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보내는 편지
# H에게
10년을 넘게 미워하고 증오했다.
그토록 짙었던 감정은 어느새 연기처럼 옅어졌고,
그 감정의 이유조차 헷갈릴 즈음,
언제나처럼 그는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자. 불편하게 지낸 세월이 이제 점점 아쉬워져. 너와 나 사이의 친구들이, 우리 사이를 도와주기는커녕, 우리에게 독이 되었던 것 같아. 그동안 진심 어린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했네. 이제라도 우리 소주 한잔 마시면서 가깝게 지내자. 훈아."
"그래. 그러자. 나도 왜 그렇게 너한테 속 좁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다음 주에 시간 돼? 둘이 소주 한잔 하자. 아니면 연호랑 같이 봐도 괜찮고."
"다음 주는 내가 좀 바빠서. 다음 달에 내가 먼저 연락할게."
"응. 알겠어. 꼭 연락 줘."
그렇게 그와의 화해를 다짐하고는, 언제나처럼 회피했다.
내 마음을 조금 연 것으로 대단한 아량을 베푼 것 마냥.
그렇게 화해의 다짐을 하고,
그를 다시 만난 건 그의 장례식장이었다.
십 년 넘게 미워했던 그 이름, H.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그의 웃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그의 사진 속 웃음이 여전히 선명했다. 언제나 듬직하고, 자신감 넘치던 그 표정 그대로였다.
하얀 국화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 옆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울고 있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내가 울 자격이 있을까.
그를 밀어내고, 외면하고, 끝내 만나지 않았던 내가.
그녀가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결국 끝까지 함께였다.
영정 앞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밀려왔다.
운동장에서 함께 뛰던 햇살, 땀에 젖은 웃음,
그리고 내가 끝내 지우지 못한 이름, H.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것은,
결국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던 마음이었다는 걸.
이 편지는,
그에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쓴다.
H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