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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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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Jan 22. 2024

일과 자유

프리에이전트 분투기

1.

중학교 때인가 교과서에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글이 있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득부득 제대로된 다다미 방망이를 깎아 팔던 노인. 지루한 국어 교과서 안 굵직한 클라이막스도 없는 짧은 수필속의 노인을 왜 나는 기억하고 있을까? 처음엔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노인은 세월이 아깝지 않나,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것을 왜 그리 고집하면서 사셨을까? 그런데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하니, 그 노인이 또 생각났다. 누가 뭐래도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누구지 떠올려 보니 그 노인 아닌가?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일하고 싶었다. 오래 한 자리에서 일하며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속한 회사에 앉아 회사가 부침과 성공을 겪더라도 그에 휩쓸리지 않고 우직하게, 제대로 한 가지에 깊고 정통하게 말이다. ‘왜 저렇게 일할까’라는 질문을 들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최고의 방망이를 깎는 노인이 내가 하고 싶던 역할이었다. 십 대에는 안타까웠던 노인이 서른이 되어서 회사생활을 하며 두 번째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린 후부터는, 방망이 깎던 노인은 내게 더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2.

회사 3년 차, 서른 살 봄. 회사에서 최연소 팀장이 되었다. 되어보니 팀장의 일은 한 가지에 깊고 정통함보다는 유연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데 다른 사람의 마음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도 나의 일이었다. 회사나 일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냐며 투덜거릴 잡일도 씩씩하게 했다. 나는 일이 되어가는 데 필요한 패키지 전체를 핸들링하고, 프로그램 하나쯤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또 내 프로젝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그 해마다 회사의 미션과 팀간, 팀내 조율을 통해 해야하는 일, 우리 팀에서 할 일을 정하고 제대로 하려고 애썼다. 필요한 일의 묶음을 빠뜨리지 않고 잘 잡아서 해나가고, 계획한 일이 매끄럽게 추진되도록 했다. 사업계획, 이사회 승인, 사업추진, 주간보고, 월간보고, 반기 보고, 사업 결과보고의 루틴 아래 한 해 한 해가 차곡차곡 쌓였다. 회사 생활 11년차, 사이사이 놓인 사업의 가지들은 자리를 잡았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사업도 생기고, 사업의 의미와 앞으로의 파급효과를 생각해서 지금 힘들더라도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아쉬운 생각이 드는 사업이 이사회에서 재껴지는 일도 있었다. 일 년은 여전히 꽉차게 바빴다.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되고자 시작한 일이 었으나,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일하다간 블랙홀-일이 한 번 들어가면 안나오는-이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방망이를 깎던 노인은 내게 서서히 잊혀졌고, 시간은 그 만큼 빨리 흘렀다.



3.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 아무리 일을 해도 해야 할 일은 또 생긴다. 그렇저렇 넘기는 해가 쌓여 업력이 되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일의 성장 경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늠자가 없었다. 그저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더 이상 걱정되거나 두렵지 않은 것이 내가 성장했다는 표시로 여겨졌다. 일의 완급 조절이 가능해졌고, 어디에 힘줘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어디는 느슨히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할지 감이 생겼고, 필요한 걸 물어볼 사람들도 생겼다. 힘을 들였으나, 하지 못하게 된 사업에 대한 작별 인사도 전보다 빨라졌다. 그전에는 사업이 하나 없어질 때 거기에 갈아 넣은 내 인생도 같이 없어지는 것 같았으나, 이즈음에는 이사회도 설득시키지 못할 사업이, 더 큰 이해관계자인 세상 사람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넘겼다. 따박따박 경력은 쌓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 분야에 정통한 무엇이 되어가는 느낌은 아니었다. 되는 여건에서 유두리 있게 맞춰가면서 일하면서 몸은 고되어도 심리적으로는 여유로워져 익숙하긴 했다.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방망이보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 사양의 방망이를 제때 공급하는 것을 익혔던 것 같다. 방망이 깎던 노인은 더 이상 내 꿈도 아니게 되었다.



4.

