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리골드 Feb 22. 2022

5년 만에 맞선을 봤다.

내가 처음 맞선을 본 건 30대 초반이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누구와 만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소개팅과 맞선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으며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났던 것 같다.

그 후 몇 번의 맞선을 더 봤는데 두세 번의 만남을 더하는 정도에서 끝났었다.

맞선이라는 특성상 결혼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고, 부모님들께 오픈된 만남이라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져 깊은 관계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넘어가자 맞선이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나이가 꽤 많이 들었다는 걸 실감했다. 작년에 두 번의 맞선 제의가 들어왔지만 만남까지는 이어지지 못했고, 새해가 시작되 맞선이 성사되었다.

5년 만에 보는 맞선이었다.

40대가 되어 처음 보는 맞선이라 뭔가 다르진 않을까 싶었는데 이전과 같았다.

상대방이 먼저 전화로 연락했고, 어색하게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짧게 통화하고 만남을 정했다.


약속 당일이 되었고, 날씨가 많이 추워서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준비하고 갔더니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맞선남에게 연락하니 이번에 버스 내린다고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에 내린다고 해서 금방 올 줄 알았는데 약속 시간보다 10분 넘게 늦었다.  

그런데 카페에 도착해 커피를 시키자마자 화장실에 간다고 하더니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도 좀 지나서야 담배 냄새를 풍기며 자리에 왔다.

많은 맞선을 본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대화 시작을 하기 위해 20분을 넘게 기다린 셈이다. 시작부터 유쾌하지 않았다.

나이와 사는 곳, 직업 정도만 알고 만난 거라 서로의 기본 정보가 많이 없어서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의 몇 가지 질문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는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다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빌라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이 부분은 선보기 전에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봐서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는 회사 관련 이야기였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종인지와 함께 규모를 물어보았다. 어떤 업종인지까지는 궁금할 수도 있는데 직원 수까지 물어봐서 다시 한번 당황했다. 그리고 나의 재직 년 수를 확인하더니 퇴직금이 많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청약 관련 이야기였다.

청약 가입 유무와 함께 점수를 물어보았다.

물론, 맞선이다 보니 조건이 중요하다. 하지만 첫 만남에 이런 노골적인 질문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첫 만남인만큼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며 나도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나의 취미가 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다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며 또, 담배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그 사람이 나에게 묻고 싶던 질문은 끝난 것 같고, 나는 그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 얼마 후 일어났다.

시작부터 유쾌하지 않았던 만남은 끝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내가 5년 만에 본 맞선이라 요즘 트렌드를 몰라서 이렇게 느낀 걸까?

나에 대한 노골적인 질문들은 개인 성향이 다르니 그렇다 쳐도 약속 시간도 늦었는데 1시간 좀 넘는 시간에 2번이나 담배 피우러 다녀온 건 매너가 아닌 것 같다.

'혹시나'하고 나갔던 5년 만의 맞선은 '역시나'로 씁쓸하게 끝났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 마음만 더 추워졌다.

작가의 이전글 연말 앓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