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선영 콜 기다리면서 그녀가 얼마전 보내 준 박사논문 메일을 펼쳐봤다. 텍스트의 홍수로, 돈벌이와 재미에 소용이 있는 글이 아니면 읽을 생각이 안드는데, 최근 완도에서 여차저차 만남이 이어지고, 일도 도모해보자고 하는 선영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메일통을 뒤져 펴봤다. 곧 퍼블리시를 앞두고 있다는 그녀의 논문은 열어보니 170page. 드든. (게다가 외국에서 박사하신 건 줄은 몰랐네. 논문이 영어.) 공공미술, 문화기획 이런 일을 하셨고, 그 맥락에서 사회적기업을 고민하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그녀의 일에 대해 알기는 처음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민중예술에 대한 관심에서 문화가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고 서울, 그리고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고가며 문화예술을 매개로 시민참여 프로젝트를 한 그녀의 7-8년 프로젝트 경험이 액션 리서치(action research)의 방법으로 아래의 이야기들이 선영의 경험을 통해 차분히 풀어 쓰여 있었다.
문화를 통한 사회변화의 증거들,
그러한 변화의 증거를 만든 활동들,
그 활동을 만든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
지역의 노동자들과 상호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프로젝트'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베이스캠프로 역할 했던 '2015 문래동 프로젝트'에서는 이사람 저사람 - 말그대로 다양한 사람들, 예술가, 주민, 일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 등 - 이 만나고, 상관없는 이야기도 서로를 향해 풀어내게 하는 시도를 했다. 종로에서 했던 '크립토그래픽 이매지네이션 프로젝트'는 친숙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전혀 다른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관심과 소통을 자아내고, 사람들은 판단없이 이얘기 저얘기 하게 되고, 마주치게 했다. 그외에도 두 도시 이야기, Elephants in the Room 등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으나, 같이 이야기 해볼 수 있는 문화예술프로젝트를 통한 관계맺기, '참여'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 이름은 문화 예술 프로젝트지만, 벽없이 사람과 사람이 선입견 없이 만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선영은 논문끝에 이러한 시도가 temporary colloective이면 어떨까? 라는 제안을 한다. 협력을 강요하지 않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이것이 무엇으로 변할 지 모르는 진행형(on-going) 상태를 매순간 받아 들이는 것. 사람들의 전문성, 선한 의지와 성의를 바탕으로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하게 만들되, 협력자들의 리소스를 매순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 프로젝트에 혹사당하지 않게 하는 것을 논문 속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아. 우리는 일을 할 때 선영같은 동료가 필요하다.
선영같은 사람을 우리는 문화예술 기획자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나는 기획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획자의 일이 기획만 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내가 경험해 본 능력있는 기획자는 모든 일을 하지 않지만, 자신이 기획한 일과 호흡을 같이한다. 프로젝트가 현실화 되면서는 여러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그 역시 기획자는 그를 위한 연대와 협력을 조율하는 할 품을 들인다. 그러니, 단순히 '기획'이라는 제목으로 그 사람을 국한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획자는 처음 그 일을 하게된 까닭이 끝까지 가도록 책임지는 사람같다. 시작한 까닭을 굳건히 지키며, 프로젝트가 더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일, 프로젝트가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다른 양상을 띠게 되고,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것에 열려 있는 사람
그런데, 선영 같은 사람은 이름을 둘 곳이 없지 않은가도 생각이 들었다.
돈과 눈에 보이는 자원을 지원하는 정부나 기업, 프로덕트나 서비스를 결과물로 보여주는 예술가는 사용권과 저작권을 달고 크레딧을 가지게 된다. 직접 활동하지 않았어도 내용을 잘 그러모아 잘 정리하고 발표하는 연구자 또한 한 몫을 차지 한다. 함께 참여하게 된 주민이나 이해관계자는 뜻밖의 만남을 얻게 되고 프로젝트에 대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자유이자, 그 다음 선택의 문제이다. 이유가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제로 만들어 가는 공공 프로젝트 분야에서 지속가능해지려면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 학계 셋중 뭐라도 하나 속해야 하는 것 같다. 보통 이 중에서 하던일을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공부하는 일 밖에 없는 것 같다. 선영도 이제 박사다. 하지만, 나는 선영이 그 일을 한 까닭을 잃지 않고, 프로젝트의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여전히 프로젝트와 함께 호흡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화이팅.
선영의 논문중 밑줄 친 곳.
to bridge the perceived gap between artists and local people, and between ‘art’ objects and the artefacts that were part of people’s everyday lives. The principal lesson I learned was that I needed to devise situations where different groups could mix, comment and ask questions without anyone feeling that they were either serving or being subservient to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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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insights have led me to develop and theorise the model of a temporary collective. In this, the idea of the collective of artists and/or other agents that share a common vision and goal becomes a more flexible entity. This might mean, for example, that after a project or even just a stage of a project is completed, the collective of selected personnel might change; artists and others can leave to pursue other interests and then come together again at a later stage and in a different combination for a further iteration of an exhibition. As such, my research contributes to an understanding of how to create a more sustainable model that employs the expertise, energy, and goodwill of communities, artists, and other stakeholders in ways that are agile and responsive, but which do not exhaust the valuable resource of my collaborators
Curating Arts on the Edge of an Unstable Society, Sunyoung Oh, 2022
(PhD thesis by Published 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