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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Feb 12. 2022

필사 노트37-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 명상록'



대학시절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감명 깊게 읽었었다. 그 당시 책상에 “어떤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고통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때든 그 생각을 극복할 힘을 갖고 있다.”라는 글귀를 적어 놓고, 마음이 번잡하거나, 잡념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이 문구를 마음에 새겼었다. 범우사에서 출판한 책으로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번역이 조악하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나중에 좀 더 매끄러운 번역의 판본을 구해서 읽고 싶었다. 늘 다시 한번 제대로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에, 문예출판사와 현대지성출판사의 책을 비교하다가 좀 더 읽기 편하다고 느꼈던 현대지성출판사에서 출판된 명상록을 읽고 있다.     


     

처음 읽었을 당시 나보다 2000년을 앞서 살았던 사람이 생사가 오고가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썼던 일기를 읽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나보다 무려 2000년을 먼저 살았던 사람의 일기라니..!! 권력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항상 자신을 절제하고, 선을 추구하고, 자아성찰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명상록을 읽으면서, 그는 참으로 고결한 영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솔직한 상념들을 가감없이 적어내려갔을 일기가 이처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 가득하다니!!!  


        

아마 그는 2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일기를 이렇게 감탄하면서 읽고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겠지만, 문득 200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나를 고결한 영혼으로 기억해준다는 것은 정말 멋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래는 2000년을 앞서 살았던,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문장들이다.  




             

*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자신의 생애 말기에 외적들의 침공을 제압하기 위해서 제국의 북부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으로 원정을 간 10여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철학 일기다 .          




1.



우리는 자연적이고 본성적인 과정들에서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것들에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빵은 굽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갈라지고, 그런 갈라진 금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제빵사의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묘하게 우리의 마음을 끌어서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무화과도 아주 잘 익었을 때 갈라지고, 올리브 열매도 잘 익어서 나무에서 떨어져 썩기 직전에 가장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이삭, 사자의 주름진 이마, 멧돼지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품은 그 자체만 따로 떼어서 보았을 때에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연적이고 본성적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어떤 아름다움과 매력이 있다.



2.


  

너의 일련의 생각들 속에서 아무런 목적이 없는 쓸데없는 공상과 잡념, 특히 호기심과 악의에서 생겨나는 생각들을 피해야 한다. 누군가로부터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더라도, 그 즉시 지체하지 않고 아주 정직하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생각들을 하기 위해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너는 언제나 정직하고 무엇인가를 베풀며 공동체에 유익한 생각들만을 하고, 쾌락이나 방종이나 다툼이나 시기나 의심 같은 것들과 너의 마음속에서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네가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그 밖의 다른 생각들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의 대답 속에서 즉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3.



어떤 일을 할 때에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하지 말며, 먼저 치밀하게 검토함이 없이 하지 말고, 무리하게 하지 말라. 너의 생각에 화려하고 그럴 듯한 옷을 입히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          



4.



늘 쾌활함을 잃지 말고, 외부의 도움 없이 네 자신의 힘으로 해 나가며, 다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을 물리치고 스스로 서라. 네가 스스로 바르게 서야 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 서거나, 남이 너를 바르게 세우게 해서는 안 된다.




5.



네가 인간의 삶 속에서 정의, 진리, 절제, 용기보다 더 선한 것을 발견한다면, 다시 말해 네가 모든 일에서 참된 이성의 명령을 따라 행할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행하고, 너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네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들에서는 아무런 불평 없이 운명을 따름으로써 네 마음이 만족을 얻는 것보다 더 선한 것을 발견한다면, 너는 네 마음과 목숨을 다해 그것을 행하여, 네가 발견한 최고의 것을 누려라.     



6.

      

너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오직 현재라는 아주 짧은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고, 다른 모든 시간은 지나간 과거이거나, 네가 살게 될지조차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너의 인생은 극히 짧고, 네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조각도 아주 작다. 사람이 죽은 후에 남기는 명성도 아무리 길게 지속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아주 짧고, 그 명성을 대대로 전하는 자들은 아주 짧은 시간 살다가 죽을 자들이고, 오래전에 죽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런 자들이다.   




7.

        

네게 지금 맡겨진 일을 바르고 참된 이성을 따라 선의를 가지고서 진실하고 과감하며 용기 있게 행하고, 다른 불순한 것들은 돌아보지 않는 가운데 오직 네 안에 있는 신성을 순수한 상태로 지켜서, 지금 당장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아도 주저 없이 당당하게 돌려줄 수 있으며, 그런 삶을 고수하면서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겁내지 않으며, 오직 본성에 따라 그때그때 행하는 것과 너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의도가 늘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참되다는 것에 만족한다면, 너의 삶은 행복할 것이고, 아무도 너의 그런 삶을 가로막을 수 없다.           



8.


이제 더 이상은 이리저리 헤매거나 우물쭈물하지 말라. 네게는 네가 적어 놓은 비망록 수첩이나 고대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의 행적이나 나이 들어서 다시 읽어 보겠다고 생각해서 쌓아둔 발췌본들을 읽을 시간도 아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9.


