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밝은 달 같이 따수운 분께 드리는 선물
아직 만난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저는 당신을 온 마음 다해 존중합니다.
제가 드리는 따뜻함을 알아봐 주시고 그대로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쫑알쫑알 많은 질문에 진심을 담아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마음을 당신이 좋아하는 달로 그려드려요.
이 달은 당신을 위한 그림이지만 저에게 특히 더 특별한 그림입니다.
첫 번째 유화 그림이기도 하고, 첫 번째 추상화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하루 만에 완성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처음 그리는 선물이 첫 유화 작품이라 더 설렜습니다.
그림은 지난 초여름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다양한 재료를 많이 접해보진 못했습니다. 아크릴이나 수채화 물감 정도만 사용해봤어요. 이제는 제가 그림에 적응한 게 보였는지 화실 선생님께서 다음 그림에는 유화물감을 사용해보자고 하셨어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아크릴 물감은 너무 빠르게 마릅니다. 물감을 쓰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을 정도거든요. 빨리 마르는 게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써 여러 색을 섞어 만든 마음에 쏙 드는 오묘한 색이 너무 빨리 말라버리면 상당히 열 받습니다. 다시 그 색을 만드는 데 한참이 걸리거나 아예 못 만들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유화는 하루 종일 마르지 않아요. 다 마르려면 2주나 걸린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물감 마를 걱정을 안 한 건 처음이었어요. 덕분에 고심해서 예쁘게 만든 저만의 색을 쓰고 싶을 때마다 쓰고 싶은 만큼 두고두고 다 썼어요. 남기는 물감 한 방울 없이 슥슥 모두 사용했습니다.
유화의 질감도 정말 매력 있습니다. 녹은 립스틱을 펴 바르는 느낌이에요. 얇게 발라도, 두껍게 얹어도 유화의 매력이 묻어납니다. 붓 터치의 질감이나 물감 덩어리의 양감도 표현할 수 있어요. 평면적이기도 하고 입체적이기도 해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대단한 재료입니다. 제가 드리는 달에도 저의 고민이 남긴 붓 자국이 보여요.
이 달은 저만의 달입니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기만 했습니다. 마음대로 그린다는 건 아직 제가 할 수준이 아니었거든요. 보고 비슷하게 그리기도 아직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이번 달도 다른 사람이 그려놓은 유화 그림이 있다면 따라 그릴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환한 보름달을 표현한 그림을 찾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 마음대로 그리게 됐습니다. 실제 달 사진만 보고 명암만 신경 써서 쓰고 싶은 색으로 저의 달을 그렸습니다.
사실 저는 달을 그린 보라색과 파란색보다는 초록색과 베이지색을 좋아합니다. 신비와 몽환보다는 편안과 단정을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달을 떠올리면 안개에 싸인 동화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보라색과 파란색, 그리고 파란색에 초록색을 살짝 곁들인 색을 나란히 사용했어요. 달에서 가장 밝은 명부는 우주에 사는 어린왕자가 떠오르는 노란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유화 물감은 덩어리가 커서 아무래도 날렵한 표현은 어렵더라고요. 아직 서툴러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아무튼 배경과 달의 색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린다고 그렸는데도 테두리가 울퉁불퉁해졌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편안하고 몽글몽글한 달이 태어났어요. 어울리는 동화책이 있다면 삽화로 넣고 싶은 달님입니다.
우주 배경은 검은색에 푸른색을 섞어 칠했습니다. 너무 칙칙하지도, 쨍하지도 않은 적절한 채도이길 바랐습니다. 다행히 원하는 우주가 표현되었어요. 마무리로 별까지 뿌려주니 그럴듯한 우주의 달이 완성됐습니다.
몰입은 이번 그림이 특별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림은 제가 무얼 좋아하는지 찾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좋아함의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요. 그저 좋아한다는 건 몰입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습니다. 그런 중 처음 접한 취미가 그림이었어요. 어릴 때 아주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집중해서 즐겁게 그렸던 기억이 있거든요.
하지만 남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데만 집중해서 그런지 어릴 때와는 다르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잡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림에는 푹 빠지기 힘들구나, 그만둘까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을 만드는 데 처음으로 몰입의 경험을 했습니다. 저만의 색을 고르고, 섞고, 칠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았어요. 붓을 놓을 때까지 온전히 그림만 그렸습니다. 완성하고 나니 엄청나게 허기지더라고요. 손이 달달 떨렸습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푹 빠져있었습니다.
창작이 온전한 나를 표현하는 정말 좋은 수단이구나,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 마음을 더 세세히 표현할 수 있도록 더 익히고 싶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그림을 좋아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 마음이 그대로 담겨 당신께 닿길 바라며, 생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