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깊은 생각 (이상준의 CEO 수필집)
2009년도 가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제품 개발 회의가 있었다.
나는 신제품 기획안을 제출했고,
그 기획안은 채택되어 한껏 기분이 좋았는데,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아 채택된 신제품을 몇 주째 시작 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나 회사 후배 한 명이 캔커피를 가지고 와서
내게 내밀며 말했다.
"팀장님 며칠 전에 발표한 기획안 있잖아요? 그거 제가 한번 추진해도 될까요?"
사실 내 아이디어를 건드리겠다는 말이 썩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그래..... 뭐...... 누가 하면 어때? 김 팀장이 한번 해봐........"
"팀장님이 혹시라도 기분 나쁘시거나, 뒤통수 친다는 느낌이라면 안 할게요......"
"아냐.... 뒤통수는 무슨..... 잘 해봐~"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의 리스크를 알려주고 후배 김 팀장에게 기획안을 넘겼다.
김 팀장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한 지 2개월쯤 지났을 때였던가....
회사에서는 그 프로젝트가 점점 골칫덩이가 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상하게도 김 팀장은 처음에 이것저것 의논도 하더니,
이제는 한동안 나를 봐도 인사가 없다.....
그러다 회식 날이 되어 김 팀장과 나란히 앉는 자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태도에 불만이 느껴진다?
술잔을 몇 번 비우고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김 팀장..... 혹시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네?? 아니에요....."
"말해봐 무슨 일 있어??"
"휴....."
"팀장님 솔직히 말해서 요즘 기분이 좀 안 좋아요....."
"왜? 무슨 일이야?"
"아이...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팀장님이 넘긴 프로젝트 때문에 제가 요즘 골치라는 거....."
"엉? 내가 넘긴 프로젝트? 내가 넘긴 거라고?"
"솔직히 팀장님이 애매하니까 저한테 넘기셨고..... 저는 그것 때문에 요즘 회사 생활이 어려워요..... 솔직히 팀장님이 넘기시는데 제가 안 받을 수도 없었잖아요....."
김 팀장은 자신이 달라고 조른 게 아니라 내가 떠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아무리 설명해봐야 그렇게 믿고 있기에 수개월 전의 상황을 설명하긴 어려웠다.
그때 생각 난 대화가 있었다.....
"김 팀장..... 혹시 김 팀장이 내 뒤통수 치는 거라 느끼면 그 기획안 달라는 말 안 하겠다고 한 말 기억나?"
"네?!?!?!?.............. 아!!!!.............. 네......"
"내가 김 팀장한테 떠넘기는 일이었으면 김 팀장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을까? 사실 그땐 내 기분이 더 안 좋았는데....."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가 풀렸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왜 생겼을까?
아마도 자신의 상황이 장기간 극도로 나빠지면 감정의 기억이 왜곡되는 듯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메모를 할 때 감정의 기억까지 메모하기 시작했다....
언제 내가 고마웠던 감정이 분노로 왜곡되면서 정작 감사할 일에 원망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