리 알고 날짜를 정한 것도 아닌데, 레아마리 엄마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 마음이 찡했다. 탁구공이 넘어오듯 아이들의 인연이 부모인 우리 쪽으로 건너온 기분.


레아마리가 사는 곳은 레아마리 파파의 고향인 독일의 남쪽 끝 바이리쉬 게마인 Bayerisch Gmain. 동네 어귀의 1차선 찻길 하나만 건너면 오스트리아다. 알프스 산자락이 완만하게 펼쳐지는 풍광과 사방을 둘러봐도 들판 밖에 보이지 않는 독일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산들이 있는 곳. 그것만으로도 레아마리를 방문하는 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조부모 이전부터 살아온 동네. 서로의 성만 듣고도 누구네 아이들인지 안다는 곳. 40년을 한 학교에서 1-2학년 수업만 하셨다는 레아마리 선생님은 아기 아빠가 된 레아마리 파파의 사촌이 1학년일 때 부임한 후 레아마리반 담임을 끝으로 낼모레 정년을 앞두고 있다는데. 그런 전설 같은 할머니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레아마리가 사는 원더랜드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독일이 아니라 차로 20분 남짓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방의 젊은이들은 너나없이 주말이면 잘츠부르크로 놀러 간다고. 여름 페스티벌이 있던 그날만 빼고. 그날은 지역 소재지 바드 라이헨할 Bad Reichenhall에서 여름축제가 열렸다. 우리로 치면 시골의 면 단위 정도. 인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다 몰려나온 것 같았다.


시골 축제라 소박하겠거니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간만에 축제다운 축제를 보면서 가장 흥겨웠던 사람은 나였다. 사촌이고 친구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죄다 거기서 결혼식 서명을 했다는 격조 있는 시청 하며 금요일마다 장터가 열린다는 시청 앞 광장.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반듯하고 널찍한 길들. 골목길을 따라 품위 있게 늘어선 크고 작은 가게들은 또 어떻고.


그중 눈길을 끈 곳은 레아마리 엄마가 자주 들른다는 가게 올라라 Olala. 보랏빛 옛날 배 두 척과 평화라는 글자가 한자를 포함 온갖 언어로 상호 옆과 아래에 손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유기농 제품과 에코 면소재 옷과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공정 거래 물품들과 친환경 화장품까지 취급 품목도 다양했.

신기한 것은 주인 할머니가 가게 직원을 뽑는 방식. 이런 일에 관심이 있는 무료 자원 봉사자들이 하루 2시간 단위로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다고. 카드는 안 되고, 현금 결제만 가능. 그날 레아마리 엄마와 내가 들렀을 땐 나이 지긋한 중년 아주머니가 근무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서너 살 손주가 있는 할머니.

앞 코가 V자로 파인 부드럽게 발목을 감싸는 가죽 구두. 무릎 근처에서 경쾌하게 흔들리는 검은색 린넨 원피스. 허리 위로 느슨하게 두른 세련된 벨트까지. 저런 멋쟁이 할머니가 있나! 할머니라니. 유럽의 60대는 할머니라는 단어조차 거부한다. 그들은 패션에서도 자유롭다. 그럼 40~50대는? 한 마디로 새댁!



아이들은 신났고, 어른들은 즐거웠다. 아이들이 30분씩 기다려 트람 폴린 번지점프를 하고, 미니 바이킹을 타고, 공기를 가득 채운 투명 볼 안에서 물 위를 구를 때, 어른들은 광장 여기저기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지나가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소리쳐 부르며 인사를 나누고, 떠들썩한 공연을 구경했다.

전통 의상을 입고 떼로 몰려다니던 젊은이들의 경쾌한 몸짓들. 소시지를 굽는 매캐한 연기. 아이들의 손에 들린 색색의 풍선과 솜사탕들. 몸이 절로 흔들리던 밴드들의 음악. 무대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후렴구를 따라 부르던 프린스의 퍼플 레인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모든 소란을 말없이 받아주던 나무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흔들리던 잎들도.


그날 레아마리 엄마와 나는 잠시 국적을 잊었다. 금발의 아이들 속에서 뛰노는 우리 아이들의 까만 머리칼과 눈동자도.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몇몇 시선에는 여유로운 미소로 답하면서. 1년에 한두 번의 해방.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귀한 건 흔할 필요가 없지. 작년에 레아마리가 독일로 왔을 때 잠시 뮌헨에 와 있던 우리가 레아마리를 처음 방문하던 날처럼.

그날은 축제의 날도 아니었다. 평범하고 한가로운 여름날. 우리는 레마마리네가 자주 들른다는 동네 이태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뛰노는 식당 앞 넓은 공터의 고목들. 식탁 위로 고요히 내려앉던 산들. 석양 무렵에만 보여줄 법한 어두운 산들의 표정. 그날 해는 늦도록 저물지 않았다.


레아마리 아빠는 고향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리 편안해 보일 수가 있나. 온 지 얼마 안 되는 레아마리 엄마의 얼굴도 주위 풍경과 잘 어울렸다. 아, 그날 마신 와인의 맛을 어찌 잊나. 와인에 대해서라면 전문가인 레아마리 아빠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계속 주문하던 화이트 와인은 대체 몇 병이었나.
그날 저녁 와인이 펼쳐 보인 마술은 술술 나오던 내 독일어? 뮌헨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웃음 떠나지 않던 내 얼굴? 무슨 상관이랴. 조만간 우리는 또 만날 텐데. 산들을 안주 삼고 아이들을 핑계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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