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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린 Mar 09. 2018

나의 행복은 아직 안녕합니다

나름대로 세운 행복의 정의, 성질, 그리고 철학.

왜 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각자 답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해 산다. 그리고 나에게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지표처럼 세워진 하나의 명제가 있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적인 가치이다.


이 말을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들은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마 그 당시에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테다. 하지만 어쨌든, 살면서 절대 흔들리지 않을 뿌리같은 명제이다. 나는 때로 이 무미건조한 말을 꽤나 화려하고 문학적으로 바꿔 말하곤 한다. 행복이란 고통과 인내를 견디고 끝끝내 성취하게 되는 열매가 아니라, 우리의 삶 내내 걸어가는 길 도처에 피어있는 꽃이라고.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에 조건을 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하나, 행복하려면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서 주체적으로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버스 안에서 찍었는데도 넘나 잘 찍어서 뿌듯해했던 사진. 창 밖을 내다보는 걸 좋아해요.


내가 처음부터 지극히 행복을 잘 느끼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느냐 하면 아마 그 반대이다. 태생적으로 어두운 면이 강한 아이였고 그런 천성을 자라게 하는 환경을 지닌 채로 세상에 나왔으니까. 그리고 아직까지도 인간적으로 온전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부분이 많다. 고쳐야 할 모습도 산더미같고. 하지만 행복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불완전과는 전혀 별개의 카테고리라서, 이런 나도 행복을 듬뿍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또 행복하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것> 이었다. 꽃을, 밤하늘의 별을, 적당히 스치는 산들바람을, 수많은 색을 가지고 퍼져나가는 새벽 하늘을 보고 아름답다 말했다. 처음에는 의식적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활기찬 도시를, 세상의 밝음을 다 가진 어린 아이의 웃음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제는 타인의 행복에도 이따금 웃음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내겐 차마 그러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달콤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스스로의 변화를 나는 '행복을 표현해서 만들어내려고 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행복을 담당하는 근육이 있고 그 근육을 운동시키는 것처럼. 대부분 소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해는 매일 뜨고, 밤도 하루에 한 번 오고, 꽃도 돌아오는 봄에는 필 것이니까. 그래서 누구나 절대 늘 행복할 순 없어도, 멀리서 돌아봤을 때 항상이라고 느낄 만큼 자주 행복을 느낄 수는 있다. 스물에 찾은 행복은 스물하나에 다듬어지고, 어쩌면 지금, 스물둘에는 약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나의 삶은 골인 지점에서 얻게 되는 단 하나의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어서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조바심이 나지 않는 건 아니다. 결국 움직이고 경험해야 행복해지니까. 올해에도 교환학생을 준비하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이 분명히 나를 누르고 있고, 여전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는 나 그대로라서 힘들고, 나아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자책한다. 하지만 적어도 삶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가치 만큼은 '실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단 한 가지' 로 남겨두고 싶다. 사랑에도 실패할 수 있고 자아실현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될 수 있지만 행복을 실패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명제로, 그렇게. 적어도 행복을 내가 깨야 하는 퀘스트가 아니라 삶에서 주어진 다른 수많은 퀘스트에서 실패할 때 나를 다시 일으켜주는 회복제 같은 것으로 바라보고 싶다.


행복해져야지, 행복해질 거야. 보다는,

그저 지금 내 주위의 충분한 행복을 느끼기.

그래서 나의 행복은 아직은, 혹은 이제는 안녕하다.

스물두살의 행복은 때로 이렇습니다.



며칠에 걸쳐 글을 쓰는데 사실 마무리를 짓는 오늘은 누구에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스스로에겐 좀 우울해지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으니 조금 나아졌다. 행복을 관해 말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꽤나 다채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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