’그만하자’ 내 사업만 하던 때에서 전체 회사의 일을 바라보게 되는 눈이 생기자 회사는 내가 하던 사업을 더 확장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은 숙련되고 여유가 생기는 데, 일은 더이상 확장되지 않는다면 ‘꿀’ 아닌가? 조용히 회사를 다니면 된다된다된다 되뇌었다. 같은 월급 받고 일은 더 여유 있어져서 좋다고 되뇌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하던 일을 고만고만하게 유지하는 것이라면 굳이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성장하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고, 회사 일이 더는 내게 큰 도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꼭 이 일을 하는 데 나여야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더 가치를 두는 곳에 시간을 쓰고 싶었고, 그렇다면 만 다섯 살 정든이, 세 살 로울이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내 근무를 주3일로 줄이고, 연봉도 줄이자고 리더에게 제안드렸다. 어차피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회사가 약간 더 비용을 보태 신입을 뽑고, 그 사람이 지금 수준의 사업을 관리할 수 있다면 회사도 사람을 키울 수 있고, 나는 다른 분야의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업을 꾸려볼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받아들여질 것 같은 일인데, 5년 전에는 씨도 먹히지 않았다.



5.

‘나는 중, 회사 이즈(is) 절.’ 머무르던 중이 절을 나갈채비를 하듯, 사직서를 내고 어디로 자리를 옮길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일하던 회사에서 나가는 데, 다음 행선지(next step) 없이 ‘아이도 돌보고, 좀 쉬려구요-’ 하며 나가긴 싫었다. 헤드헌터가 꼭 집었다며 레벨업의 피날레는 아니더라도, 절 나가는 중이 멋진 제 갈 길이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매력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세상이 좀 더 좋아지는 데 기여하는 페이스메이커” 오래전 팀 비전워크샵 때 쓴 나의 문구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매력적인 사람들과 하고 싶다는 것인데, 여기에 회사를 나가면서 원하는 시간만큼이 하나 더해졌다. 잊고 있던 방망이 깎던 노인은 그렇게 스멀스멀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6.

‘원하는 일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만‘ 가능할까? 원치 않은 일을 발라내는 것이 가장 먼저 명확하고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원하지 않는 일은 잘하기도 힘들다. 회사에 있었으면 일이 있으면 누구든 그안에서 해야하니 싫어도 해야하는 일이 생기지만, 회사 밖에서는 그 일로 나를 일부러 부르는 곳은 없다. 원하는 사람이 그 다음 정리되었다.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점이 있고 성의와 염치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오케이. 프로젝트 별로 함께 하는 사람이 달라지니, 적응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느껴졌다. 가장 맞추기 어려운 것은 원하는 시간만큼만 이었다. 먼저 주 3일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적게 일하니, 그만큼 적게 버는 것으로 평일 중 내가 일하는 날의 비율을 따져 기존 월급3/5 정도로 생각했다. 이렇게 욕심 안부리는 나를 속으로 칭찬했다. 사직서를 내고 얼마 뒤, 싱가포르 회사의 한국사무소일 하루, 기존 회사와 비슷한 성격의 회사의 일 이틀을 고정으로 하기로 했다. 내게 주 3일 시대가 열렸다.



7.

