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질 테지만
<ㅇ년 전 오늘> 팝업을 무심코 눌렀다가 예상치 못한 그리움을 마주하고 눈물을 쏟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매번 같은 함정에 속아 넘어가는 실험실 쥐처럼, 또 무심히 팝업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잊으려고 노력해 본 일은 없다.
그러나 그리운 것은 모두 지나간 시간 뒤편에 있으므로, 시간을 되돌아보는 일은 곧 그리움을 매만지는 일이 된다.
고양이를 보내고 일여 년 만에, 어쩌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영혼을 보내고서 불쑥 뱉은 생각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존재들을 자꾸만 데리고 가 버리셔.>
서운함도 유감도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정말 거짓말이야.
하나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고.
그 뻔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이제 서럽게 서럽게 운다.
어쩌다가 시간 뒤에 두고 온 존재들이 이렇게 많아져버렸을까.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먼젓번의 죽음들을 반추하고 곱씹는다.
멈춰있는 그들의 시간도.
겨우 열여덟에 떨어져 죽어버린 내 동기.
오빠가 가슴에 묻어 둔 친구.
새신부와 갓난쟁이만 두고서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동창.
그리고 이제는 영원히 서른둘에 머물러 있을.. 너.
아이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진 두 장을 매만지며,
여기 내가 사랑하는, 그러나 이젠 없는 존재들이 한자리에 다 있네, 하고 되뇌다
문득 스크롤 위로 환히 웃는 엄마 사진도 본다.
때가 되면 이 역시 상실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존재들은 본질적으로는 모두 죽어가는 존재들이다.
다만 그 때가 급작스러웠던 것이고.
...하지만 언제 마주하더라도, 준비된 때는 없을 것이라는 걸, 언제나 때는 이토록 급작스러울 것이라는 것도 안다.
결국 모두 이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인 게다.
그러니 생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낀 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삶이 아직 나에겐 남아있으므로, 그저 살아가는 일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