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린레이 Jan 30. 2024

<타코피의 원죄> 리뷰: 혼자가 아닌 너희에게

Taizan5의 <타코피의 원죄> - 혼자가 된 아이들의 이야기


미디어: 만화

제목: 타코피의 원죄 (タコピーの原罪)

글: Taizan5

그림: Taizan5

장르: 드라마

출판사: 대원씨아이

단행본 권수: 2권



<타코피의 원죄>는 귀여운 그림체 속에 잔혹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정보를 접하자마자 나는 네이버 시리즈에서 무료로 풀린 부분을 맛보기로 보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쿠키가 구워져 있었다. 만화라는 매체를 굉장히 잘 활용한 연출과 미스터리만 쌓여가는 독특한 이야기가 나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세요...!


위의 문장은 작가 Taizan5가 만화가 시작되기 전 작가의 말에서 쓴 글이다. <타코피의 원죄>는 독자들에게 힘들거나 절망적이었던 경험이 있었는지 묻는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은? 그 상황에서 원하는 것은? <타코피의 원죄>는 이러한 질문과 답을 위해 '시즈카'와 '마리나'를 등장시킨다. 둘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연스레 우리에게 질문하고, 자연스레 답이 나오도록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타코피의 원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장치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 부분부터는 <타코피의 원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단행본만이 줄 수 있는 훌륭한 연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은 만화의 상위호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코피의 원죄>의 연출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는 이러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단행본만이 선사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코피의 원죄>는 한 페이지를 통째로 이용하여 장면전환을 암시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같은 구도와 배경이지만, 180도 달라진 분위기를 연출하여 '무언가 잘못됐다'를 전달한다. <타코피의 원죄>에서는 위와 같은 연출을 반복적으로 이용한다. 그럼으로써 '한 페이지 통째로 쓰면 긴장해'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주입한다. 때문에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기 전 긴장감과 압박감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만화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 시킨다.






이외에도 <타코피의 원죄>는 위와 비슷한 연출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같은 구성이지만 내용은 정반대로 제시하여 계속해서 극적인 효과를 준다. 나는 이러한 만화 연출을 <타코피의 원죄>에서 처음 보았다. 더 이상 만화는 애니메이션의 하위호환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만화에서만 줄 수 있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나를 더욱 몰입시켰던 것 같다.







왜 제목이 <타코피의 원죄>일까?

만화책을 덮고 나니 위와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원제의 '원죄'가 어떤 한자를 사용했는지 찾아 보았다. 원제의 원죄. 라임이 괜찮은데?


언덕 원(原)과 허물 죄(罪)를 쓴다. 이 '원죄'는 기독교의 교리로써 아담과 하와가 신과의 약속을 어긴 죄라고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선악과를 먹은 사건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모든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지닌 채 태어나게 되었다.


<타코피의 원죄>는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그렇다고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적용될만한 사건도 없었다. 따라서 <타코피의 원죄>의 '원죄'는 교리로써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도 <타코피의 원죄>와 비슷하게 원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때마다 느꼈던 '원죄'의 의미는 씻을 수 없는 혹은 원인이 되는 죄 정도였다. <타코피의 원죄>도 이러한 해석을 이용하면 납득이 된다.


그렇다면 타코피의 원죄는 도대체 무엇일까? 답은 13화에 있다. 13화의 제목은 바로 타코피의 원죄다. 




타코피는 마리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타코피의 선택으로 인해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본다면, 지금 타코피는 최악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코피의 원죄는 바로 마리나를 떠나는 것이였던 것.


이게 왜 원죄인지 살펴보자. 마리나를 떠나는 것은 마리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지만,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타코피가 했어야하는 행동은 마리나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위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마리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나만 혼자 두지 마


마리나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같이 있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코피는 마리나가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다시 말해 마리나 곁에 타코피 밖에 남지 않았을 때, 타코피는 최악의 선택으로 떠나는 행동을 고른 것이다. 이것이 타코피의 원죄다. 


시즈카는 어땠을까?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시즈카도 마찬가지였다. 마리나와 마찬가지로 힘든 상황에도 곁에 있어주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은 타코피와 시즈카가 화해를 하는 장면이다. 시즈카가 힘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하냐고 했을 때, 타코피는 정답은 모르지만 혼자 두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 말을 들은 시즈카는 그렇게나 펑펑 울었다. 그렇게 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타코피는 자신의 원죄를 씻을 수 없지만, 시즈카와 마리나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어떻게 둘을 행복하게 해주는지, 정말로 그 둘은 행복해졌는지 알고 싶다면 <타코피의 원죄>를 끝까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타코피의 원죄>는 굉장히 큰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특유의 연출로 한방 먹었고, 스토리 전개로 두방 먹었다. 또한, 분량이 짧았지만 기승전결이 깔끔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만화에서 전달하고픈 메세지도 명확했다. 두고두고 생각나면 다시 찾아볼만한 작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