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선비와 망나니 사이에서

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by 마림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야구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보는 것을 좋아한다.


계기는 단순했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LG 트윈스 매거진 같은 것을 구독해 주셨다. 트윈스 선수들의 포토 카드, 잡지, 유니폼 등이 매달 집으로 배달되었다. 90년대는 줄무늬 유니폼과 신바람 야구로 LG 트윈스가 인기가 절정에 있을 때였다. 야구를 잘 몰랐지만, 이병규, 유지현, 이상훈 등 스타플레이어들과 서울을 홈으로 쓰는 LG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 단순한 기억은 20살 야구장 직관으로 이어졌다.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 시간은 많지만 정작 할 게 없는 20살 청춘에 발걸음은 잠실을 향했다. 야구장은 그야말로 청춘이었다. 신나는 응원가, 맥주, 스포츠, 승리. 청춘을 누리기에 완벽한 콜로세움이었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렇게 LG 트윈스의 팬이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때는 지독한 암흑기의 가운데였다.


일명 '칠쥐' 'DTD'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었다. '칠쥐'는 만년 7등인 엘지트윈스를 '쥐'와 결합하여 비하하는 별명이었고, 'DTD'는 'Down team is down.'의 약자로 초반에만 성적이 좋고 결국 떨어지는 엘지의 성적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한 번 결정한 팀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2009년부터 이어진 LG에 대한 나의 사랑은 2023년이 되어서야 꽃을 피웠다.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무려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운이 좋게 예매한 한국시리즈 결승에서 우승을 확정 지었다. 내 생에 다시 볼 수는 있을까 하던 LG 트윈스의 우승을 보며, 내 청춘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내 삶도 암흑기를 지나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처럼 꽃 피울 수 있겠지.'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다운로드.jpg 출처 : 네이버 뉴스


2년 뒤, LG 트윈스는 다시 한번 통합 우승을 하게 되었다. '왕조'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한 번 강해진 팀은 당분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은 디펜딩 챔피언 LG의 좋은 성적을 예상하였다. 선발, 불펜, 야수 모두 고르게 좋은 전력을 가졌다는 평. 아직 2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LG는 그 2경기를 전패하고 말았다. 단순히 패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에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좋았던 멤버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보수적인 라인업, 투수들의 컨디션 관리 실패, 부족한 포지션 보강 실패. 강팀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LG 트윈스 팬으로 알려진 김은희 작가님도 이런 말을 하셨다. LG 트윈스가 못 할 때마다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을 한 명씩 죽이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푸셨다나. 대작 <킹덤>이 탄생한 공은, 어찌 보면 LG 트윈스의 답답한 경기력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야구를 보다 보면, 김은희 작가님이 하셨던 말씀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시즌은 144경기야.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거지. 선수들도 오죽 답답하겠어. 다시 궤도에 올라오겠지.


그러다가도 갑자기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승? 우승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또 볼넷이야? 지겹다. 지겨워.


선비와 망나니를 왔다 갔다 하는 나의 신분은 야구 때문일까. 나의 인성 때문일까 의심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오늘도 야구를 튼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인생에서 내가 승리하는 경험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며 승리하는 느낌을 간접 체험한다. 야구의 그 짧은 마디마디마다 희비가 교차한다. 긴장과 이완, 전세역전, 집중. 그게 바로 야구의 묘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인생도 야구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번 시즌 LG 트윈스가 우승하지 않아도 좋다.


지면 짜증이 나고,
또 기대하고,
또 실망한다.


나는 여전히
선비와 망나니를 오간다.


그래도
오늘도 야구를 튼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