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의 조각이 너에게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도 집과 대구와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것은 내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영어를 배우면서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한 색깔뿐이었던 나의 세상이 다른 색깔로 물들어 가고, 한쪽 벽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 옆에도 새로운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주 차로 국내여행을 함께 떠나 주었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원한다면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감각으로 알았다.
그래도 경상도 출신의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에선 한반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오랜 설득 끝에 대학교 생활을 일본에서 보낼 수 있었고, 이어서 사회생활을 일본 도쿄에서 시작했다. 일본이 익숙해지니, 이제 다른 나라들도 돌아보고 싶어 졌다.
운 좋게도 나는 고등학교 때, 한국과는 180도 정도로나 다른 이집트에 갈 기회가 있었고 중국과 미국도 여행했지만, 여전히 나는 목말랐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더 자유로워졌다.
내가 번 돈으로 1년에 2~3번 정도 약 2주간의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되돌아보면 25개 정도의 나라를 돌아다녔고, 몇 번씩 방문한 나라도 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나에게
"여행 블로그 해보지?"
"여행 유튜브는 어때?"
"그렇게 여행 가서 남는 게 뭐야?"
등등 나의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추천했지만, 나는 긴가민가했다.
내가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이 여행이라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일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기록한단 말인가.
나는 그저 여행이라는 경험의 조각조각을 내 세포 하나하나에 오롯이 새겨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2020년 6월, 'uncoverbali'라는 미디어에서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이 왔다.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내용.
그때 나는 코로나로 인해 도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발리에서 기약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발리에서의 생활을 하나하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었다.
나의 발리 생활을 들려달라고, 어떻게 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발리에 오게 되었는지, 발리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발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사실 '어쩌다 보니' 발리에 오게 된 나로서는 '이걸 어떻게 대답하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그저 여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코로나로 인해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어 일자리를 잃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내 뇌리를 스친 발리로 행선지를 정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발리에서 출국하는 비행기가 없어서 발리에 발목이 묶인 채 유유자적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인터뷰에 응했고, 그 기회로 나는 이 '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인터뷰에서 일자리를 잃고 생활 거점을 바꾸고 싶어 발리로 오게 되었고, 발리의 자연과 발리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마음에 들고, 발리에서 마음껏 요가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발리에서 지낸다는 특별한 경험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했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 마음껏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길을 걸어보는 것이 좋지 않냐고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오글거리고 어디서 이런 말이 나왔나 싶지만
이 인터뷰를 계기로 나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20번 이상의 여행 중에 이번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나에게도 정말 독특한 경험임을 분명하게 느꼈고, 이 경험을 정말 기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왜 여행하고 있어요?"
이 경험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고, 내 소소한 발리의 일상들을 SNS를 통해 보며 즐거워하는 지인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22번째 여행에서 세포 속에 새겨두었던 조각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