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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들이 지나는 길

18. 바다와 그리움의 색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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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 여행을 마치고 바닷가 마을로 돌아온 은별이와 도윤이.
이곳에선 어촌계 어르신들이 “올해 마지막 어기가 곧 끝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너희도 고깃배에 올라 고기잡이를 직접 체험해 보지 않겠니?”라며 제안했다.


은별이와 도윤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동시에 “해볼래요!” 하고 두말없이 환호한다. 둘은 머지않아 시작될 모험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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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부둣가


아직 동이 채 트지 않은 새벽, 부둣가는 평소보다 분주하다.
커다란 램프 불빛이 비추는 부두 한쪽엔 그물과 어구가 정리되어 있었고,
어부들은 소금기 묻은 목소리로 서로를 불러 가며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은별이와 도윤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긴장된 표정으로 선장 아저씨 앞으로 나섰다.
“구명조끼부터 제대로 입어야지. 출항하면 파도가 거셀 수도 있으니까.”
선장 아저씨의 차분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조끼 끈을 단단히 맸다.


배가 부둣가를 천천히 떠나자, 엔진 소음과 함께 마을 풍경이 뒤로 멀어졌다.
도윤이는 짭조름한 바다내음을 깊이 들이마시며, “우와… 우리 정말 멀리 나가는 거야?” 하고 들뜬 목소리를 냈다.
은별이는 식은땀이 살짝 났지만,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컸다.
잔잔한 새벽빛이 감도는 바다는,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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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


배가 마을 인근 해역에 도착하자, 숙련된 동작으로 그물을 풀어내는 어부 아저씨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여기선 고등어랑 전갱이가 많이 잡힌단다. 운이 좋으면 갈치나 가자미도 끼어들 거야.”
아저씨가 그물을 바닷물에 담그자, 잠시 후 끌어올리는 그물에는 은빛 물고기들이 펄떡이며 무리를 지었다.


“우와, 생각보다 많이 잡히네!”
도윤이의 얼굴이 화색으로 물들었다.
비늘에 반사되는 빛이 사방으로 튀어 오를 때마다 물방울이 옷자락을 적셨고,
은별이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상자에 옮겨 담았다.
‘정말 대단한 생명력이네. 파도처럼 반짝이는 건 똑같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중간중간 어부 아저씨들은 “너무 앞으로 나서면 위험해!”, “손 조심해!” 하고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할아버지는 “잘한다, 잘해!” 하고 크게 칭찬을 건네며 흐뭇해했다.
아이들은 작은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하나둘 요령을 익히며 고기잡이 체험에 적응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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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와 기억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바람이 점차 거세졌고, 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와, 이거 무서워!” 도윤이가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자,
한 어부 아저씨가 “바다는 늘 변덕스러워. 방심하면 크게 다친다니까.” 하고 일러 주었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배 난간에 서서 먼바다를 조용히 내다보았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하고 은별이가 다가가자,
할아버지는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모습, 참 오랜만이구나. 네 엄마, 아빠도 예전에 이렇게 배를 탔지.
바람이 몰아칠 때면 네 아빠가 노래를 흥얼대며 엄마를 웃게 했다는구나.”


그 말을 들은 은별이는 마음이 살짝 울컥해졌다.
‘엄마와 아빠도 파도가 치는 바다 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었구나…
혹시 엄마는 그 순간에도 노래를 만든 걸까?’
짧은 대화였지만,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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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항, 그리고 바다가 파란색인 이유


배가 부두를 향해 머리를 돌릴 무렵
언젠가부터 머리칼이 소금기로 뻣뻣해졌지만, 그런 건 두 아이에게 중요치 않았다.
“은별아, 오늘 바다에 나오길 잘한 것 같아. 난 좀 어른이 된 느낌이야!”
도윤이가 가슴을 쭉 펴며 말하자, 은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웃었다.


부두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마을 아주머니들이 “고생 많았다!”며 환영했다.
은별이와 도윤이는 싱싱한 생선을 가리키며 “우리가 직접 잡았어요!” 하고 자랑했고,
사람들은 “오, 우리 어부 후계자들이로구나!”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힘들진 않았니? 잘 견뎠구나!” 배에서 내릴 때,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크게 물었다.
은별이는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며,
“힘들긴 했는데… 엄마 아빠도 이 바다에서 이렇게 사셨구나 생각하니 이상하게 기쁘고 신기해요.” 하고 답했다.


‘언젠가 엄마가 남긴 노래를 듣게 된다면, 오늘 이 체험도 내 기억 속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겠지.
하얀 물보라와 비린내, 파도에 흔들리는 이 배의 진동… 전부 엄마 아빠가 겪었던 순간과 이어질 거야.’
은별이의 마음속에는 엄마,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한 장 더 늘었다. 파다가 파란색인 이유도 바다 사람들의 그리움이 녹아서일 거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고 더 당당하게 걷는 두 아이는 한층 어른스러워 보였다.
“확실히 배 타기 전이랑 후가 전혀 달라. 뭔가 되게 멋진 걸 해낸 기분이야.”
“나도 그래. 이제 바다를 볼 때마다 뭔가 달라질 것 같아.”

도윤이의 말에 은별이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응답했다.


이번 고깃배 체험은, 은별이와 도윤이의 여름방학에 눈부신 추억을 선물했다.
할아버지에게도 아이들이 부모님과 같은 길을 걸으며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큰 기쁨이었다.
새로운 성장, 부모님과의 연결, 바다에 대한 경외심, 그 모든 감정들이 한낮의 눈부신 햇살 아래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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