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김나지움 학생이 되었다

독일 김나지움 5학년

by 뮌헨의 마리


아이의 김나지움 개학과 함께 새날이 밝았다. 코로나와 함께 문을 닫았던 뮌헨의 한글학교도 이번 주말부터 시작한다. 코로나도 함께 하는 삶. 슬기로운 코로나 시대를 기원한다.


아이의 김나지움에서 입학생 새내기들에게 준 선물은 꽃화분.



아이는 한국 나이로 열한 살. 2월생이라 남들보다 반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독일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기에 1월~6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입학 대상이 된다. 7월과 8월생은 그해나 다음 해에 보낼 수 있다. 2020년 9월 8일은 남부 독일 바이에른주의 개학날이었다. 북쪽의 베를린은 유월 말 방학. 개학도 우리보다 한 달이 빠르다. 남쪽 뮌헨의 방학은 칠월말. 6주간의 방학이 끝난 9월 둘째 주 화요일이 개학이다. 개학날이 왜 화요일일까. 월요일도 아니고.


2년 전 독일에 왔을 때 나만 월요일이 개학인 줄 알고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간 흑역사도 있다. 알림장은 도대체 뭐하라고 있는 건지. 독일인 남편은 이럴 때 뭐한 건지. 아무튼 개학은 월요일!이라는 공식이 50년 동안 내 머릿속에 화석처럼 굳어 있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남편 왈, 개학 준비로 정신없을 학교 선생님들에게 하루 시간을 주어야 한다나. 그 말은 맞았다. 김나지움 첫 입학인 아이에게 장문의 알림장이 개학 전날인 월요일 저녁에 도착했으니까! 여기가 진정 독일인가 내 눈과 귀를 의심한 사례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1학년에서 4학년. 한국의 인문계 중고등학교를 합해놓은 김나지움은 5학년부터 13학년까지다. 무려 9년. 한때 김나지움을 8년으로 줄인 적도 있었다. 전체 교육과정을 다른 나라들처럼 12년 제로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학생들의 수업 강도와 학업 스트레스가 너무 높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우리 아이 때부터 다시 13학년이 부활했다. 12학년 때부터는 졸업 시험인 아비투어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 과정이 꽤나 힘든 모양이다. 그 점수로 대학을 가니 우리로 치면 수능인 셈.



물을 너무 많이, 자주 주어도 꽃이 죽는다는 것을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아이는 첫날 김나지움에서 입학 선물을 받아왔다. 보랏빛 과꽃이었다. 꽃다발도 아니고 생화분으로. 내 생애 저런 선물도 처음 보았다. 아이는 애지중지하며 물을 주었냐고 날마다 엄마에게 잔소리. 엄마는 자기 화분은 직접 관리하라며 못 박고 선 긋기. 아이는 두 명의 담임샘을 배정받았다. 모두 여선생님. 가톨릭 여자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는 앞으로 남자 선생님에게 배울 과목도 기대 중이다. 반 학생은 29명. 남자아이들이 조금 많은 듯하다. 반 남학생들에 대해 놀리듯 물을 때마다 시큰둥한 반응이다. 부끄러운 거겠지. (전해 들은 소식통에 의하면, 괜찮은 남자애들은 모조리 우리 아이 반으로 왔다는데 두고 볼 일!)


절친 율리아나도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김나지움 새내기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에 이어 '5학년'으로 불린다. 한국의 초등 5학년과 같은 학년인데 중등 입시를 2년 빨리 치른 탓인지 본인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청소년이라고 우긴다. 나로선 고마운 일. 독일의 중고등 학제가 1년 길어져 집 나가 독립할 날이 아직 9년 남았다. 코로나로 개학 후 2주간은 교실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고, 책상도 나 홀로. 바로 옆에 율리아나가 있다고 좋아서 난리였다. 수업 중 마스크를 계속 쓸 지는 코로나 상황을 보며 결정한다고.


율리아나는 자기 엄마의 반대로 오후 동아리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나면 바로 귀가한다.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는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재택근무 중이다. 본인이 김나지움을 다니다가 악명 높은 라틴어 수업 낙제로 상업계 고등학교로 전학한 케이스라 김나지움 공부가 얼마나 만만하지 않은지 율리아나에게 누누이 강조한다. 우리 남편은 정반대다. 아이가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율리아나와 같이 율리아나 집에서 숙제만 하고 노는 걸 바라지 않는다. 동아리 활동을 적극 권유하는 편.


놀랍게도 김나지움 동아리는 학년별이 아니라 새내기인 5학년에서 10학년까지 혼합 그룹이다. 이것도 독일 교육의 특징 중 하나다. 유치원 때부터 나이를 섞어놓는 걸 보고 의아하고 신기했다. 서로 보고 배운다는 의미일까. 남편은 김나지움과 대학만큼 즐거운 곳도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본인은 유치원 때부터 즐거워하신 걸로 기억하는데. 유치원 때 필리핀 여자아이 파니를 좋아했다고 커밍아웃한 게 언젠데. 아이는 수학 동아리를 선택했다. 파파는 로봇과 DIY, 엄마는 연극 동아리까지 추천했지만 아이는 이런 말로 단호히 거절했다. '담임샘이 하나만 하래! 나중에 힘들대!'



아이는 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여럿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 법도 배울 것이다.



개학날 저녁 아이가 말했다. 내가 저녁 9시 취침을 강조한 후였다. 아이를 침대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감회가 무상한 얼굴로 엄마를 불러 세웠다. '엄마, 내가 김나지움 간 거 신기하지 않아?' '그럼 그럼, 신기하고 대견하지.' 서울 독일학교에 다닐 때 반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난 막스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부담임이었던 막스 엄마가 우리가 뮌헨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근심 가득한 눈으로 알리시아 공부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거라고 충고하지 않았나. 뮌헨의 김나지움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대신 최하위를 기록하는 아이의 1학년과 2학년 때 독일어 순위 그래프를 프린트해서 주었다. 고개도 절레절레하면서.


그날 아이도 옆에 있었다. 아이는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그때 내가 독일어 꼴찌였잖아.' '아니지, 꼴찌는 아니고 거의 그랬지.' '아니야, 내가 꼴찌 맞았어. 그런데 막스 엄마가 알면 뭐라고 할까, 내가 김나지움 간 거 말이야.' '깜짝 놀라서 기절초풍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마를 맞대고 킥킥 웃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추락하고 비상하는 롤러코스터에 아이는 앉아 조금은 긴장하고 조금은 들뜬 채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앞뒷면에 선택과 책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티켓을 손에 쥐고서. 그 모든 경험들이 아이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코로나와 함께 문을 닫았던 한글학교도 이번 주말부터 개학을 한다. 매주 토요일 오전 한글학교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상을 얼마나 꿈꾸었나. 뮌헨시가 교실 사용을 허락한 결과다.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없기에 코로나와 함께 가는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방역 수칙은 엄격히 지켜질 것이다. 마스크와 거리두기와 교실 환기. 부모들의 건물 출입도 금지. 화장실도 한 명씩만 들어간다.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학교 이사진들은 복도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돌봐주실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개학과 함께 새날이 밝았다. 코로나와 함께 가는 삶. 슬기로운 코로나 시대를 기원한다. (2020. 9. 11일 자 독일의 신규 확진자는 전날 기준 1,182명.)



코로나 시대를 이기는 뱡법은 서로의 연대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