‘몰아서 일하면 사람들이 연락안되 답답할 수 있으니, 월/화/수 말고 월수금 해야 겠다’ 주 3일 일하기로 하고, 나름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지만, 바로 깨졌다. 주말에 연락 않는 것이 다행이지, 사람들은 내 일하는 시계에 맞춰서 일하지 않는다. 나는 기껏 적게 일한다고, 양심적으로 월급도 그 비율로 낮춰 잡았는데, 일터에서는 나의 주3일이 통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 생각날 때는 언제든지 연락이 왔고, 그게 카톡이든, 슬랙이든, 메일이든 늦게 본 나는 늦게 본 만큼 일의 적기를 놓쳐 일을 복잡 다단하게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좋은 기회에 제때 올라타지 못했다. 주52시간도 모자르다고 하는 세상에서, 주24시간만 일하기는 그 외에도 녹록치 않은 게 많았다. 일을 하려면 내가 하는 일 외에도 주변 상황과 새로 변화하는 사업 정보 등을 읽어야 한다. 00포럼, 00 사업 설명회, 00 워크샵 등 업계의 상황을 알고 따라가려면 반나절은 가서 들여다 보고 사람도 익혀야 하는데, 업무와 유관하다는 결재만 받으면 회사 근무시간 안에 존재하던 학습과 축적의 시간은 이제 나의 주3일 일하는 시간 안에 있기 어려웠다. 이제 내게 업무일은 곧 업무 투입일(m/d)이 되었다. 즉, 업무 투입일로 계산한 그 날들은 다다다다 일해서 산출물을 내보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일하는 주 3일은 그야말로, 일의 필수 투입 시간으로 정신없이 일해야 했고, 무언가 지식을 쌓는 일은 그 외의 시간을 별도로 안배해야 했다. 물론 시간은 내 자유가 되었으므로 시간을 조정하면 무엇이든 낮에 할 수 있지만, 평일 낮에 무엇을 할 정신적 여유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고연차로 23일의 연차가 있었는데, 이걸 12개월로 나눠도 거의 한달에 2일, 거기에 공휴일 하면, 회사에서 있는게 더 마음 편히 많이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주 3일을 두 개 회사에 쪼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의 절대량이 적어, 주 1-2일 일하면 된다고 쳐도, 그 일을 정기적으로 나에게 맡긴 회사는 그 회사의 타이틀을 걸고 필요한 때는 언제든 일해 주길 바라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론적으로 한 달에 계약한 일수는 모두 채우지만 딱 1/4로 매주 할 일이 쪼개지지는 않았다. 기껏 일할 날 빼 놓았는데 할 일이 없어 애매하게 시간 보내는 날도 있고, 한주 내내 일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결국 일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회사가 필요한 때에는 모두 존재해야했다. 평일 중 일 사이에 쉬는 날이 있으면 효율적인 일의 시작을 위해 업무 투입일 전날 미팅시간 조율 등 워밍업 하는 필요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하루 안에 논의가 다 못 끝나고 의사결정이 제때 이루어지 않은 일들, 상황상 변경이 필요한 일들은 약속된 업무일의 하루가 끝나도 닫아지지 않고, 그 긴 꼬리를 한 주 내내 내게 걸쳤다. 결국 주 며칠의 고정으로 하는 일은 빠르게 정리되었고, 결국 주5일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나날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주5일 일했다고 해서 인건비를 받지는 못한다. 내가 돈을 받으려면 계약된 산출물이 필요했지 출퇴근 스탬프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으니, 매일 일한다고 생색낼 수도 없게 되었다.

나만 빼고 모두 주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아무리 내가 주5일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조직원이 되어도, 전체출근하지 않는 이상 나는 객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 빼고, 다른 동료의 일은 풀타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일일이 점검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진다. 거의 모든 직원이 풀타임으로 일하는 상황에서는 회사에 항상 출근하지 않는 동료에 대한 문화나 이해가 자리잡기 힘들다. 간신히 일 안하는 날 채널을 틀어 막아 놓으면, 나는 나 나름으로 왠지 불안했고, 필요한 일 눈치보면서 내게 연락하는 회사도 편치 않아 했다. 결국 주중에는 계속 일모드 인 것은 예전과 같았다.

