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읽고 첫 모임을 가졌다. 숙제를 마친 듯 후련한 기분이었다. 첫발을 뗐구나! 거창한 의미를 짚어낸 건 아니다. 각자 햄릿을 읽었고, 셰익스피어라는 성에, 세계문학이라는 왕국에 한 발을 입문한 정도. 큰 기대는 없었다. 햄릿을 정독하고 4대 비극의 포문을 열면 됐지. 호불호가 갈리는 희곡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전체든 일부든 읽고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그것이 중하고 귀했다.
모임의 멤버는 나를 포함 5명. 첫 모임에 전원이 참석한 것도 기뻤다. 바이에른 지방의 여름방학을 앞두고 한글학교가 1주일 먼저 방학하는 날이기도 했다. 한글학교는 뮌헨의 실업계 직업학교 교실을 임대해서 사용한다. 토요일마다 중국학교와 나란히 같은 건물 위층과 아래층에서 수업 중. 학교 시설 관리 차원에서 한글학교는 한 주 먼저 방학하는 시스템이라 수업 일수가 적은 건 아쉬웠다. 그럼에도 뮌헨 인근에서 차로 1~2시간을 달려오는 학부모도 있다 하니 한글학교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
4월에서 6월까지 세 번의 예비모임을 가졌다. 만남은 한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사이. 5명 중 셋이 한글학교 학부모라 나머지 2명의 양해를 구했다.
아쉬운 건 한글학교 우리 반 엄마 한 사람이 시작도 전에 하차한 일. 같은 반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주중엔 독일어를 배우고 토요일엔 한글학교에서 직책을 맡아 일하던 사람. 학교 회의나 행사가 겹쳐 예비모임 중 한 차례도 참석을 못했다. 언젠가는 함께 할 날이 오겠지.
그동안 공식 모임만 있었던 건 아니다. 3월 중순 베를린 리포트를 통해 모임을 제안했던 나는 네 명의 회원들과도 차례로 만나 차를 마셨다. 이런 소모임에서는 회원들 간의 사적인 교류와 소통이 중요하다. 7월 첫 모임이 있기 전 동화책 그림 작가 희의 아틀리에에서 번개도 했다. 취미 활동과 시간이 겹친 한 명을 뺀 나머지 네 명이 말 그대로 번개같이 모였다. 아이들은 남편들에게 맡기고 맛있는 음식까지 챙겨 들고서.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과와 오이만 송송 썰어간 나는 태국식 스프링 롤과 닭강정을 필두로 맛있는 저녁을 실컷 먹었다. 그날 저녁 금식은 자동 취소.
모임 전날 단톡방에서는 열띤 토론의 장도 펼쳐졌다. 번역 문제였는데 예를 들면 햄릿 제3막 제2장 89행 호레이쇼의 대사.
연극 중에 국왕이 은밀히 '제 눈을 훔치는' 일이 생긴다면
그 도둑맞은 책임은 소신이 지겠습니다. <햄릿> (열린 책들, 박우수 옮김)
만약 그가 연극의 진행 중에 조금이라도 '제 눈을 속여서' 발각을 모면한다면
저는 절도당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햄릿> (문학동네, 이경식 옮김)
그가 공연 도중에 '뭔가를 훔치고' 안 들키면,
도둑질에 대한 값은 이 몸이 치르지요.
<햄릿>(민음사, 최종철)
연극 도중에 '한 눈이라도 파는' 일이 있다면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세계 문학의 숲, 여석기 외)
문제가 된 부분은 '훔치다'란 표현. 영어 원서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문제 제기를 한 이가 올려준 독일어 번역에도 '훔치다'로 되어 있었다. 정확한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의역인가, 직역인가. 의역은 어디까지. 번역의 영원한 과제다. 호칭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과인, 폐하, 세자, 저하'와 같은 호칭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이런 대화야말로 함께 읽기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
회원들 중 누구도 햄릿이 우유부단하다는 명제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8월에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계속될 예정. 한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피서법으로 그만일 듯하다.
모임이 끝나고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전 사진 올리는 거 정말 안 하는데, 모임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좀 변한 것 같아요."
그녀의 카톡 프사에는 그녀가 남편과 머리를 맞댄 채 살짝 각도가 기운 셀카 속에서 어린 연인들처럼 웃고 있었다. 그러자 또 누군가의 커밍아웃이 뒤를 따랐다.
"저도 좀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옹고집에 불만도 많고 전투적이었는데, 이 모임을 통해 듣는 법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를 놀라게 하는 멘트들이다. 변화란 기분 좋은 일.
<첫 번째 모임>
시간: 2018년 7월 21일 (토) 오전 10시 장소: Cafe Diva(뮌헨 한글학교 포치 슈트라세 역) 토론: 셰익스피어 <햄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