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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Oct 09. 2021

함께 일하며,  내 에너지를 잃지 않는 법

워크보트와 세일즈보트의 경험으로

Photo ©OCEANA/Cristobal Diaz



어떻게 협력해야 하나. 일단 협력해서 플러스가 되었던 경험이 있어야 연대의 의지도 생기는 법. 해보자 하고, 지난 5월 글을 쓰고 함께 생각하는 워크보트를 시작했다. 얼마 후 동기는 약간 달랐으나, 넷이 함께 모여 물건을 파는 세일즈보트도 시작했다.


워크보트는 연대와 협력 관련해서 한 달에 한 편 글을 쓰고, 한 번 만나서 밥 먹고 합평한다. 중간에 줌 번개를 해서, 서로를 지지한다. 뭔가 에너지가 더 생기면 활동을 도모해 볼 수도 있다. 혼자 시작해도 되지만, 혼자가 아닌 누가 한 명 더 중심을 같이 잡을 수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마음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작하는 한 사람만 신중히 초대해 합을 맞추었다. 두 사람이 보트 빌더로 운영을 책임감 있게 하기로 하고, SNS에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선원 모집 공고를 냈다. 함께 합평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꿈꾸었다. 


세일즈보트는 연대와 협력을 위해서 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물건을 팔아보고 싶은 마음이 전부터 굴뚝같았기에 벌린 프로젝트이다. 늘 컴퓨터 앞에서만 일하고 머리와 손가락으로만 보고서를 쓰는 일을 하기에, 생각이 아닌 만져지는 물건(tangible things)으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안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 하기에는 통 엄두가 안 나고, 팔긴 팔겠지만 ‘잘’ 팔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일을 잘하기 위해 함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워크보트와 세일즈보트가 2021년 봄 얼마의 기간을 두고 출항했다. ‘투게더’에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변화를 만드는 연대와 협력을 위해, 잘 형성된 커뮤니티에 낮은 진입장벽과 ‘들고 남’의 자유가 가져오는 사회적 이득을 이야기하며 열린 커뮤니티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건 대인배나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소인배 쫄보같은 나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에서라도 연대와 협력의 유효성을 일단 충분히 느끼고 싶었다. 두 보트 모두 정원이 4-6명.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결심과 마인드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봄, 여름을 오롯이 보내고, 계절이 두 번 바뀌는 시작에 있다.


두 보트를 호핑(hopping) 하고 있는 나는 두 보트 모두 연대와 협력이 보트의 중요한 순항 요소이지만, 이를 풀어 가는 방식이 많이 다름을 느낀다. 개인의 마음가짐 문제는 아니다. 항상 배에 승선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보트의 선원임을 생각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아마 나뿐 만 아니라, 선원 모두 그럴 거다. 우리의 프로젝트를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연대의 마음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을까라는 마음은 두 보트의 선원 모두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이야기를 위해, 아직 진행형인 두 보트를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보자.


함께 모여 각자의 글을 쓰는 워크보트

서로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일단 글이라는 작업물은 최종적으로 혼자 내야 하는 것이므로, 함께하는 멤버가 누구여야 하는지는 많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는 선원을 모집할 때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성실한 태도와 필력을 가진 사람이 오면 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단지 등 떠밀어서가 아닌 원하는 사람이 같이 하길 바랐다.  불특정 다수라지만, 개인 SNS에 공고 글을 올렸기에, 연결된 친구와, 친구의 친구 정도에 모집 소식이 갔고, 사람들이 마음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다. 최종 5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사람을 모아서 활동을 꾸리는 데에는 에너지가 들지만,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 글 한편 쓰고 만나는 조율이야 이제껏 해온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정도 로드야 한 10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슨한 구조의 커뮤니티로 처음부터 마음먹고 할 수 있을 만큼만 꾸렸다.


함께 모여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싶은 세일즈보트

세일즈 보트는 함께 해내야 하는 목적이 있어, 멤버 선정에 신중했다. 이전에 자원활동으로 물건을 팔아본 경험을 복기해 보고, 함께 일하는 데에 어려운 요소는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원을 받기보다, 고르고 골라 선원을 섭외했다. 어디에 써 놓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선원을 모은 나름의 기준 아래 정도 되는 것 같다.     

돈 오고 가도 괜찮을 것 같고 (신뢰가 있고),

물건 잘 팔 거 같고(운영 능력 있고),

취향이 좋고(콘텐츠 역량 있고),

착하고 (성의 있고 성실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이 말은 나랑 성격이 맞을 것 같고, 또는 나의 장점을 충분히 알아주고-appreciation 해주고-로 해석되는 것 같다. 흐흐)

제안에 응한 4명이 모였다. 나는 선원 각각을 알고 있었으나, 나머지 3명은 서로 몰랐던 사이. 그럼에도 함께 하자고 첫 만남에 손을 포겠고, 비즈니스는 시작되었다. 작은 시도이긴 하지만, 돈을 버는 일(work)로 생각했기에, 내 시간을 쓸 마음, 내 돈을 쓸 마음, 그리고 하자고 운 띄운 사람으로 조금 더 애쓸 마음은 이미 장전되어 있었다.



