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에서

손죽도 그 섬

by 청춘열정


엄마는 100일이 갓 넘은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이 넘게 병원을 다닙니다. 의사는 폐렴으로 아이의 병이 커졌다며 순천에 있는 큰 병원을 가라고 합니다. 감기라고 해서 일주일이 넘게 매일 치료를 받았는데 이상한 것 같아 엄마는 다른 병원을 찾아가 봅니다. 역시 진단은 폐렴이고, 여수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는 치료가 힘드니 순천에 있는 큰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키랍니다.


남편도 집에 없는데, 엄마는 세 살짜리 아이와 100일 된 아이를 데리고 순천에 갈 엄두가 안 납니다. 사실 엄마는 순천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 엄마는 의사에게 제발 여기서 아이가 낫게 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고민 끝에 의사는 아침 아홉 시와 오후 여섯 시에 두 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오라고 합니다.


그날 밤늦게 100일 된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세 살 된 아이도 따라 울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작은 아기를 업고,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집 앞 공터를 걷기 시작합니다. 셋이 같이 울면서 말입니다.


2013년 8월 5일, 어제 엄마에게 처음 들은 33년 전 우리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아버지는 외가에 우체국을 지으러 들어가 있으셨다고 합니다. 외가는 '손죽도'란 섬입니다. 당시만 해도 여수에서 배를 타고 세 시간 반씩이나 가야 했던 곳입니다. 기억하기에 전기도 낮에만 그것도 특정 시간대에만 공급되고, 밤에는 축전지에 저장해 놓은 전기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밤에는 백열등 몇 개 켜는 것 외에는 전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엄마가 아버지를 따라 외가를 가면 편했을 거란 생각을 해봤지만, 그것도 그런 것이 손죽도에는 지금도 이들이 아프면 찾아갈 마땅한 병원이 없습니다. 그때 동생은 그렇게 의사가 하루에 두 번 진료를 본지 이틀 만에 혈색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동생의 폐렴이 낫자마자 엄마는 외가인 손죽도로 남편과 부모님을 보러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3년 8월 6일 오늘, 33년 만에 엄마는 엄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33년 동안 누가 못 가게 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여수로 자주 나오셨기 때문에 굳이 섬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와서는 대전에 사시는 엄마도 대중교통을 타고 배 타는 곳까지 가서 섬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누가 편하게 데려다주면 몰라도요. 그런데 이제 아버지도 오래 운전하기는 힘든 나이가 되셨고요.


제 휴가를 비롯한 여러 상황들이 맞아떨어져서 많은 식구들이 이번에 손죽도를 찾았습니다. 엄마, 아버지, 이모, 삼촌, 숙모, 그리고 외사촌들까지요. 사실 처음엔 엄마가 외가에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을 때 조금 망설이긴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시간을 더 갖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33년 만이란 얘기에 더 망설일 것 없이 내가 모시고 가서 아들 노릇, 손주 노릇 좀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대충 짐을 풀고 우체국이 있는 곳을 올라가 봤습니다. 어렸을 때 외가에 왔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우체국이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난 후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대전에서 세 시간 반 차를 몰고 와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한 시간 배를 타고 왔습니다. 서울은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오는 동안 찜통더위에 머리가 띵하고 몸이 무거워 약까지 먹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녁이 되니 선선해지고 이것저것 먹으니 기운이 좀 납니다. 특히 외할아버지가 내놓으신 토마토가 일품입니다. 앞마당 텃밭에서 직접 따 놓으신 토마토입니다.



해지는 저녁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먼 바다를 보며 얘기를 합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엄마와 아버지는 집 앞마당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같이 온 삼촌네 식구들도 다 자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옆 와상에 모기장을 쳐놓고 앉아 있습니다. 참 잘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