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온 이유
아프리카나 다른 외국에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남의 눈치보지 않고 사회적 기준에 맞추지 않고 내가 원하는대로 나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였다.
최근에 내가 아는 사람에게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다.
한국이 사회적인 획일성의 정도가 높은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 획일성이 향하는 방향이 내 가치관이나 내 성향과는 상극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 스스로를 한국 사회에 잘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 동일하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감이 멀어져서 그런걸까? 나는 그 한국의 기준을 내면화하는 것은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니까 사회의 주류 분위기를 무시하고 섬처럼 살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가치체계 안으로 내면화하기까지는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취사선택하면서 내가 취하고 싶은 것은 취하고 아닌 것은 쳐내면서(솔직히 말하면 무시하면서) 살 수 있다면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사회의 주류 분위기를 넌지시 강요하더라도 넌 그래라, 난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비교적 쉬운 사람이기 때문에, 나로서 살기 위해 외국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때문에 파견기간을 더 연장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디 살고 싶은가?
일단 연장하지 않고 파견기간 종료 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쉬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사한 일이 많았지만, 어렵고 많은 업무와 열악한 삶의 환경, 완전히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현지동료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로 많이 지쳤다. 나는 이정도로 지친 줄은 몰랐는데 많이 지쳐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련의 신호들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디에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내 생각도, 지금 마음 같아서는 한국이다.
열악한 삶의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모든 게 열악하다. 오래 있는다고 그것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아니었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참았던 것이었고 그게 쌓여왔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더 참기 어려웠다. 나는 그것을 더 견디기에는 내가 마음이 병이 날 것 같다. 번아웃이나 우울증 뭐 그런 병들이겠지.
반대로 왜 이곳에 왔어? 를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이 이 곳에 계시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도 여기 온 게 왜 왔는지는 너무 명확하다. 그게 흐려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정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연장 없이, 원래의 기간인 내년 말까지만 있다가 귀국하기로 거의 마음을 먹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도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여전히 내년 1년이 더 남았다. 작년, 올해까지 2년을 지나왔다. 지나온 만큼의 절반만 더 지나면 정말 이 파견기간은 끝난다. 남은 1년을 잘 지낼 수 있도록. 진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그것을 목표로 잡아본다.
수고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지금까지의 2년이 조금이라도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