외로웠다. 일로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더 좋은 포지션에 있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챙겨야할 가족들이 생기고 절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이미 일에서의 인정과 타이틀이 아니게 되었다. (진심으로) 내 삶이 지속가능하려면 퇴근후, 주말 및 휴가 공휴일에 온전히 아이와 가족에 붙어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내가 천재도 아니고, 범인이 남들보다 적은 시간 적은 집중도로 일하고 같은 기간에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도둑심보 아닐까. 어느 결혼, 육아서사에 나오는 억울함은 없었다. 내가 이 삶을 선택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고, 해보니 생각보다 즐거움과 행복이 더 커서, 일이 고만고만하게 굴러감에 회한이나 슬픔은 없다. 어떤 일을 반드시 해야겠고, 빨리해야겠고, 내가 이렇게 일했다고 증명해야겠고 하는 필요와 욕구가 줄어드니, 일은 오히려 자분자분히 잘되었다. 내가 궁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잘 하고 있나?를 명확하게 짚어 주고, 일에서의 맥락과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더 나아지려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람, 가끔 일이 잘 안될 때 그저 너 잘하고 있어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 느려도, 쉬어가도 내가 맞는 길 위에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료가 필요했다. 며칠 몇 달을 고민하며 보고서를 써내다가 고민을 던지면 이 방향이 맞았다 아니다를 맥락에 맞게 조언해 줄 수 사람, 또 내가도 조언해 주며 그 과정에서 나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 내색은 안하지만 고심하면서 써내려간 보고서의 몇 줄이 얼마나 유의미 한지를 알아보거나, 내 결과물을 진지하게 살펴봐주고, 이해가안가거나 보완할 부분은 솔직히 조언해주는 사람, 좁디 좁은 업계 새로운 정보나 소식을 내가 찾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눠주는 사람, 짜증나고 억울 할 땐 함께 울분을 토하고, 기쁠 땐 함께 손뼉칠 사람, 동료가 궁했다.

그러나 현실은 동료는 커녕 괜찮은 파트너와 일하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엔 누구든 새롭고, 다른 배울 점이 있어 좋았지만, 계약한 일에 계약한 시간을 들이지 않는 파트너,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 스타일이 안 맞는 파트너와 합을 맞춰 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처음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합을 맞춰야 할 때는 동등히 일을 나누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한 부분을 뚝 떼어서 마음껏 하라기엔 불안했다. 일의 범위를 명확히 나누어도 아무의 책임도 아닌 영역이 생기고, 일을 많이 안 해본 새내기는 언급되지 않은 부분을 놓치거나 과도하게 챙기느라 에너지를 뺐다. 사실 일하는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고, 조율하는 데 에너지가 드는 건 당연하다. 몇 번 같이 일해본 사람이 아닌 경우 점검만으로는 팀웍으로 일하는 일의 결을 맞출 수가 없다. 그냥 한 프로젝트만 함께하고 끝이라면, 내가 한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거나, 역할과 책임을 일일이 짚어 발라내는 수고가 필요하다. 팀으로 꾸려 일하길 원한다면, 일의 스타일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들여 같이 몇 번 일하면서 이 일이 어떤 프로세스와 방식을 가져야 하는지, 더 개선되려면 무엇을 할지 함께 이야기하고 실제로 해봐야 하는데, 그 힘을 들이는 데에는 항상 추가적인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를 들임에도 동료라고 생각한 이가 이러한 노력에 반응하지 않으면, 나는 또 나만 질척이는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나는 4대 보험을 제공해 주는 회사에 집착했다. 갑자기 일이 다 없어지면 실업급여라도 받으려고 그랬던 건가. 서른 여덟에 회사를 나오기 전까지 소속이 없던 때는 태어나서 단 8개월, 공부하고 여행 간다고 빼놓은 20대의 한 순간 뿐이었다. 내가 경험한 회사는 내가 회사에 내 시간을 태우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내가 투입한 날들이 산출물로 나오지 않더라도 회사의 출퇴근기록부가 있으면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회사를 나오고 보니 월급은 내 능력보다는 내 시간을 팔아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회사의 정책이 비효율이고 무식하다 싶지만, 회사원으로서의 충성(loyalty)는 결국 효율/비효율을 떠나 함께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에서 나오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식구. 회사식구는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회사는 4대보험 뿐 만아니라, 회사 컴퓨터, 회사 프린터, 탕비실 커피믹스, 당연히 주어지던 내 사무공간까지 다 돈을 들여 제공하는 것이었고, 나는 거기에 내 시간과 충성을 들인 것이었다.

