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승은을 봤다.
지난 토요일 완도읍내를 나가서 우연히 두들팝 포스터를 마추치고, '흠, 옛날에 이런걸 승은이 했던 것 같은데, 막 에딘버러 페스티벌도 가고 말이야.' 했다.
이미 초연한지 오래된 공연으로, 설사 그 공연이라고 해도 승은이 완도공연에 직접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들팝 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그의 인스타에서 보고, 작가나 감독, 연출 뭐 이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최근에 '드래곤하이'에 뮤지컬에 작가로 참여한다는 그의 포스팅을 본적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11월에 시작했다 11월에 끝나는 일정을 확실히 기억하는데, 오늘이 벌써 16일이다. 그러니 지금 완도에 있을리 없지 않나? 예전에 승은이 드래곤하이를 공연으로 올린다고 책을 보내준 적이있다. 이번에는 짠하고 가서 마음껏 축하해 주고 싶은데, 내가 서울에 없는 때 인것이 콱 내 기억에 박혀 확실히 기억한다. 어쨌든, 승은이 지금 완도에 올 일은 없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문에 붙어 있는 두들팝 공연 포스터에서 "BRUSH Original"이라는 문구를 봤다.
‘예전에 승은이 일하던 데가 '브러쉬 씨어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진짜 승은의 썸띵일 것 같아’ 했지만 승은이 완도 공연에 없을 이유는 이미 많이 쌓아 놨으므로 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맨 앞 가운데 두번째 줄에 앉았다. 주인공이 등장했다. 승은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승은은 아니다.
저 우렁찬 발성은 승은의 것이 아니니까. 저 볼드하고 과도하게 익살스러운 배우의 표정도 그의 것은 아니겠고, 발랄하고 엣지 있으며 날아갈듯한 퍼포머의 몸짓도 그의 것 일리 없다. '대학교에서 연극 동아리를 들었다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대사를 읊는 배우가 되었을 지언정 저런 퍼포머는 아닐 거야.'
그렇다. 나는 공연 내내 그를 몰라봤다.
커튼콜이 끝나고, 관객 인사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공연자를 다시 한 번 유심히 쳐다봤지만 그라는 의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코로나에는 기념사진 찍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배우도, 마스크 벗고 사진이 어려우니 안타깝다하고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뒤 돌아봤는데, 화면에 크게 뜬 브러쉬 씨어터 로고가 있었다. 로고를 보니, 역시 저 회사가 승은네 회사는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를 타면서 승은 인스타 담벼락을 다시 휘휘 살폈다. 드문한 얼굴 사진 중, 아까 그 공연장의 주인공 얼굴에 승은이 더해진 얼굴이 보였다. 뭐지? 지금보니 그 퍼포머, 승은인 건가? 오마이갓! DM으로 승은이 맞는 지 확인 메세지를 보내고, 안 본 세월을 헤아려 봤다.
12년이다. 그 때 이십대 초반이었을 테니, 지금은 삼십대 중반이겠다. 내가 승은을 만났을 때 내 나이보다 이제 더 늙었을 승은. 나는 보고 싶었던 승은을 그렇게 그냥 몰라본 거구나.
가끔 어떻게 사는 지 짐작은 했지만, 실제 적당한 거리에서 본 승은은 믿어지지 않게 변했다. 전에도 똑부러지고 당차며, 엉뚱한 사람이었지만, 오늘 본 지금의 승은은 뭐랄까 더 굵고 진하며, 자유인 것 같은 느낌이다.
부럽다.고 쓰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닮았고, 그렇게 같은 업종인데 "Hoxy..."하고, 공연자에게 한 번 물어볼 생각을 안했나. 아침에 정신이 드니, 이미 내가 글에 단 이유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 불가능을 잘 분석해 판단하기 보다는 승은이 그럴 리가 없어라는 선입견이 나를 물어보지도 않고 승은이 아니라고 단정짓게 막았다라는 생각. 인문계열 공부를 하고, 선명하지만 작은 콩 같은 승은이가 공연자가 되었을 리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나 연극 전공도 안했는데, 막 스코틀랜드/뉴욕에 진출하는 공연의 공연자는 말도 안된다. 춤과 발성은 어디서 배우고, 그 두들(낙서)은 어떻게 할 수 있게 된건가. 내 선입견으로 승은은 글 잘 쓰고, 영어잘 하니, 대본 쓰고 조율하는 사람 정도 될 것으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눈 앞에 승은을 두고도 몰라 봤던 것.
아. 문득 나는 나에게도 어떤 선입견을 씌워놓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런 결정은 하지 않아, 나는 뭐를 전공하지 않았으니까 뭐를 못해 등등등 나의 단정으로, 내가 진짜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지도 않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잘 할 수 있는 기회도 못알아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승은을 보고 알았다. 선입견, 고정관념, 관성은 언제 어느 때나 나에게 벽을 치고, 높여 그 너머 무언가를 안보이게 하고, 단념하게 한다. 때때로 벽을 알아보고 깨는것은 자신으로 사는 사람의 몫이겠다. 나는 내가 바라는 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된다.
서울 가면 공연 끝나고 한가할 때 승은과 커피 한 잔 해야 겠다. 가까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