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땀으로 득도(得道)하다.
명절특수를 기대하고 드디어 대형 마트의 1층 에스컬레이터 앞, 흔히 노른자위 자리라고 하는 장소의 한과매장에 입점했다.
그동안 서울과 경주를 수십 번을 오가며 상품의 완성도를 높였고, 자칭 차별화된 한과 브랜드로서 발족한 셈이다. 신세대와 핵가족을 겨냥한 참신한 네이밍과 패키지 디자인으로 기존의 전통 한과와 경쟁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고 자부하면서 판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도 자신감을 갖고 판매하자고 현장에서의 판매자 교육도 마쳤다.
이런 모범적인 사업에 익숙하지 않은 조지혁 이사의 부하직원들은 완력을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일정에 당황해하면서도 조 이사와 강한나의 지시에 잘 따라주었다.
공교롭게도 처음 명절 판매행사가 시작되는 날, 그녀는 안성에 있는 대학교로 강의를 하러 가야 했다.
강의가 끝나고 바로 양재동 매장으로 가겠다고 안심시키고 경리실 여직원에게 아르바이트 직원관리와 현장 재고관리를 맡기고 조지혁 이사에게도 지원을 부탁했다.
입점하고 판매행사의 첫날이니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강한나는 별 걱정 없이 강의를 하러 안성으로 향했다.
강의가 끝나고 꺼 놓았던 핸드폰을 켜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수십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매장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걱정되어 전화를 해보니 경리과 김 대리가 울먹이며 전화를 받았다.
손님도 별로 없다면서 무슨 큰일이지? 하면서 강의가 끝나자마자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운전면허를 따자 마자 산 그녀의 자동차 '스쿠프'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스포츠카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로 제한속도 이상으로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10년이 넘은 오래된 똥차인 이유도 있었다. 그래도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달리고 달려 드디어 도착, 대형 마트의 주차장으로 들어가 최대한 입구 가까이에 주차를 하고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깜짝 놀라 몸이 얼어붙었다.
정문 앞 주차장에 파라솔을 펴 놓고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 김 부장 등 회사 깡패 일당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피우면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녀가 기겁을 하고 소리치니 이종태 사장이 말했다.
허겁지겁 깡패들을 뒤로하고 매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과매장이 설치되어 있는 매대를 둘러싸고 여직원들이 싸늘한 얼굴로 김 대리와 대립하고 있었다.
“김 대리, 무슨 일이야?”
강한나를 보자마자 김 대리가 울기 시작했다.
“이 언니들이 저보고 막 뭐라 해요. 흑.”
팔짱을 끼고 김 대리를 둘러싼 옆 매대의 한과매장 판매사원이 강한나에게 소리쳤다.
하면서 강한나를 밀쳤다.
족보에도 없는 한과업체라는 말에 대항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니.
살기 등등 한 한과업체의 기존세력에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의 매서운 눈도 벌써 항복한 모양이었다.
그들도 이 아줌마들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깡패들도 두려워하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무서운 상대가 바로 이런 아줌마들인걸 모르는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꼬리를 내리면 안 되지.
강한나는 넘어질뻔한 자세를 바로 고치고 똑바로 섰다.
“우리가 한과업체 족보에는 없지만, 다른 족보는 있는데.”
“뭐지?”
강한나는 그중 가장 입심이 세고 덩치가 있는 한 사람을 표적으로 잡고 그 싸움닭 아줌마에게 한 발 다가가 귀에 대고 말했다.
물끄러미 강한나의 얼굴을 보던 옆 매대 판매 아줌마가 뻘쭘하게 한 발 뒤로 물러나더니,
“재수 없어!”
하면서 눈을 후리고 자리를 떠났다.
마침 간식 교대 시간이었나 보다.
그 광경을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김 대리가 눈물을 훔치며 강한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과장님, 저 언니들이 막 뭐라고 한 것도 있지만, 조 이사님하고 김 부장님, 그리고 저기 같이 도와주겠다고 온 부하들이 매장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아르바이트하러 온 아줌마가 실신해서 쓰러져서 한바탕 난리 났었어요. 깡패가 아니고 직원이라고 설명했는데도 못 하시겠대서 집으로 보냈어요. 어떡해요?”
강한나는 주차장에 파라솔을 펼쳐놓고 등받이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에게 눈에 독기를 넣어 입술을 앙 다물고 따질듯한 얼굴로 쳐들어갔다.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강한나를 쳐다보았지만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의 눈은 웃고 있었을 것이다.
입술을 한쪽으로 추켜올려 이빨을 보이며 웃는 조 이사가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며 건들거렸다.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김 부장이 문을 열고 기다리던 벤츠로 올라탔다.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은 떨거지 깡패들도 자리를 정리하고 하나, 둘씩 차에 올라타곤 사라졌다.
명절 선물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북적이는 매장을 한과 박스가 잔뜩 실린 커다란 카트를 밀고 상품을 운반하고 있는 조지혁 이사의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깡패들을 보고 기겁을 한 판매 아르바이트 사원이 그만두고 강한나와 김 대리가 판매를 맡아야 했다.
옆 매대의 족보 있는 한과업체의 쎈 언니와 대결하려면 강한나밖에 대안이 없다고 이종태 사장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 강한나도 그 대가를 혼자 치를 수 없다며 조지혁 이사에게 상품운반 담당을 종용했다. 험상궂고 덩치 큰 김 부장도 안되고, 팔뚝에 칼빵 있는 고 과장도 안되니 조지혁 이사밖에 대안이 없다는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에 모두가 부정하지 않았다.
얼굴에 땀으로 번들번들했던 조지혁 이사가 열 번째 카트를 운반했을 즈음, 영업시간이 끝났다.
조지혁 이사의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입고 있었던 작업복을 벗으니 그 안에 입고 있었던 용 무늬 셔츠가 가슴팍이고 등짝이고 땀으로 들러붙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용 무늬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강한나는 진정한 노동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박수를 치고
조지혁 이사를 향해 오른쪽 손가락을 추켜 올리며 한쪽 눈을 찡끗했다.