원하는 일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시간만큼 이라고 제한했을 때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풀타임이 아닌 일은 직업으로서의 불안정성을 갖게 된다는 것, 죽으나 사나 함께하지 않으니 생기는 동료 없는 외로움이 이리 클 것이라는 것, 나오면 회사에서 당연히 지급되던 4대보험과 사무실 컴퓨터가 다 내 돈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월급감액과 함께 내 '원하는 대로'에 치러야 할 값은 그렇게 더 많았는데 말이다. 자유의 값이 이렇게 비싸고 수고로웠던가.

일 좀 제대로 나하고 싶은 대로 해보겠다고 사직서를 뽑았을 땐 내가 원하기만 하면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바로 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노인의 당당함과 타협 없음은 거저가 아니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은 이러한 자유의 값을 감당하고 홀로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좌판을 펴놓고 일했던 건가. 그리고 이렇게 원하는대로 일하기가 힘들어서 다시 손님이 찾아갔을 때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 걸까? 나는 어떡해야 할까?



8.

지난 여름 주2-3일 일하면서 4대보험 되는 번듯한 회사에 집착하며 보내던 시간을 끝냈다. 그리고 비싼 수고로움을 시작했다.


하나,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을 주제로 명함을 팠다. ‘이명희파트너‘로. 나는 내가 프로젝트를 만들기 보다, 요청받는 프로젝트에 합류해 일한다. 협력하는 일의 특성상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면 프로젝트 명함도 함께 받는다. 명함에는 이명희팀장, 이명희본부장, 이명희전문가, 이명희위원, 이명희연구원 등 기능과 직책이 담겨있다. 누군가는 능력자라고도 하지만, 누군가는 한 우물이 아님을 걱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풀타임 회사에서 하던 일 보다 가짓수가 한참 줄었고, 제안받아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일을 한정히기에 분야는 오히려 더 구체화 되었다. 그러니, 개별 프로젝트의 이름과 직책만으로 나의 일의 '궤’를 설명할 수는 없다. 프로젝트가 계속 바뀌어도,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데 말이다. 회사가 아닌, 내가 하는 일의 본질로 내 타이틀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치관을 담은 소속과 직책을 이제는 내가 정해보고 싶었다.


둘, 시간을 들이는 느슨한 동료를 만들었다.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 같이 먹는 동료는 아니다. 일과 관계된 커뮤니티, 일하다가 만난 사람을 중심으로 격주 또는 다달이 서로에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느슨해도 함께한 세월이 몇년 씩 흘러 대놓고 자랑도 할 수 있고, 서운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동료가 되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한다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고 싶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대신에 나는 팀이나 조직에 속해 매일 마주치니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내 시간을 적극적으로 할애하여 동료를 만들고 함께 일상사와 고민을 나눈다. 꼭 함께 하는 일 속이 아니라도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일에서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같이 일하고 있지 않더라도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청하기도 하고, 내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도 한다.


셋, 집근처 작업실을 구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사무직의 리모트 워킹이 충분히 가능해졌다. 원격회의가 대면회의의 대체 수단만이 아니고, 회의의 보통 수단 중 하나가 된 지금, 고정된 장소의 출근은 덜 중요하게 되었다. (대신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은 필요하다) 더군다나 이제 출근할 필요가 없는 나는 내가 집중해서 고정적으로 일하는 베이스캠프가 필요했다. 지난 5년 공유 오피스, 집을 전전하며 일했던 아쉬움이 2% 있던터라, 조금 더 투자 해보기로 했다. 내 인생 처음 나 이외 용도가 없는 개인 작업실, 이제 어떤 시간에라도 내가 일하고 싶은 때 일에 집중하고, 회의실 스케줄링 눈치게임 안하고 회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또 아이들과도 도보 생활권이라 아이들에게 급한 일 생기면 내가 가볼 수 있고, 엄마작업실엔 엄마외에 방해할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도 엄마가 보고싶으면 문 두들겨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집착했던 회사, 4대 보험이 주는 안전감, 저절로 생기는 동료, 당연히 제공되었던 사무공간을 오롯이 내 수고와 비용으로 감당하게 되었다. 참 비싼 수고로움이자, 지난 20년 조직소속 강박을 생각하면 혁혁한 변화다. 회사의 테두리 안에서는 내게 할당된 일을 100%해낼 근로시간을 내게 허용할 수 없다.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조직 안에서 조직원으로 감당해줘야 할 파이는 잘게 쪼개져 있기에(직책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회사 바깥의 일까지 더 쪼개진다.) 그 일을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하려면 주 52 아니, 주 80시간이라 해도 근로시간은 당연히 모자라다. 그러니 매순간 일을 꽉차게 열심히 해도 항상 아쉽다. 내가 직접 하는 일의 만족의 수준 자체를 낮추는 것이 리더가 되는 첫걸음이다.