운명에 의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과 운명이 자기를 위해 빚어 놓는 모든 것을 기뻐하고 환영하는 것, 자신의 마음속에 좌정하고 있는 신성을 더럽히지도 않고 밖에서 들어오는 무수한 인상들로 인한 혼잡한 상념들

로 신성을 어지럽히지도 않는 것, 신에게 온전히 복종하여 참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일은 행하지 않음으로써 신성을 끝까지 편안하게 섬기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단순하고 겸손하며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믿지 않아도 그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묵묵히 걸어간다.  



10.

        

너는 네 자신이 원할 때마다 그 즉시 네 자신 속으로 물러나서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쉬기에는 자신의 정신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물러나서 거기에 있는 것들을 보자마자 그 즉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여기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 것은 마음이 선한 질서를 따라 정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네 마음속으로 물러나 쉼으로써, 너의 마음이 선하게 정리되고 늘 새롭게 되게 하라. 네가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원리들은 핵심을 담고 있는 짧은 것들이어서, 네가 그 원리들을 너의 뇌리에 떠올리자마자 그 즉시 모든 고민과 잡념이 제거되고, 네가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들로 너를 돌아가게 해 주어서, 네게서 모든 불만이 사라지게 해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11.


저 하찮고 덧없는 명예욕이 너를 사로잡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는가? 모든 것이 얼마나 신속하고 완벽하게 잊혀지고, 우리의 앞뒤로 얼마나 무한한 시간의 심연이 자리하고 있으며, 군중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얼마나 공허하기 짝이 없는 메아리일 뿐이고, 네게 찬사를 보내는 자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는 자들이며,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지를 생각해 보라. 지구 전체가 한 점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이 땅에 머물며 차지하고 살다가 가는 이 좁디 좁은 공간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12.

               

네가 자유인으로서 네 자신의 주인이 되어, 한 사람의 남자이자 인간이자 시민이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사물을 바라보라. 네 마음에 새겨두고서 늘 반추하고 돌아보아야 할 두 개의 원리가 있다. 하나는 외부에 있는 사물들은 외부에 있어서 너의 혼을 지배할 수 없고 너를 흔들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은 언제나 너의 내면에 있는 생각이나 판단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변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다. 네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라. 우주는 변화이고, 삶은 의견이다.          



13.


지금 너는 우주의 일부로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고, 나중에는 너를 낳았던 바로 그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니, 너는 변화의 과정을 통해 만물의 근원인 우주의 이성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14.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지 말라. 와야 할 것이 이미 너를 향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선한 자가 되라.  



15.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언행심사를 바르게 하고 의롭게 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여유가 넘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검은 마음을 곁눈질로 훔쳐 보는 일을 그만두고,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선한 자가 해야 할 일이다.




16.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죽지 않고, 너에 대한 기억도 영원히 보존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도대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람들의 찬사나 칭송이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산 사람에게도 실제로는 부차적인 의미 외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너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평판에만 매달리고 신경을 쓰다보면,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네게 주어지는 자연의 풍성한 선물을 누릴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17.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이든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에 외부의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찬사는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아니다. 찬사를 받는다고 해서 더 선해지지도 않고 더 악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것들이나 인위적인 것들 중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에도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면, 그 자체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런 것들 중에서 법이나 참됨이나 선의나 겸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것들 중에서 어느 것이 찬사를 받는다고 해서 아름다워지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잃겠는가. 에메랄드가 찬사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탁월한 아름다움을 잃겠으며, 황금과 상아와 자주색 옷과 현악기인 리라와 단검과 한 송이 꽃과 어린 관목은 또 어떠한가.  




18.

     

내게 아주 좋은 성품을 지닌 아우가 있어서 그를 볼 때마다 내 자신을 더욱 살펴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면서도 나를 존경하고 사랑해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  나의 자녀들이 지능 면에서나 육체적으로나 아무 문제가 없는 것,  내가 만일 수사학이나 시문이나 그 밖의 다른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텐데 다행히 그런 분야에 뛰어나지 않은 것, 나의 스승들은 아직 젊으니까 나중에 천천히 관직을 주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찌감치 그들이 원하는 것으로 보였던 관직들에 서둘러 앉힌 것, 아폴로니오스와 루스티쿠스와 막시무스를 알게 된 것도 신들의 은총이었다.


         

19.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그 밖의 다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을 때마다 내게 그럴 만한 힘이 없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내 자신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런 곤경에 한 번도 처한 적이 없었던 것, 아주 사랑이 많으며 사심 없는 아내를 만난 것, 나의 자녀들을 위해 훌륭한 스승들을 구해 줄 수 있었던 것도 신들의 은총이었다.           



20.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마치 그 일이 이 땅에서 네가 하는 마지막 일인 것처럼 행하고, 네가 의도적으로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너의 감정에 이끌려서 제멋대로 행하지 않으며, 위선과 이기심과 네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너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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