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고양이

침묵의 실체

by 진동길



침묵




그(그녀)는 소리와 몸짓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고, 모든 언어(소리와 몸짓)들의 모태이자 언어가 실재하기 이전의 언어입니다.


'침묵'은 '근원어'이지요.
'언어' 이전의 '언어'입니다.


그 시작을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이기에 언어들의 본질(essence)이자 동시에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소리와 몸짓의 근원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징과 표징들을 품어준
침묵은 소리와 몸짓이 담지 못하는 언어로 '소리 없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존재들의 말과 소리가 다다르지 못하는 깊고 아득한 '절대 타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오로지 침묵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침묵. 그녀와 하나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에야
비로소 열리는 무한한 아우성이 있습니다.

그 무한의 공간에서 비로소 알아챌 수 있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그 공간에서 우리는, 그 어떤 몸짓이나 소리도 개입할 수 없다는 알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수려하고 설득력 있는 말과 행동일지라도 진실한 소통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침묵. 그녀(그)의 양태는 당신의 감정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요.
그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당신과 함께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여 우리는 극한의 두려움 중에 경외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환희와 공포, 깊은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감정들을 침묵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는 무관심과 경멸, 시기, 실망, 수치, 비겁함, 이기심 같은 얕은 마음들을 침묵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또는 권태와 피로를 침묵 가운데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침묵이 다양한 얼굴로 그대와 나 사이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침묵이 세상의 모든 상징어와 표징어들의 근원임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시원을 가르는 빛과 어둠과 같은 침묵.
감출 수 없는 순수함.
맑고 청정한 지경.
사랑의 결정체.

물들지 않은 그 자체로 세상의 모든 언어들과 맞닿아 있는 침묵.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을 흡수하고 동시에 되비춰 주는 절대 타자.

침묵은 분명, 인간에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모호한 모습입니다.

그 이유를 침묵의 본성에서 찾봅니다.
그(그녀)가 모든 조건들을 보듬고 모든 상황들과 소통하고자 열망하기 때문 아니까.
그녀(그)의 열망은 언제나 자신을 극한의 지경까지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아이러니하지만 모든 존재에게로 자신을 '내어놓음'이 그녀의 본성이기에. 그것이 그의 본모습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역설입니다.
낯선 '절대 타자'로 다가오지만 '그대'와 나를 향한 그녀의 열망은 자신의 눈과 귀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열어놓은 채, 끝까지 기다 줍니다.
살아 있는 것들과 죽은 이들까지 언제까지나.


어떤 이들은 그녀를 두고

절대 타자의 실체라고도 부릅니다.

그대가 내가 못다 한 말과

내 목에 걸려 미처 하지 못한 말들도

그녀는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투명한 빛과 같습니다. 당신이 그녀를 속이려 해도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내가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당신의 마음 안에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또 내 안의 기쁨과 고통의 정점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녀는 이미 당신이

차마 소리로 표현할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움직임을 그친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침묵은.

절대 사랑은, 그대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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