워크보트, 세일즈보트 모두 조율에 생각보다 에너지가 들어가기는 한다. 여럿이 하는 데, 내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니, 내 생각대로 최적화된 운영보다는 에너지가 더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걸 감안하면, 함께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자신의 예상보다는 조금 높게 잡은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세일즈보트는 그냥 조금 더 에너지를 높게 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러기에 오늘은 함께 하기 위해 에너지의 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일즈보트의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한다. 

글의 이해를 위해 아직 못 들어 보신 분들은 뭔지 함 보세요. 세일즈보트 


세일즈보트는 각자 하는 일의 경계는 있을 수 있으나, 공동의 성과가 요구되는 프로젝트이다. 우리가 합의한 목표 ‘좋은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자’의 성과는 직접적으로는 영업매출, 길게 보면 브랜드 이미지가 될 수 있겠다. 그러기에, 각 선원의 활동 결과값을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뭉친다고 해서 세일즈보트의 성과가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선원들은 사업을 위해 서로 조화로운 역할을 하고, 결과값도 그러한 역할의 화학작용으로 나와야 했다. 선원들도 알았다. 세일즈보트를 통해 나오는 성과는 일한 개인별로 간명히 구분되지 않고,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같은 맥락으로, 함께 조율하지 않은 개인의 활동을 세일즈보트 전체의 한 부분으로 온전히 인정할 수 없기도/않기도 했다. 즉, 이만 큼은 나의 공이니까, 매출의 몇 % 는 나의 기여야, 브랜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 가장 적은 기여를 한 사람은 누구야,라고 오려 낼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작업과 활동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일을 함에 있어 당근(세일즈보트에 대한 기여. 즉, 체감되는 인정)이 불분명하고, 채찍질(기여가 적은 부분에 대한 강제)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 만족하고, 능동적으로 한 배에서 생산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을까. 선원들은 당연히 성과를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모두가 열심히 할 테니까) 또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평함에 쫌생이 같은 나는 혹시! 만약에 아니면 어쩌지?라는 고민과 의구심에 몇 가지를 제안했다.  


함께 하는 과정에서 소외당하거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불공평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어야 될 거다. 그러려면 어째야 하지? 협력의 바이블 같은 책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연구자 요차이 벤클러는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있는지, 내가 그룹에서 합리적인 사람인지 자꾸 돌아보지 않도록 하는 것, 커뮤니티 안에서 신뢰와 안전감을 달성하는 것이 협력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빌어, 나는 세일즈 보트가 시작할 때 세 가지 원칙을 만들자고 선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의사결정, 지위는 모두 동등하다. 각종 사안은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 (숨은 생각) 느려도 합의하고 간다. 실질적 동등함을 이룬다.

수익은 똑같이 나눈다는 전제하에 하고 싶은 만큼 일한다. 단, 경험은 한 만큼 가져간다.
(경험은 정말 소중한 자원이니 결국 공평한 것!)
→ (숨은 생각) 자기가 더 많이 하고, 더 잘한 것에 대한 불필요한 눈치 싸움이 없었으면 했다.

2년 간은 각자 돈이든 노동력이든 월 50만 원 정도씩 투자하고, 돈은 2년 후부터 인당 월 50 벌면 만족하기로 하자.
→ (숨은 생각) 물가 상승으로 좀 목표가 오를 수도 있지만 보트에서 나오는 수익이 주 소득원이 되면 서로 의사결정에 첨예하게 대립할 수 도있고, 관계가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부담 없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선을 찾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이런 개인적인 다짐을 했다.


이미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힘들어 봤다. 다른 사람 원망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할 수 있다. 손해 볼 수 있다. 그런다 해도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 당신이 얼마나 거지 같았는지 상대방은 모를 수도 있다. (최근에 누가 그랬다. 세상에 자신이 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o_o ) 세일즈보트 안에서 나는 내게 충족감을 줄 수 있는 일을 잘 파악해서, 충분히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돈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분으로 나의 활동에 대한 인정을 의식하거나, 위축시키지 말자. 그러니, 덜하는 사람 탓하지 말자. 결과적으로 내가 더 할 수 있다. 그러니 퍼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하자. 이렇게 하면 서로 욕심내지 않고,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갖지도 않을 수 있겠다.  그러면 이것도 워크보트처럼 한 10년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고작 여름 한 계절을 지난 프로젝트가 어렵다.


