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들리냐고
한국엔 왜? 사는 게 뭐!
사는 게 그렇다. 큰 뜻이 없다. 그냥 살다가 때 되면 간다. 노래를 듣고, 걷고, 그리운 사람도 그리워하다가. 꽃이 피면 봄이 오듯이. 봄이 오면 새가 울듯이.
2021. 2. 6. 로젠 가르텐에 핀 봄꽃!
목표는 춘분 무렵. 한국에 가게 되면 아무한테도 연락 안 할 거야. 언니 집과 엄마 집만 오가며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만 먹고 뒹굴거리고 TV도 봐야지. 치료 같은 건 안 받을 거야. 재밌는 것만 하다 올 거야. 요리도 배워볼까 해. 남편과 아이에게 먹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어. 내가 해놓고도 맛이 없어서 밥숟갈을 놓고 싶던 순간들이 있었지. 그런 나를 보던 심정은 어땠을까.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헤아리게 되네. 딱 한 발만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면 잘 될 것도 같은데. 비슷한 예로 영어가 있지. 입 떼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나. 한 번 떼면 별 것도 아닌데. 그 고비를 넘는 게 지루하고 지난하지. 악센트 좀 있으면 어때. 네이티브처럼 될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는 영어가 안 되면 평생 스트레스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시간이 간다고 나아지지도 않아. 오히려 더하지. 한국은 정말 이상해. 왜 온 국민이 영어를?
난공불락. 내겐 요리가 그랬어. 나라고 맛있는 거 먹으면 왜 안 즐겁겠어. 뭔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삼십 대 때 스승에게 물었지. 스승이 그러시더군. 우선 관심을 가져야지. 그리고 노력을 해야지. 그러고 보니 연애의 법칙이랑 일맥상통한다는 깨달음도 얻었어. 요리엔 하등 도움이 안 되었지만. 요리에 대한 관심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생길 거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지. 그 무렵 시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존경하고 흠모하던 시인의 인터뷰를 읽다가 책을 던져버리고 싶더라고. 시인이 그러시대. 음식의 맛을 모르는 자 감히 시를 논할 자격도 없다고. 나 원, 그런 거였어? 시도 안 되겠구나 낙담하고 기가 죽었지. 죽어도 요리의 세계엔 발도 못 붙이고 이 생이 끝날 것 같은 절망감. 그런데, 언니가 뜬금없이 요리를 배운대. 지가? 나보다 칼질도 못하는 게? 말도 안 돼! 얼마나 오래 가나, 지켜보자 싶었지.
2주를 기다리다 넌지시 물어보았어. 어때, 할 만 해? 언니 왈, 진짜 재밌다고. 신세계를 발견한 것 같다고. 칼질 잘한다고 칭찬까지 들었다나. 백화점 이름도 아니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서도 안 되는데. 지 혼자 재밌게 논다는 뜻이잖아. 나랑 같이 놀아야지! 그때가 한국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말자로 돌아설 때였어. 명색이 암 환자인데 가면 분위기상 이런저런 치료도 받아야 될 것 같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픈 얘기나 묻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벌써 피곤해지더라고. 그냥 놀다 오면 안 되나. 암 같은 건 다 잊고. 나, 한국 가면 요리나 배우다 돌아와도 돼? 나머지는 놀고. 된대, 언니가. 그래서 갈까로 마음이 돌아섰지. 언니에게 입단속도 시켰어. 지금까지 몇 명한테 말했어, 나 온다고? 세 명. 오케이, 딱 거기까지! 스리슬쩍 갔다가 표도 안 내고 돌아오자 싶었지. 브런치는 휴업하고. 안 그럼 얼굴 보겠다고 줄 서면 어떡해! (이러고 갔는데 줄을 안 서면? 뭘 어떡해, 고맙지!)
