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상처를 넘은 사랑, 죽음을 지나 탄생하는 생명”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죽음은 끝인가?”,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인류 역사와 함께 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들에 새로운 시각을 더해보려 합니다.
과거 고전물리학 시대에는 세상을 이해할 때 모든 것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뉴턴의 법칙은 우주의 모든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끝처럼 보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이 등장하며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입자가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때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존재가 정확히 하나의 상태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태가 겹쳐져 있는 중첩 상태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신비한 ‘얽힘 현상’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고전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활 사건 또한, 이런 양자역학적 관점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상태로의 변화이며,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신비의 순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상처가 남아 있는 모습 그대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상처는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한 사랑이 그대로 우리와 함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헨리 나웬은 예수님을 ‘상처 입은 치유자’라 부릅니다. 부활은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사랑과 희망의 가능성으로 변화시키는 신비입니다. 토마가 예수님의 상처를 만져보고 믿음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겪은 고통과 상처가 치유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헨리 나웬은 죽음을 ‘두 번째 탄생’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 우리는 죽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맞이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지만, 확실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보다 크다는 사실입니다.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입자가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중첩 현상처럼, 부활도 죽음과 삶, 상실과 탄생이 함께 공존하는 신비로운 중첩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입자들이 서로 얽혀 있듯이, 우리 또한 사랑과 용서로 서로 얽혀 있습니다. 헨리 나웬은 “부활은 혼자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나 혼자 살아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울 때 비로소 완성되는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맞이한 이 부활의 아침은 단지 과거의 기념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일으켜야 할 생명의 사건입니다.
상처를 숨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치유와 회복의 시작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부활의 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새 생명으로의 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는 지금, 부활을 살아가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