나는 더 멀리 더 깊은 호흡으로 일을 바라보고 제대로 일을 처리해보고 싶다. 사실 시간이 많다고 일을 더 제대로 깊이 있게 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제대로 일을 하는 시간을 들임에 있어, 회사 눈치 안보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더 쓰고 싶다. 예의가 없고, 고마움을 모르는 동료에게 마음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출퇴근으로 애써 그러모은 시간과 체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고, 아이 아프고 등원시켜야 할 때 궁색하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주2-3일 정도 장기 고정 파트너와 일하되, 나머지는 가족과 친구의 기쁘고 슬픈 순간을 함께 하고, 내가 집중하고 싶은 주제와 쓰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며 지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자유를 줘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 세뇌된 것인가 싶다. 방망이 값을 깎아달라는 손님에게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방망이를 재촉하는 손님에게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하면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는 노인의 까칠하고 따지는 것 많은 행태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인가 보다. 손님 속 타는 줄 모르고.

“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9.

나는 계약한 산출물을 제 때에 제출하고, 또 거의 제때 돈이 들어 온다. 거기엔 빨간펜이 없다. 돈은 감이 좋다. 들이는 비용에서 기대했던 득이 실하지 않을 때 계약은 갱신되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다음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지로 내 일이 어땠구나를 넘겨 짚고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할 뿐이다. 그 조차 확실한 가늠자가 되지는 못한다. 성과가 기대 이상이고 또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예산을 만들어 내는 것은 또 다른 힘이 드는 일이니, 그 계약 이후의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니 쫄건 없다. 그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풀타임 회사를 그만두고 일의 결과물로 커뮤니케이션 했던 5년은 내 일의 퀄리티 자체를 나도 진실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동료나 상사의 빨간펜이 애정이라는 것을 안 것도 이 시기이다. (물론 불필요하고, 본인의 빨간펜으로 본인의 존재감만을 과시하는 빨간펜도 있다) 내가 분담한 결과물이 프로젝트의 핏(fit)에 맞지 않거나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다음에 일을 안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지, 힘든 소리 하면서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더 이상 나의 일 결과물에 내 사정을 달지 않는다. 돌아보면 자기 자신에게는 좀 더 정확한 잣대가 있는게 일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일하는 동안, 나의 오롯한 일의 결과물을 물타기 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력도 더 하게 되었다. 또 출근, 회사에 다니는 데 대한  회사 ‘식구’된 도리에 대해서 가벼워졌다. 회사가 일 없는 내 계약을 늘려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받아야 할 금액 보다 더 해 주는 것은 없다. 나는 회사가 죽으나 사나 때되면 따박따박 먹여살리는 회사 식구가 아니다. 나는 계약서에 명시한 일을 계약한 시간까지하고, 그 댓가를 받는다. 처음 나와 일하게 되는 사람은 이렇게 계약서 쓰면 딱 자기 것만 하는 거 아니야, 일이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 저래서 일이 되겠어 걱정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이 투명한 관계는 내가 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한다. 이제는 내 이름이 거기 쓰여 있지 않아도 내가 했던 일이 나의 포트폴리오이니, 누가 봐도 끝까지 자랑스러운 결과물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실 프로젝트에 조인하면서 그 구성원과 일에 대한 소리 없는 충성은 누구보다도 더 지키고 있다. 조직 안에서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일을 했었으니, 남에게 잔소리 하려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잔소리를 뿜으면서, 나의 부족함을 흐리게 하기 위해, 나의 선한 의도를 내보이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수사를 덧붙였던가. 지금의 내가 차갑고 쌀쌀해 보일 수는 있어도, 어쩌면 이게 다 애정이며 신경씀이라고 잔소리와 부연설명 많던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함께 프로젝트로 일하는 회사와 동료에게 전보다 더 기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정한 게 중요한 세상이라는 데, 내 얕은 다정한 말보다, 나의 진심의 행동이 나의 결과물에 대한 신경씀이 시간이 오래 지나서라도 상대하게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방망이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 데 그냥 가져가겠다 재촉하고, 비싸다고 투정하는 손님에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내뱉는 방망이 깎던 노인의 방망이가 나중에 얼마나 요긴하고 귀한 물건인 지 알게 되고 주인공이 반성하는 그 대목처럼.