생각해 봤는데, 브런치 휴업은 신중해야겠다. 요즘 아이가 내 브런치에 들어와서 라이킷을 눌러주고 부리나케 내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 글을 읽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 실력이 안 된다는 건 나도 안다. 제목이라도 읽으면 다행? 아이에겐 다만 라이킷이 중요하다. 잠수 탄다고 브런치에 글을 안 쓰면 아이가 서운할까? 안부가 궁금하신 독자분들도 계시겠지? 중요한 건 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자, 다. 많은 이들이 그걸 바라고 있고. 그건 그렇고, 한국 가면 하고 싶은 게 또 있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져야 하는 거긴 한데,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도 하고 싶다. 하체가 약한 체질이라 이 기회에 하체가 튼튼한 이로 변모하고 싶다. 언니 요가원에서 언제라도 요가를 해도 좋다는 원장님의 배려는 정중히 사양하련다. 지하철 타고 가려니 귀찮다. 멀리 갈 필요 있나. 집에서 PT 해달라고 조르면 되는데. 최고의 요가 강사랑 한 집에 사는데. 그리고 둘이서 요리를 배우러 다니는 거지. 매일 맛있는 요리를 친정 엄마랑 이태리 형부에게 배달하는 즐거움은 덤으로 올 테고.
시간이 나면, 아니지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부산에는 다녀와야 한다. 삼촌 숙모와 사촌들 얼굴도 봐야 해서. 넘 걱정들 하셨을 거라서. 부산에는 뮌헨 조카의 엄마인 친척 언니도 있고, 언니의 주말 시골집도 가 보고 싶다. 부산에서 그리운 샘과 Y언니도 만나야 한다. 아, 친구들도 만나야 하는데! 이게 문제다. 이러다 진짜 판이 커질 것 같다. 주말 외에는 시간이 없을 텐데. 주중에는 사람도 안 만나고 무위도식만 할 생각이라서. 그래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겠지. 만나도 아픈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암을 잊고 사는 게 최종 목표라서. 그러다 잘못되면? 바닥은 벌써 쳤는데 잘못될 게 또 있으려고? 어딜 가나 나만의 항암 프로그램도 계속될 것이다.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즐거운 취미 가지고, 유쾌한 프로 보며 웃고, 가족 고마운 줄도 알고, 엄마한테도 다정한 딸이 되어 돌아와야지. 암에 걸린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친정 엄마였다. 내가 못된 딸이었다는 걸 알았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정말로. 이게 진짜 이유다. 내가 한국에 가고 싶은 이유.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싱어게인>에 대해서도 한 마디 보태야겠다. 우리 언니가 J언니와 만나 주말을 불태울 때(나도 한국 가면 합류함!), 저녁 먹고 엄마와 즐겨 돌려본다는 그 프로 말이다. 뮌헨에서는 그 프로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잖나. 언니와 J언니가 열광한다는 29호 가수 정홍일과 30호 가수 이승윤. 두 사람을 나 역시 애정 한다. 그중에서도 29호의 <그대는 어디에>와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산책 때마다 즐겨 듣는다. 속이 시원하다. 최고다. 30호의 노래 중에서는 <Honey>가 맘에 쏙 든다. 한국적 분위기에서 탄생하기 힘든 29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63호 가수 이무진이 부른 이문세의 <휘파람>도 듣기 좋았다. 얼마 전에 브런치에 <못다 핀 꽃 한 송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자 왜 하필 그런 제목을 썼냐고 속상해하신 분이 계셨다. 나는 큰 의미 없이 붙인 제목이었는데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사족을 붙이자면, 그날 나는 29호의 노래를 들으며 로젠 가르텐으로 산책을 갔고, 못다 핀 장미 한 송이를 보았으며, 듣던 노래는 제목이 되었다. 사는 게 그렇다. 큰 뜻이 없다. 그냥 살고 때가 되면 간다. 노래를 듣고, 걷고, 그리운 사람도 그리워하다가. 꽃이 피면 봄이 오듯이. 봄이 오면 새가 울듯이.
장미 이름이 저래도 되나. 대체 어떤 장미들이길래? 올봄에 꼭 확인해 주겠다(위). 로젠 가르텐에서 발견한 2월의 장미 한 송이(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