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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Oct 23. 2024

휴가 가지 말라고?

3개월 전 결재받은 휴가를 취소하려는 후배?

참 어이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나는 그냥 그 상황을..., 당했다.

또 당한 것 같다.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뒤늦게 그 상황이 황당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아무 말 못 했는데.

아니, 오히려 구차하게 휴가가 필요하다고 이유를 늘어놓았다. 휴가 못 가게 될까 봐 두려움까지 느끼며 구구절절, 변명 같은 이유를 반복해서 말했다.


3일 전,

점심 먹으러 같이 가서 자리 잡고 앉자 후배가,

“14, 15일 진짜 휴가예요?” 하고 갑자기 묻는다.

순간 무슨 말인지, 오늘은 21일인데, 14, 15일에 내가 휴가였었나? 방금 뭐 먹었는지도 담아두지 않는 내 머릿속을 헤집으며, 14, 15일에 뭐 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14, 15일에 연차 올려놨던데, 진짜 휴가냐고요? 내가 그날 회사 연수원이 당첨돼서“

그제야 다음 달을 말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기억 저편의 구슬들을 굴려, 내가 14, 15일에 휴가를 결재받아 뒀었나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제야 내가 다음 달 14, 15일에 휴가 냈구나를 상기시켰고, 왜 냈는지를 생각해 봤다.


“아이 학교가 그날 양일 휴교더라고요. 그래서 휴가 냈어요”라고 휴가 낸 이유를 생각해 내서, 설명해 줬다.

그러자 “진짜 휴가네? 연수원 당첨된 거 오늘 발표돼서, 그날 나도 휴가 내야 해서. 그럼 부장님 혼자 지키셔야겠네. J 도 휴가고, 나도 그날 연수원 놀러 갈 거니, 휴가 꼭 가야 하는지 …”.라고 하는 후배에게,

“아이들 휴교라 휴가 냈어요”라고, 휴가 못 가게 될 까봐 두려운 마음에 구구절절 궁금해하지 않을 학교 상황까지 추측해 가며 반복해서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다음 달 휴가일 4개월 전에 연말까지 휴가 결재를 미리 받으라는 회사 요청에 따라 아이들 학교 일정을 보며, 가족 일정이 적힌 달력을 보며 연말까지 연차일정을 다 정해서 결재받아뒀었다.

휴가 계획 결재받을 때는 날짜를 고심했지만

당장 오늘, 하루하루 아이들 챙기고 해야 할 일하는 것도 잊기 일쑤라 며칠 전의 일들은 금세 잊힌다. 며칠 후의 일들도 방금 생각했다가도 당장의 일들을 하다 보면, 또 금세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게, 연말까지의 휴가가 며칠 며칠인지 잊고 있었다. 

휴가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을 내 머리에 의지해서 처리하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기에

달력 앰과 휴대폰 메모장, 회사 책상 달력과 수첩, 포스트잇 등으로 여기저기 써놓고, 고개 돌리며, 화면 켜면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논다. 


일정을 적어둔 달력을 보면, 아 뭐 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그때뿐, 다시 당장 해야 할 일에 급급해 또 잊어버린다. 이게 내 용량으로 살아가는 방법인데, 갑자기 한 참 후의 일을 물어보니, 그것도 한 참 전에 결재받은 한 참 후의 일을 물어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나 당황하고, 그 날짜가 무슨 날인지 깨닫는데 오래 걸렸다. 무슨 날인지 깨닫게 되지, '어, 나 꼭 휴가 가야 하는데'하는 생각과 휴가 못 가게 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휴가 가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휴교를 결정한 학교 상황을 추측하면서까지 구구절절 길게 늘어놓았다.


삼일이 지난 오늘,

갑자기, 휴가 못 갈까 봐 두려워하며 왜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했는지. 

성실하다 못해 구차하기까지 한 그 대답들이 맴돈다.


그 후배는, 

공개경쟁을 통해 입사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사람 생각하는 일없이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말하는 것 같다.

면접 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6:4였음에도 입사한 결과 여성채용 할당제 덕분에 10% 정도만 입사한 여직원 중 한 명으로서, 부서에 유일한 석사 전공 여자직원으로서 '잘난 척하지 마라', '튀지 마라',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말을 대놓고 들으며 20년을 지내온 나와는 다르다. 

그 후배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정규직 전환, 승진을 보통의 다른 이들과 다르게 했다.

몇 백대 1의 경쟁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당제 아니었으면 못 들어왔다',  '아이 낳아서 승진 못한다'는 말을 대놓고 들었던, 그래서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억울함이 있는 나와는 다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상호 존중을 늘 생각하고 있는 나지만, 후배들에게 '나이도 어리면서'라는 말을 대놓고 들은 이후, 한 마디 한 마디 더 조심스럽게 상대를 -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특히, 나보다 후배에게 특히 - 존중하며 말하려고 노력하는 나와는 다르다. 

놀러 다니기 위해 부모가 사는 곳이 아닌, 서울로 지원해 회사 합숙소에서 지낸다는 그 후배는,

나의 선택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에서 욕설 민원 들으며 긴장하고, 

태어나서도 회사 간다고 새벽부터 준비하고 밤늦게 자고, 저녁도 못 먹고 엄마 회사 좇아가는 날도 있었던 아이들... , 지방 근무로 아예 챙겨주지도 못했던, 그래서 늘 미안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을 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엄마인 나와는 다르다.


내가 휴가 가야 하는 이유를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설명하는 그 대신, 

"오늘 결정된 혼자 놀러 가는 너를 위해, 몇 개월 전에 아이들 돌보기 위해 받은 휴가를 취소하라고?"라고

한 마디 해줄걸.


삼 일이 지난 오늘, 갑자기 떠오른, 평소 내게 말도 안 섞는 그 후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 후배는 그냥 원래 그렇게 본인 상황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일정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그런 사람이야 라고 넘겼다. 그렇게 그냥 넘기고 다시 3일 전 질문이 안 떠오르기 바랐다. 그런데, "J는 휴가 가야 하고, 나도 연수원 당첨됐으니"라는 후배의 말이 자꾸 오늘, 떠오른다. 그럼 나는?이라고 이제와 반문하고 싶다.

그럼 나는 휴가를 안 가도 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 친 왜곡인가? 


이제와 3일 전 그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이제와 "왜 내 휴가를 못 가게 하려고?"라고 그 후배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도 없지만.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온다면 정신 차리고 한 마디 해주자 싶다.

그저 상대의 질문에, 듣고 싶지도 않을 나의 긴 성실한 대답을 늘어놓는 대신에,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는 말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늘 당장 일들을 해치우며 숙제하듯 하는 사는 나에게 믿음이 안 간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그래서 늘, 그냥 그렇게 그 상황을 당하는 건가 싶다.

이 후배도 그래서 내게만 그렇게 더욱 배려 없이 툭툭 던지는 말을 하나보다. 


그래도, 마음에 '그래도'가 남았다.

그래도, 배려 없는 말에 상처받은 내가 잘못이 아니라고.

바보 같이 성실하게 답한 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의도를 의심하는 일 없이,

저의가 있는 이들에게도,

늘 성실히 상대해 주며. 

내가 상처를 받았던 말을 내뱉은 사람과의 상황에서 조차도, 

순간순간을 성실히 임해서, 

존중해서 

그렇게 의도확인 질문이 아닌, 질문 자체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내 마음을 다독이며, 

앞으로 또 그렇게 살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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