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이후

풍욕과 채식의 힘

by 뮌헨의 마리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 우리 엄마표 미역국인데. 미역이 다른가. 왜 내 미역국은 그 맛이 안 날까.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고, 언니가 극찬하는 싱어게인을 함께 보는 저녁은 올까. 이번 봄날에.


우리 샘이 보내 주신 한국의 이른 봄 소식(위) 과일과 채소의 날들(아래)



수술한 지 7주째다. 확실히 6주가 지나니 수술 자국이 많이 아물었다. 이젠 허리를 쭉 펴고 걸어도 불편하지 않다. 몸무게도 2주째 58kg대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바라던 몸무게다. 수술 후 매주 1킬로씩 빠지던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도 멈췄다. 요즘은 현미 잡곡밥도 예전보다 잘 먹고, 반 공기 정도는 문제없이 소화하고 있다. 현미밥 덕분인지, 다시 시작한 산책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매일 아침 풍욕과 저녁의 냉온욕/반신욕 덕분인지 화장실 가는 데도 문제가 없다. 나는 풍욕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풍욕을 시작한 지는 2주가 지났다. 그동안 30분 걸리는 풍욕 도중에 화장실로 달려간 적이 몇 번 있으니 꼭 억지라고 할 수도 없다. 아침 일찍 화장실을 다녀오고도 그랬으니까. 매끼 먹는 양에 비해 자주 볼 일을 보니 배속이 시원하고 몸이 가볍고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컨디션도 좋다.


풍욕은 내 친구 J가 보내준 음성 앱을 이용한다. 30분간 종소리를 들으며 따라 하기 좋다. 창문을 조금 열고, 옷을 벗고, 이불을 덮었다 벗었다 하면서 피부 호흡을 한다. 풍욕을 안 지는 오래됐어도 직접 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에는 추울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났다. 뭐든 급해야 하게 되는 모양이다. 해 보니 하나도 어렵지 않고 춥지도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는 아침 8시에 하니 방해받거나 신경 쓰일 일도 없어 좋았다. 거실 문을 닫고,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불을 끄고 시작한다. 풍욕의 좋은 점을 딱히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금방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서. 피부 호흡 덕분인지 삼십 대 후반부터 손등에 생기던 검버섯이 옅어진 기분은 든다. 감기에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근거 있는 자신감은 덤이다.


풍욕의 좋은 점은 따로 있다. 이불을 덮었다 벗었다 하는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 이불을 벗고 20초부터 매번 10초씩 늘려가며 120초까지. 이불을 덮고 1분에서 2분 30초까지. 이불을 벗을 때는 어깨 뭉침을 풀어준다. 딱딱하던 어깨가 말랑하게 풀어지고 갈비뼈 사이에 남아있던 통증과 등통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목과 겨드랑이도 풀어준다. 이불을 덮고는 발바닥과 종아리 마사지를 한다. 30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이토록 많다는 게 놀랍다. 그 사이 따끈한 차를 옆에 두고 마신다. 대충 계산해도 일석삼조다. 풍욕을 마치면 5분 정도 누워서 쉰다. 누운 김에 다리 들고 자전거 타기 500번. 다음은 유튜브로 스쿼트를 할 차례. 엉성한 자세지만 하루 200개가 목표다. 따라 하기는 언제나 쉽다. 하체 근육은 건강의 기본 중 기본. 체온 상승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어제부터 유튜브로 라틴댄스도 배운다. 넘 재밌다! 어제부터는 혼자 산책도 한다. 오랜만에 나온 해 삘을 받아서 가능했던 일들이다.)




채식에 대해서는 나름 할 말이 있는 편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초등 6년까지 산 경험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텃밭에서 쓱쓱 잘라온 부추와 상추로 겉절이를 하고 고추와 오이를 따 와서 된장에 찍어먹고 밥과 겉절이에 된장찌개를 부어 비벼먹던 맛이 나의 원초적인 식성이기 때문이다. 시골에 생선이 어디 있으며 고기가 어디 있었겠는가. 어릴 때 고기와 생선을 먹어본 건 명절이나 제사 때뿐이었다. 그때부터 고기와 안 친했으니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다. 상해에 살 때 빼빼한 언니가 한 분 있었는데 늘 약을 달고 살았다. 한 번은 상추쌈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고기도 없이 먹는 상추쌈은 무슨 맛이냐고 의아하게 물었다. 나도 놀랐다. 상추는 고기가 없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거구나! 그건 그렇고, 채식은 정말 힘들까?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유년기의 입맛을 소환한다. 내게 상추쌈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추억의 맛이다. (그런데 어제는 상추가 없어서 급한 마음에 케일 쌈을 먹다가 죽을 뻔. 왜 그렇게 질긴지! 밥 먹다가 멈추고 데쳐서 쌈으로 먹었다.)


요즘 아이가 내가 생활하는 거실 방으로 와서 자고 있다. 첫날에는 넓은 가죽 소파에 슬리핑 백을 가져와서 자더니 다음날부터는 자기 이불을 들고 와서 매일 밤 소파에서 자겠노라 선언을 했다. 자기 침대가 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는 아이가 어쩐 일로 저러지. 혹시 엄마가 한국에 가서 좀 쉬었다 올 가능성도 있어서 그렇단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나. 아이들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생각이 없는 건 어른들이다. 아이와는 응팔과 응사를 거쳐 응칠까지 뗐다. 아이는 응답하라 시리즈로 한국과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진 듯하다. 지난 주말에는 <슬기로운 의사 생활>도 같이 보았다. 캐릭터들이 착해도 너무 착해서 현실감이 생기지 않았는데도 드라마에 빠져들게 하니 놀라울 뿐! 응답 시리즈에서 아이는 응팔의 박보검 vs 나는 응칠의 서인국을 좋아했는데,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는 아이도 나도 우주 아빠 조정석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우주 역할도 컸음! 노래는 또 왜 그렇게 잘함?)


이건 비밀인데, 요즘 우리 언니는 요리를 배운다. 내가 요리를 못하니까 독일 와도 도움이 안 된다고 일갈한 게 효력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요리 배우며 신세계를 접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단다. 수혜자는 당연히 친정 엄마와 한국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건강식이라고 믿는 이태리 형부. 매일 새로 배운 요리를 집에 싸들고 오니까 엄마는 사는 게 즐거우시고, 형부는 갱년기에 새 취미를 시작한 언니에게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길이라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이 우리 언니에게 음식을 갖다 바친 세월을 생각하면 이젠 언니가 요리를 좀 할 때도 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언니가 멋진 홈쿠킹 요리사가 된다면 동생 잘 둔 덕분인 줄 알아야겠지? 그나저나 언니의 요리는 그렇다 치고,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 우리 엄마표 미역국인데. 미역이 다른가. 왜 내 미역국은 그 맛이 안 날까.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고,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언니가 극찬하는 싱어게인을 함께 보는 저녁은 올까. 이번 봄날에. 그런 봄날 저녁은 도대체 얼마만일까. 며칠 전에는 독일 남편의 형과 형수님인 크리스토프와 마리온이 힘내라고 꽃다발을 보냈다. 꽃들이 입춘 이후 내 마음에 봄을 질러 이른 봄병을 앓는다.



남편의 형과 형수님이 보내신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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