에너지가 든다.


10년이 갈까 싶다.


왜 그럴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선원 개개인은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일 수 없기 때문에 답이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천하의 인복 어쩔 건가!) 선원으로 내 느낌을 써본다. 내가 좀 더 예민할 수 있으나, 선원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배의 방향키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누가 방향키를 잡는 게 맞을 까? 내가 하기는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나와 살짝 방향타가 안 맞는 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어차피 내 권한이 아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모두가 동등한 지금은 오히려 신경이 더 쓰인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나 맡은 일 먼저 욕 안 먹게 하자. 갑판 닦고, 연료 넣고, 식사 준비하고, 돛 달고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배가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아. 기운 빠진다.

(얼마 후)

좀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니다. 차라리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느낌은 괜찮은 거였다. 배가 산으로 가면 모두 열심히 하기라도 한다는 뜻, 다시 물 쪽으로 방향을 가다듬으면 되겠다. 우리 배는 이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거 같다.  힘들면 가만히 있어도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배일 줄 알았는데, 이제는 힘들여 내가 노를 저어도 별 꿈적 않는 것 같다. 목적지로 생각했던 곳과 방향도 좀 틀어진 거 같다.

나는 어째야 하나.


출항 4개월째, 4명이 함께 해서 매출 4배를 기대했던 세일즈 보트의 일은 4인분의 고민(골치 4?!) 안고, 최저속력으로 가고 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왠지 스트레스인 세일즈보트를 여름 한철 장사가 끝나고 한 동안 그냥 두었다. 뭔지 모르겠을 땐 굳이 어쩌지 말고, 내려놓고 시간을 좀 두는 것도 좋은 방법. 나는 몇 주 그냥 세일즈보트를 쉬었다(사실 뭐 할 때 이래 보기는 처음이다). 어차피 뭐라 할 사람도 없다. 2021년도 이제 4/4 분기를 시작할 참. 내려 놓으니, 느슨해지게도 되고, 또 왜 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도 된다.


지금 짚어지는 단어는


‘다르다.’


이렇게 포용성 있는(?) 내게, 다른 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하지만 다르다의 문제는 내가 제대로 된 작업(work)에 힘써서 결과-성공이든, 실패든-를 봤다는 충족감이 오기도 전에 나를 덮쳐서, 일하는 데에 힘을 못쓰게(일하기 싫게) 기운을 뺀다.


아무리 우리의 취향과 능력과, 선함과 신뢰 모든 것을 서로 높이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기질과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앞으로도 그럴 거다. 풀고 싶은 사회문제는 같아도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고, 사업의 지향은 같은 방향일 수 있으나, 목표로 하는 지점과 속도는 다르다. 아마 세상에 빨간약, 파란약 두 가지 길만 있다면 우리는 같은 색의 약을 선택했을 테지만, 약간의 다름이 만드는 길의 갈래 조합을 살펴보면 우리는 서로 겹치지 않는 73억 갈래의 길 중 하나를 가고 있는 일 것이다.


우.리.는.하.나.같.이. 다.르.다.


기계적인 협력일 때에는 내가 협력을 잘하는 사람 같았다.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때 욕먹을 수도 있고(기분은 나쁘지만), 가끔은 한 것도 없는데 박수받을 때도 있다(기분은 좋다) 기분 나쁠 때, 좋을 때 둘 다 더러 있으니, 쌤쌤 아닌가. 그러니 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은 협력의 성과에 대한 내 기대가 적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협력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가 어차피 각자 할 만큼 하고, 그 합만 더해 총합을 내면 될 때는 괜찮다. 그러나 진짜 내가 원하는 결과가 있을 때, 원하는 성과가 부분의 합 이상이 되어야 할 때, 우리는 함께 ‘존재’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전과 달리 ‘함께’에 더 기대게 되고, 기대하게 되며, 더 조바심을 낸다.


그래서 커뮤니티 안에서 성과를 위해 마음과 몸을 내 성의껏 움직여 본다. 그런데 티도 안 날 때가 많다. 또,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뭔가 하면 할수록 나와 다른 결의 멤버의 행동들은 더 거슬린다. 이심전심으로 공동의 프로젝트를 같은 우선순위에 두고, 함께 일을 하고 활동을 해야 공동의 결과물이 나올 텐데, 서로의 우선순위는 다르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괜찮은 건가를 커뮤니티 안에서 나의 위치와 적절한 역할을 감지하느라 에너지를 먼저 다 쓰고는 정작 진짜 일하는 데 쓰는 에너지는 소진된다.  