오래된 작업실 한 칸을 구해서 페인트칠 하고, 집기를 꾸리는 날, 걱정이 하나 두개 씩 올라왔다.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할까?” 작업실로 촉발된 질문이지만, 질문은 “그만해야겠다”고 결정한 이후, 내가 만들어온 변화 모두 해당되었다.  그 비싼 수고로움을 나는 왜?


방망이를 부탁하고 시간이 너무 걸리고, 비싸다고 짜증냈던 손님이 결국 방망이의 진가를 깨닫고 얼마 뒤 다시 찾아,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일하던 노인은 다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야기의 결말이 왠지 내겐 슬프다. 내 일의 라이프사이클 시기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려왔고, 방망이 깎던 노인스러운 선택을 해왔기 때문이리라. 방망이라는 아이템이 시대에 뒤쳐져서 일까. 혼자 일했기에 그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가 아파 못나오는 건지, 일하는 장소를 옮겼는지, 연락처를 알 길도 없이 사라진 그 노인.


노인의 방망이와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그 노인처럼 혼자이다가없어지기는 싫다. 나는 동료와 함께 일하고, 손님에게 친절할 거다. 나는 손님이 물건을 못알아 본다고 구박만 하지 않고, 좋은 방망이를 아직 못 써 본 사람이라면 세상에 좋은 방망이가 뭔지 알려주기도 하고, 실제로 얼마나 괜찮은지 샘플도 보여줘야겠다. 내 방망이가 취향에 안맞는 다면 다른 곳에 어떤 추천 방망이 가 있는지도 알려줘야겠다. 하나의 방법으로 고집스럽기보다, 방망이를 계속 깎되 새로운 방망이 깎는 법도 연구하고, 혼자 잘 못하는 부분은 잘하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콜라보도 할 거다.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안하는 값, 자유의 값이 내가 치러야 할 수고와 비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수고와 비용은 나 혼자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손님에게 방망이 안판다고, 딴데가서 사라며 연신 방망이 팔기 싫다는 노인을 어쨌건 손님은 기다려 값을 치르고 방망이를 받았다. 방망이를 부탁하고 시간이 너무 걸리고, 비싸다고 짜증냈던 손님이지만, 그런 손님이 있었기에 결국 노인은 그 방망이를 깎을 수 있었고, 손님은 방망이의 진가를 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 손님이 나에겐 노인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이자 동료 같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와야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 수 록 화증이났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간을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방망이 깎던 노인, 윤오영]


최근 ‘방망이 깎던 노인‘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손님의 요청이 들어와서 방망이를 깎는 것이지만, 그 방망이를 깎겠다는 결심이 노인에게도 있어 방망이를 깎을 수 있었구나 새삼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 읽었던 노인이 내게 ’일의 제대로‘를 가르쳤다면, 세 번째 읽은 노인은 내게 ’일은 너의 자유의지‘임을 가르쳐 줬다. 일의 과정과 결과물이 그 일이 되도록 함께 만든 사람이나, 누리는 사람 모두에게 소중한 오래오래 요긴한 일을 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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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황다은작가님과 함께한 글쓰기 워크샵을 통해 쓴 글이다. 작가님의 글 구성 수업 덕분에 모든 이야기들 중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서사만 가져와서 글을 쓰는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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