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다

명품구두를 신은 깡패와 찢어진 슬리퍼를 신은 민간인

by Marisol

한바탕 난리를 치르듯 한과 장사라는 유통사업의 첫 삽을 무난하게 끝내고 다들 지쳤는지 책상 앞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블루토 김상천 부장은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고 뽀빠이 고충석 과장은 책상에 엎드려 왼쪽으로 몸을 틀고 왼쪽 팔을 베개 삼아 자고 있었다. 팔뚝이 굵어 베개보다 더 편해 보였다.


경리과 김 대리가 입 벌리고 자는 그 들 앞에서 알짱거리며 킥킥 웃어대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똥머리로 올린 키가 크고 깡마른 김 대리가 그 들과 섞여있는 것을 보니 뽀빠이 만화의 등장인물이 완벽하게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다. 성질 못된 블루토와 뽀빠이, 그리고 뽀빠이의 연인 올리브.


그리고 회의실 소파에는 여지없이 화려한 동물무늬의 셔츠를 입은 조지혁 이사의 똘마니들이 패잔병처럼 널브러져 누워 자고 있었다.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는 말대가리, 송곳니를 드러내고 덤벼드는 호랑이,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숱이 많은 사자, 밀림이나 황야에서 위세를 떨치는 사나운 맹수들이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자고 있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코끼리 떼를 몰고 온 한니발 장군에게 처참하게 초토화된 알프스의 맹수들 같았다.


추석명절의 매출현황을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회의를 하자는 전화를 받고 사장실로 들어간 강한나는 어색한 풍경에 깜짝 놀랐다.


항상 호랑이나 사자, 용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다녔던 조지혁 이사가 말끔한 단색의 셔츠를 입고 있는 풍경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이종태 사장과 컬러는 다르지만 같은 디자인의 심플한 셔츠를 두 사람이 유니폼처럼 입고 있었다. 무슨 브랜드인지는 왼쪽 가슴팍에 강한나의 로망이었던 낯익은 엠블렘이 자수로 박혀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나는 듯한 독수리모양.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조르지오 알마니.


가슴팍에 있는 독수리 마크를 보고 뻘쭘하게 서있는 강한나를 보고 이종태 사장이 한쪽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알마니 알지?

명동에 있는 백화점에 새로 입점했다고 해서 갔지.

거기 있는 거 깔별로 다 샀어.”


하고 우쭐해하면서 소파의 등에 허리를 쭉 펴고 거들먹거렸다.


깡패들의 경박한 쇼핑 스타일이라니...


순간 빈정이 상한 강한나가 회의 자료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왼쪽 뺨을 떨떠름하게 떨면서 한마디 했다.


“사장님. 이번 한과장사에서 돈을 많이 번 것 같아서 먼저 명품 셔츠를 깔별로 다~ 사신 건가요?

이 매출수익분석표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출이익에서 차 떼고 포 떼면 남는 것도 없습니다.


늦더위에 장사하느라 죽어라 뺑이 친 직원들한테 수고했다고 보너스를 먼저 주셨다면 입고 계신 명품 셔츠가 한층 품격 있어 보였을 텐데,

제 눈에는 알마니의 로고가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가 아니라 먼지 풀풀 털어내는 흰 나방처럼 보이네요..”


이종태 사장이 떫은 감을 씹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까만 아이라인 눈을 치켜떴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조지혁 이사의 얼굴도 강한나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호랑이 눈깔에 빡, 힘을 주고 쳐다보았다.


엄지손가락 손톱만 한 독수리 마크의 셔츠를 입은 두 남자의 팽팽한 표정을 뒤로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강한나의 뒤통수에 대고 왠지 찌질하게 변명하는 이종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거 내 돈으로 산 거야!

회삿돈으로 산거 아니거든!”




대학교 강의가 있는 날이 아니면 새로 입점 제의를 받은 마트에 한과를 납품하고 다음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경주에 있는 한과공장에 오가면서 하루의 시간을 초 단위로 나누어 움직였다. 그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서 그런지 직원들도 일머리를 알았기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이종태 사장이 새로운 사업을 추가로 들여왔다.


