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김나지움 생활
아이는 김나지움 초년생
유럽의 코로나 재확산이 가파른 추세다. 독일만 해도 매일 확진자가 7,000명을 넘었다. 새 학기가 시작한 지 6주. 더 심해지면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격일로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는 학교에서 영국식 영어를 배운다. 헌책방에서 득템한 오래된 런던 소개 책자. 가격은 15유로(초판 1959년/재판 1965년).
김나지움의 새 학기도 6주가 지났다. 그동안 아이는 학교에서 다섯 과목이나 깜짝 시험을 쳤다. 주요 과목인 수학, 독일어, 영어에 과학과 지리까지. 점수는 이렇다. 수학은 1, 독일어와 영어는 각각 3, 과학과 지리는 각각 2. 본인 말대로 아이는 수학에 강했다. 이번 주부터 중간고사도 시작했다. 공식 명칭이 중간고사는 아니지만, 학기 중에 치는 시험이니 그렇게 부르겠다. 학년말 성적이 되는 중요한 시험이다. 시험은 주요 세 과목만 본다. 10월에는 수학 포함 세 과목을, 내년 1월에는 수학만 빼고 독일어와 영어를 친다. 시험 시간은 45분. 수학 강자에게는 불리한 대진표다.
깜짝 시험은 앞으로도 예고 없이 자주 칠 것이다. 시간은 20분. 시험 성적으로도 반영되는 듯하다. 시험 전에 반짝 공부하는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시험은 4지선다가 아니라 주관식이다. 첫 깜짝 시험인 과학만 미리 알려주었다. 복습과 예습을 착실히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김나지움 예고편 같았다. 다행히 아이는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학교는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난다.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방과 후. 2시간 동안 과목별 숙제를 하고, 나머지 1시간은 방과 후 선생님의 지도로 운동장에서 놀거나 교실에서 영화를 본다. 아이 반의 방과 후 신청수는 절반 정도다.
김나지움 새내기 5학년의 첫영어 교과서.
학교 방과 후는 4시에 마친다. 4시 반에 귀가.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힘들어한다. 아침에는 율리아나 파파의 차로 등교하고, 오후에는 혼자 걸어온다. 간식을 먹고 쉬고 1시간 복습+30분 예습을 한다. 요즘은 주로 시험 준비를 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논다. 저녁 9시에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잔다. 아침 기상 시간은 7시. 등교는 7시 반. 수업 시작은 8시다. 집에서 아이패드나 유튜브는 안 볼까? 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시청을 허락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은 청소년들이 나오는 과학 드라마, 허당끼가 가득한 청년 유튜버가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 것, 과학 관련 퀴즈 프로나 남매가 등장하는 코믹한 프로들이다. 그런 채널들은 어디서 알게 됐는지 신기하다.
이번 주에는 중간고사 첫 과목인 수학 시험을 쳤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시험을 치고 온 날 의기양양하게 외친 첫마디가 '잘 친 거 같아!'였다. 믿을 게 수학뿐이라 안심이 되었다. 다음 주는 독일어, 이달 마지막 주는 영어 시험이 있다. 독일어는 그림을 보고 전개, 발전, 마무리를 쓰는 작문 시험인데 A4 1장~1장 반 정도를 써야 한다.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데 아이의 신뢰를 못 얻어서 패스. 대신 영어는 함께 하기로 했다. 철자 쓰기와 질문에 간단한 문장으로 답하기. 야심 찬 영어 공부 첫날에 '땡큐'를 써보라 했더니 정체불명의 단어가 탄생했다. Tanky. T가 아니라 Th, y 대신 '유'라고 힌트를 줬더니 Thanku라고 썼다. 아이의 야심 찬 목표는 수학 1, 영어 2, 독일어 3. 합리적인 목표라 생각했다가 급 수정. 3을 두 개까지는 감수하기로 했다.
아이의 절친 율리아나는 율리아나의 엄마 이사벨라에 의해 모범생 모드로 돌아갔다. 이사벨라의 입장도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율리아나 파파가 태국 사람이니 본인이 두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알리시아와 율리아나는 수요일 오후에 같은 수학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가 신청한 로봇 등 다른 동아리는 신청자가 몰리는 바람에 떨어졌다. 율리아나는 수업이 끝나는 오후 1시에 바로 집으로 간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엄마와 숙제와 예, 복습과 시험 준비를 한다. 시험 결과는 당연히 율리아나가 낫다. 방과 후가 없는 금요일은 율리아나 집에서 숙제도 하고 같이 놀았는데 율리아나의 바이올린 과외가 금요일 오후로 바뀌는 바람에 놀 시간이 없는 게 제일 아쉽다.
김나지움 새내기 5학년의 독일어(위)와 수학(아래) 교과서.
독일에도 사교육이 있을까. 없다.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일찌감치 아이들을 영국으로 조기 유학 보내는 부유층 가정은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일반적인 기준이다. 더 놀라운 건 영어 사교육도 없다는 것. 어학 학원에는 유치원 수준의 영어 과정만 있었다. 아쉬운 건 딱 하나, 영국 문화원이 없다는 것. 대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한 보충 과외는 있다. 독일의 중고등 과정 김나지움은 5학년에서 12학년까지 8년. 우리 아이 때는 옛날처럼 13학년 제로 돌아가서 김나지움 과정만 총 9년이다. 공부도 공부지만 노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풀지. 새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 공부에 즐거움도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도 찾아야 한다. 이런 걸 부모가 다 가르쳐줄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대학 입시는 김나지움 졸업 시험인 아비투어 점수로 간다.
요즘 유럽의 코로나 재확산이 가파른 추세다. 학교 등교 역시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집에서 라디오를 켜 두고 공부하는 아이의 말에 의하면 만약의 경우엔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격일제로 등교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독일은 온라인 수업이 없다. 형평성의 원리 때문에. 9월 초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1일 확진자는 1,000명이었다. 지금은? 7,000명. 믿기 힘든 수치다. 매주 1,000명씩 증가했다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큰 혼란은 느낄 수 없다. 봄에 있었던 사재기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이미 경험한 일은 공포도 덜하다. 우리는 한 번 살아남은 사람들. 한국은 두 자릿수, 많으면 100이라고 하자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한국을 잘 아는 남편조차도. 한국의 코로나 상황은 지구의 미래다.
2020.10.17(토) 독일 확진자 수를 못 믿는 내게 남편이 보내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