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비가 내린다. 늦은 장마일까? 이상기온으로 지구가 많이 아파서일까? 아픈 지구처럼, 비만 내리는 하늘처럼 꼬마 수사의 마음도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날씨 같았다.
빗방울이 좀 잦아지기는 했지만, 안개비가 꼬마 수사의 마음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날을 두고 게으른 사람은 잠자기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일하기 좋은 날이라고 했는데, 꼬마 수사는 자기의 마음이 자꾸 다운되는 것 같았다.
쥐 죽은 듯 너무나도 조용한 방을 둘러보던 꼬마 수사는 구석에 우뚝 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시무룩하게 마주 한 한 아이의 얼굴이 역시 시무룩하게 꼬마 수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행유현(景行維賢) 극념작성(克念作聖)이라 했지. 큰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되니, 자잘한 생각, 망념(妄念)을 이겨 나간다면 성인(聖人)이 된다고 했어. 그래! 이런 날일 수록 '탈리타 쿰' 해야지.'
그리고 한껏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거울 속에 아이도 같이 웃어주었다. 그때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꼬마 수사는 급하게 마태오 수사를 찾아 나섰다.
'밭에는 안 계시고... 시장 가셨나?' 꼬마 수사는 마지막으로 부엌으로 발길을 향했다. 다행히 마태오 수사는 주방에서 쓰는 부엌칼을 갈아주고 있었다.
기도하듯 온갖 정성을 다해 칼을 갈고 있어서 말할 기회 엿보던 꼬마 수사가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물었다.
"수사님, 한 개 다 갈으셨나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허허허. 그래. 우리 꼬마 수사가 뭐가 그렇게 궁금할까? 꽤 심각한 표정인데!" 칼 날을 살피던 마태오 수사가 칼을 갈던 손을 잠시 멈추고 꼬마 수사를 바라봤다.
"네... 쫌 진지한 이야기예요..."
"그래... 무엇이 우리 꼬마 수사를 이렇게 진지하게 만들었나 들어볼까?"
"수사님. 행복이란 뭔가요?" 다짜고짜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꼬마 수사에게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마태오 수사는 적잖이 당황했다.
"행복? 무슨 일이 있었구나?"
"네... 아침에 고급 차를 타고 온 한 남자분이 제게 다가와서 '꼬마 수사님.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는데...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런데... "
"그런데?" 그 순간 마태오 수사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말하고 있는 꼬마 수사의 마음이 몹시 상해있었음을 직감했다.
"그런데... 돌아서 가면서 혀를 찼어요. 쯪쯪쯪... 이렇게..."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마리오... 이리 오렴... 마음이 아팠구나." 마태오 수사는 꼬마 수사를 안아주며 다독였다.
"네... 왠지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기분이 많이 안 좋았어요."
"그래... 아이쿠... 우리 꼬마 수사님을 누가 그렇게 불쌍하게 보았노? 우리 꼬마 수사님이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마태오 수사는 꼬마 수사를 한동안 안아주었다.
"수사님 행복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음... 어려운 말인데... 사람마다 행복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신앙인들에게 참된 행복이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가 아닐까."
"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하신 그 행복, 참 행복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하느님께서는 바로 내 안에 계시고 그분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으니, 그분과 하나가 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우리는 참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이라는 단서를 달으셨나요? 모든 사람이 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나요?"
"허허허. 안타깝게도 그렇단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이 깨끗하지는 않단다. 또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는 것도 아니란다."
"예? 왜요?"
"모두가 선한 것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모두가 선하게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아서이겠지."
"행복을 다른 데서 찾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행복이 있는 건가요?"
"음... 내 생각에 다른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참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가짜 행복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마음이 깨끗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단다."
"어떤 이야기요?"
"한 아이가 저녁밥을 지으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하였단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불은 붙지 않고 아궁이는 계속 연기만 뱉어내고 있더란다."
"아휴... 답답해!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그 아이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아궁이에게 화를 냈지. '왜 불을 피우지 못하느냐!'라고 하면서 아궁이에 더 많은 나무를 쑤셔 넣었단다. 바람 한점 통할 수 없을 지경까지 말이지.
"하하하. 정말요? 그러면 바람이 통하지 못해서 불은 더 안 붙고 연기만 날 텐데... 왜 애꿎은 아궁이한테 화풀이를 했을까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저녁밥은요?" 호기심 반 걱정 반인 표정으로 꼬마 수사가 물었다. 불을 피우는 아이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다.
"어리석은 아이는 저녁때가 다 되도록 아궁이를 상대로 화를 내고 있었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스승이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단다. 가만히 보니 아궁이에 가득 찬 나무는 젖은 나무였고, 불 피우는 아이는 애만 태우고 있었던 상황인지라 아이를 다독이며 아궁이의 나무를 모두 다 빼나라고 한 뒤, 바짝 마른 장작을 가져다주었단다."
"와...! 이제 불이 활활 타올랐겠네요." 꼬마 수사도 덩달아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지! 불길이 닿자마자 마른나무와 마른 장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활 타올랐지... 저녁밥을 지으려고 불을 피우려는 아이처럼 모두가 참으로 행복하기를 갈망하지. 하지만, 젖은 나무나 장작처럼 그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행복을 누릴 수 없단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서 행복만 원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거짓된 행복과 오염된 행복, 혹은 가짜 행복이 그 사람 유혹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는 큰 불행에 빠지게 되겠지?"
"와... 행복의 종류가 그렇게 많았네요."
"아침에 만났던 그 남자분은 어떤 행복을 누리고 사실지 모르겠지만, 맑고 순박한 행복이 참 행복이란다. 이를 두고 '다산 정약용 요한'은 청복(淸福)이라고 했지."
"청복요? 그것도 가르쳐주세요. 궁금해요."
"허허허... 그럼 오늘은 칼을 마저 갈아야 하니까 내일 청복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마."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제 마음에 뜨거운 사랑의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아요. 참으로 행복해지는 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