경주 재래시장의 한과공장 사장과 사정이 똑같은, 이천의 어느 제빵공장 사장으로부터 빵을 납품받아 이번에는 대형마트가 아니라 편의점에 입점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검은 인맥이 이번에는 서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편의점까지 차고 들어가는 것인 가, 강한나는 무섭기까지 했다.


공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검은돈을 빌리고 그 채무를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유통사업을 한다는 전직 깡패들에게 제품을 납품하는 시스템이 과연 강한나가 속해 있는 이 회사만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악의 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공생관계를 지상으로 끌어내서 정상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인생의 고비라고 생각될 정도로 고난이 눈앞에 닥쳐와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도전하는 강한나는 동토의 계절에 알프스산맥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향해 전진하는 나폴레옹처럼, 채무의 무게에 가위눌린 영세 공장 사장님들이 이 역경을 잘 견뎌내기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 대단했던 나폴레옹도 기원전 218년에 같은 알프스를 추위에 약한 코끼리 떼를 몰고 로마군을 기습했던 한니발 장군을 기억하며 감탄했다고 하지 않은가.


코끼리 부대가 없이도 힘들게 넘었던 험준한 알프스를 어찌 넘었는지.




추석이 지나고 날씨가 갑작스럽게 차가워지더니 가을은 온데간데없이 스쳐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알프스의 추위와 비길정도는 아니지만 이번 겨울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 월동준비를 해야 했다.


코끼리 부대가 아니라 호랑이, 사자, 말 그림이 그려진 셔츠를 입은 저들과 함께.


다음 명절의 상품기획서류를 들고 회의를 하기 위해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강한나가 또 낯익은 풍경에 빈정이 상해서 선채로 얼굴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오른쪽 다리를 꼬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이종태 사장이 오른쪽 발을 덜덜 흔들면서 자랑하듯 내밀었다.


“이거 어디 건지 알아?”


“구두… 요?”


“발리 거야. 발리 알지?

이것도 내 돈으로 산 거야. 뭐라 하지 마.”


이종태 사장이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자 옆 소파에 앉아있던 머리가 반들거리는 대머리 남자가 불룩한 배에 있는 주머니에서 금색 듀퐁 라이터를 꺼내 챙, 챙, 소리를 내며 불을 붙여주면서 킥킥 댔다.


“형님. 보기만 해도 부티가 좔좔 흐릅니다. 멋집니다.”


강한나는 의식은 하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의 신발을 쳐다보았다.

사무실에서만 신고 다니는 검은색 슬리퍼이다.

책상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지만 하루에도 몇천보를 뛰어다니듯 사무실을 종횡무진했던 터라 오른쪽 슬리퍼 옆구리가 찢어져있었다.


“사장님. 지금 제 앞에서 명품구두 신으시고 자랑하십니까?

직원은 이렇게 슬리퍼가 찢어지도록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는데.”


그런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추측했는지, 이번에는 그다지 기분 나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빈정거리는 말투로 가운뎃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과장되게 벌려 입술에서 담배를 떼더니,


“내가 슬리퍼 하나 사줄까?

명품이 아니더라도 동대문시장에서 1급 짝퉁으로.”


지난번에 알마니 셔츠 건으로 독한 말을 뿜었던 강한나에게 모욕을 되돌려주려는 의도임에 틀림없었다.


“아니요. 저는 짝퉁은 절대 사지 않습니다.


사자는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 것처럼.”


이빨로 양배추라도 씹듯이 이를 앙 물고 단호한 말투로 스매싱으로 날아온 탁구공을 상대편으로 쳐내듯이 대답했다.

찢어진 슬리퍼를 질질 끌고 사장실을 나오는데 그 대머리와 이종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자는 아직 배가 안 고픈가 봅니다 형님.’



'난 쟤가 적응이 안돼.

배 고픈 사자가 아니라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를 휘젓고 다니는 여자 전투사 같아.


아마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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