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기획자, 다시 처음부터 나의 직무를 바라보다
중견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서 3년, 대기업에서 다시 3년,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한 지 막 4개월이 지났다. 현재 100명 남짓한 규모의 IT 스타트업에서 내 프로덕트를 온전히 매니징 하는 PM으로 일하고 있다. 전에 다녔던 대기업은 계열사도 빵빵하고 탄탄한 복지를 자랑하며 연봉수준도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내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고 하자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이 나를 밤낮으로 뜯어말렸다. (정말 밤낮으로 카톡 하고 점심엔 같이 밥 먹고 따로 커피 마시면서 앞으로의 계획까지 세워본 게 확실한지를 걱정되는 눈빛으로 물어봤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직을 결심했던 건 그곳이 너무나 '안전한 울타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들 좋은 직장이라고 말하는 것일 테지만 나에겐 독이라고 느껴졌다.
6년 차 기획자였지만 그만큼 일을 잘하고 있다고 나 스스로가 자부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대기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배워버린 입사 후 1년 6개월이 되었던 시점 이후로 더 나아간 부분도 나아갈 수 있는 부분도 찾기가 어려웠다. 하나의 프로덕트를 사이트별로, 페이지별로 또 기능별로 쪼개서 담당자를 나눠 가지는 시스템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고 기획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그 외에 담당 업무에서의 시스템, 흘러가는 구조는 이미 다 터득하고 나니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다.
좋아하는 책 <함께 자라기>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업무 경력이 2년 이상 되면 그 이후는 경력의 '숫자'가 그 사람의 능력과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이었지만 연차만 높고 실력은 장담할 수 없는 부류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 거라 확신을 할 수 없었다. 평소에 멘토링이나 강연을 가면 으레 나의 7년이라는 경력이 안 그래도 'PM/서비스기획' 직무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마치 영웅이 된 듯한 포스를 낼 수 있는 자격조건이 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런 내가 그 강연에서 서서 마치 PM 직무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나 스스로 그에 걸맞은 기획자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게 두려움이 되어서 돌아왔다.
내 위에 10년 차, 20년 차 기획자이거나 기획자 출신의 리더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하나씩은 인정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었음에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그 안전한 울타리를 뛰쳐나와 나를 내던져 보기로 했다.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날 것의 어려움 속에서 내가 나의 것을 단단하게 만들어가길 바랐다.
내가 있던 세상이 얼마나 작은 곳인지 그곳을 나와야 알 수 있다. 자랑처럼 들릴지 몰라도 다니던 대기업에서 일 잘한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일했다. 그리고 퇴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나서도 일잘러가 나간다고 아쉽다는 이야기들, 나와 함께 일해서 배울 것이 많았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래도 내가 잘 해내고 있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작은 규모에서 이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서 알게 된 건 '나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나의 태도부터, 행동, 말투,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했던 4개월이었다. 아직 내가 비즈니스 매너가 부족하다는 점, 비즈니스를 해석하고 서비스 기획을 주도하기에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점, 내가 지금까지 했던 기획은 기능 정의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무엇보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커뮤니케이션과 프로젝트 리딩의 방식도 하나하나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일하는 자아로서 나의 모든 것이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다행히도 운 좋게 좋은 회사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이런 자극들을 좋은 루트로 얻었다. 조심스레 조언을 듣거나, 제안해 주거나, 혹은 내가 다른 분들이 일하는 방식을 보면서 내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어 알게 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가 이렇게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옆에서 나를 진심으로 멋있게 생각한다며, 나에게 배우는 것이 있다며 따뜻하게 지지해 주고 북돋워주는 동료들이 나에게 있다. 대기업에 다닐 때는 겨우 퇴사한다고 밝히고서야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선 입사 2개월 만에 이런 사람들을 얻었다.
이 모든 자극이 휘발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내가 더 깊이 파보고 제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하는 게 싫지 않은 것을 넘어서 즐겁고 재미있는 나의 직업이었다. 늘 이 부분이 행운이라 생각했고 좋은 기회를 좋은 역량으로 꼭꼭 소화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다시 초심을 가지고 하나씩 정리해 나가 보기로 했다. 지난 시간 동안 적어도 진지하게 내 일을 대했고 열정적으로 내 프로덕트를 사랑했었으니까. 이 기록들이 나 스스로에게도 내 일을 정리해 나가는 데도 도움을 주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획 일을 처음 대하는 신입/주니어보다는 경험이 많고 더 덧붙여줄 이야기가 많으니까, 그리고 정말 그 정보와 내용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몰랐던 사람의 입장에서 쉽게 서술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 보기엔 부족한 내용일지 몰라도 꾸준히 쌓아나 가볼 예정이다. 나와 그리고 이 정보들이 소중할 누군가에게는 매일매일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이 되는 기록일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