지난 몇 주 내려놓았지만 내려놓지 못한 시간 속에서 찾은 한 가지가 있다면, 왜 세일즈보트(결국 다른 존재와의 연대와 협력)를 하고자 하는가? 에 대한 목적을 잘못 생각했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장점에 대한 기대와 서로에 대한 애정만으로 뭉쳐서 일하기는 힘들다. 거기에는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는 하고 싶은데, 그런 노력에 힘쓰기 싫으면 사장님이 되어서 자기 방식대로 일해줄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월급 주며 일시키든지, 월급 주는 회사에 취직해서 조직원으로서 많은 사람과 일하면 된다. 회사에서 출근하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에는 퍼포먼스도 있겠지만, 나에게 월급을 주고 아래 내용을 윤리적인 범위 내에서 아래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산다.

   "OO을 우선순위 놓고 어떤 방식으로 일해 주시고, 회사하고 커뮤니케이션 할 땐 OOO방식을 써주세요. 우리 회사의 문화는 OOOOOOOO 이렇습니다."

회사는 월급을 주는 대신 회사는 위의 내용을 요구하고, 사람들은 그 말을 기꺼이 따른다. 그러면 성과급은 몰라도 따박따박 월급은 받는다.


그런데 서로 동등한 연대와 협력으로 모인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다른 서로를 강제하지 않고, 강제할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함께 일할 수 있을까? 함께 일하는 게 맞을까?

어떻게 함께 일 할까를 궁리하기 이전에, 함께 일하고 싶을까?

왜 함께 일(연대와 협력)을 하고 싶을까?


왜를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일에 같이 하면 힘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같이 하는 사람 수만큼 일이 더 빠르게 더 많이 잘 될 것 같아서 였다. 그런데 그게 세일즈보트(연대와 협력)를 하는 첫 이유가 되면 안 되었었다. (그거슨 shouldn’t have p.p 였던 것이다. o_o) 하다 보면 그러한 효과가 사이드로 올 수 있다. 서로 다른 강점과 약점, 장단점을 가진 다른 우리가 만났으므로 연대와 협력이 잘 돌아가면 결국엔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빠르게, 더 잘'이 첫 이유가 되어서는 '다른 존재들'과 연대와 협력을 하면서 나타나는 '속력 안남'과 애매함에서 오는 '속 터짐' 또는 뜻 모를 '압박감'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 왜 이렇게 다른 존재와 일하고자 하며, 어떻게 일 할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함께 일하며,  내 에너지를 잃지 않는 법은 무엇일까?


우연히 이러한 상황의 나에게 힌트를 준 책이 있다. 리처드 세넷의 ‘도시: 짓고 거주하기’ 책은 도시에서 함께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여러 인종들이 모여 빵을 만드는 보스턴의 한 빵집을 예로 든다. 그 빵집에는 라틴계, 아프리카계, 그리스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일한다. 이곳에서 한 그리스인 제빵사가 제대로 구워지지 않아 검게 그을린 바게트 하나를 가리키며 마치 쿠바 사람 색깔 같다고 했을 때, 빵을 사다 이를 듣게 된 세넷교수는 당황과 불쾌감을 꼈다. 그런데 빵을 만드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말에 신경 쓰지 않더라는 것을 인상적으로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문득 나는 ‘다르다, 다양한 것을 포용한다’고 하면서, 막상은 이미 어렵다, 저건 아니지라고 판단하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다른 것 사이의 우열을 가려 놓은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가 있더라도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려고 노력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늘 나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돌기로 오돌도돌 느끼며(distinguish) 살아오진 않았나 싶다.


세넷교수가 말하는 무관심이란 애정이 없는 관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함께 하고 있는 작업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구분 짓고 경계하거나, '다름'을 표현하기를 절제하거나,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일부러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관계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게 신경 쓰고, 다르다는 것에 솔직해도 좋은 것. 달라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 감정에 담백한것. 결국 몇십 년을 알아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진짜 맞는 말, 다름을 포용한다면서 양보라고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해선 안 되었다. 인간은 누구도 동일하지 않다. 그걸 감추고, 괜찮은 듯, 이번엔 내가 양보하지 하고 이해하는 듯 굴면, 아니 나는 왜 맨날 그래야 해?라는 더 큰 폭풍이 분다.


담백하고 솔직해지자.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면 그게 사랑스러워 보일 만큼 거리를 두되, 더디더라도 함께 일하는 작업을 놓지는 않는 것. 이 필요하다. (알겠다. 하지만 세일즈보트는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까?라는 확신은 아직 없다. o_o) 타인과의 연대와 협력이 흥미진진 설레려면, 그 첫번 째 할 일은 함께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내려놓기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동네동료의 말처럼 우리는 정신 승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노력에 에너지를 잃지 않는 법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다름을 같음으로 아스팔트 길 다지듯 똑같이 레벨링(leveling) 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겠다.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 다름을 진짜 받아들인다’는 말의 줄임말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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